
글로벌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규제가 본격화되면서 수출기업들이 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이하 무역협회)는 수출기업을 위한 ESG 경영 지원에 앞장서며 국내 최대 민간 통상 기구로서 존재감을 강화하고 있다. 7만8000곳 이상 수출기업을 회원사로 둔 무역협회는 자체 시스템을 통해 규제의 정확한 타깃 기업을 알아내 ESG 대응을 돕고 있다.
무역협회는 윤진식 회장 취임 2년 차인 올해 초 조직개편을 통해 무역진흥본부 산하에 ‘지속성장지원실’을 신설하고, ESG·공급망·디지털 전환 등 신통상 이슈 대응 역량을 대폭 강화했다. 동시에 무역 관련 싱크탱크인 국제무역통상연구원 내 ‘신무역전략실’을 신설하고 그 밑에 ‘그린·공급망 파트’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ESG를 단순한 윤리적 기준이 아닌 수출 전략의 핵심 요소로 위치시켰다. 특히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같은 환경규제의 급격한 변화에 발맞춰 실효적 정보 제공과 현장 중심의 지원사업을 추진 중이다.
정희철 한국무역협회 무역진흥본부장은 “과거 ESG는 기업의 자발적 책임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수출 경쟁력과 직결되는 필수 요소”라며 “기업들이 규제와 시장 요구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실질적 도구와 체계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출기업 맞춤형 ESG 지원
국내 수출기업들은 ESG가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코앞으로 다가온 CBAM 시행을 앞두고 대응 방안을 몰라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에 무역협회는 기업의 고충을 듣기 위해 ESG 관련 실태조사를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지난 4월 CBAM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63곳의 응답 기업 중 절반(46.3%)가량이 규제 대상이라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협회는 이 같은 조사 결과를 정부에 정책 건의 자료로 제출하고, 정보 제공 타깃, 전국 순회 설명회, 탄소배출량 산정 교육으로 연결할 계획이다.
무역협회는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중소기업벤처부, 관세청과 함께 CBAM 대응 정부 합동 설명회를 수차례 개최하고 관련 법령과 기업 사례를 공유하는 포럼을 통해 정보 비대칭 해소에 힘쓰고 있다. 지난 3월부터는 산업부의 요청에 따라 CBAM 워킹그룹을 운영 중이다. 또 벨기에 브뤼셀 지사를 통해 EU의 동향과 정보를 국내 기업에 신속하게 전달하고 있다.
ESG 규제 대상 기업 맞춤형 지원사업도 추진한다. 최근에는 ESG 전문 컨설팅 기관을 선정해 회원사를 대상으로 ESG 자율경영 진단, 온실가스 인벤토리 구축, 국제 인증 획득 등을 지원하는 현장 밀착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올해는 50개사의 ESG 진단 및 20개사의 맞춤형 현장 컨설팅을 목표로 한다. 전문 기관을 통해 ESG 진단을 수행하고, 온실가스 인벤토리 구축 및 국제 인증 컨설팅을 회원사에 제공한다.


통상·공급망 이슈 대응도 시급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관세 정책 강화와 환율 변동으로 많은 수출기업이 생산 및 투자 계획 수립에 차질을 빚고 있다. 거래가 보류되거나 취소되는 사례가 나오고, 미국 바이어들이 국내 기업에 관세 부담을 전가하면서 단가 인하 압력도 받고 있다.
공급망 실사 대응도 시급한 과제다. 대기업들은 협력사 ESG 데이터 확보에 애를 먹고 있으며, 중소기업들은 데이터 관리 체계조차 미비한 실정이다. EU 인증기관이 자신들만 적격 인증기관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기업에 또 다른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무역협회는 EU 집행위원회와 미국 행정부 등 주요국 기관 및 현지 협력단체와 접촉(아웃리치)해 CBAM 등 글로벌 ESG 및 통상 규제에 대한 공동 대응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윤진식 회장이 우리 기업의 투자가 활발한 미국 남부 여러 주를 방문했고, 4월에는 주요 업종별 단체와 미국 행정부 및 의회, 싱크탱크 등과 만났다. 지난 5월에는 한미 경제협력사절단을 꾸려 미국을 방문했다.
지난 6월에는 윤진식 회장이 EU 집행위를 직접 찾아 CBAM 배출량 인증을 한국에서도 할 수 있도록 역외 검증 제도와 관련한 의견서(포지션 페이퍼)를 직접 전달함으로써 우리 기업의 의견을 전했다. 최근에는 한국환경산업기술원과 협업해 EU 역외 검증 제도에 대한 대응 기반을 마련 중이다. 협회는 글로벌 연계를 강화하며 향후 EU와의 상호 인정 협정 체결 등을 통해 기업의 인증 부담을 완화할 방침이다.
공급망 실사와 관련해 무역협회는 ESG 대응 진단을 넘어 기업의 탄소 데이터를 수집하고, 탄소 데이터가 적정한지 제3자 검증까지 해주는 사업을 7월부터 모색할 예정이다.

AI 활용한 ESG 대응력 제고
수출기업은 무한 경쟁 속에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인공지능(AI) 같은 도구는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최근 우리 기업은 각국의 관세 조치에 따라 공급망을 중국, 베트남, 멕시코 등으로 다변화하면서 유연한 공급망을 갖추고 있다. 이런 공급망 변화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AI 전환이다. AI나 자동화, 디지털화로 비용 증가를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역협회는 이 같은 기업의 목소리를 받아들여 지속성장지원실 차원에서 AI를 ESG 대응에 적극 접목하고 있다. 협회는 AI 내재화 컨설팅, AX 성공 사례 분석, AI 컨퍼런스와 트렌드 세미나 등을 통해 ESG와 AI를 통합한 수출 경쟁력 강화를 추구하고 있다.
특히 AI 도입이 어려운 중소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AI 과제 도출부터 데이터 정제, 모델 학습, 기술 실증 전 과정을 지원할 예정이다. 생산공정 최적화 ▲공급망 리스크 관리 ▲에너지 효율화 등의 분야에 적용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생산공정에 센서를 설치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AI 분석을 통해 탄소배출량과 생산성 간 최적의 균형을 도출할 수 있다.
무역협회는 생산성본부와 함께 AI 투자 대비 효용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참여 기업을 모집, 기업과 심도 있는 인터뷰를 거쳐 기업별 AI 전환 가능성을 평가하고 공통 성공 사례를 모듈화한다. 구체적으로는 AI 도입 효과, 투자 대비 효율성, 전환 전략 등을 분석하여 업계에 전파한다. 조사 결과는 업계와 공유하고 대정부 건의에 활용할 계획이다. 협회 자체적으로 AI 트렌드 세미나와 AX 이니셔티브 컨퍼런스를 열어 글로벌 AI 활용 사례 또한 공유한다.

“ESG 대응 필요한 수출기업에 단계별로 맞춤형 지원”
[인터뷰] 정희철 한국무역협회 무역진흥본부장
- 한국 기업의 CBAM 대응을 평가한다면.
“지수로 표현하면 100 만점에 50 이하로 본다. CBAM 대상 기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자사가 규제 대상임을 인지하지 못한 기업도 많았다. 규제 대상인 데다 규제가 임박했다는 것을 인지한 기업들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무역협회는 이러한 기업을 대상으로 대응 설계를 비롯해 단계별로 지원하고 있다.”
- 수출기업 ESG 대응에서 무역협회의 강점은 무엇인가.
“지원이 꼭 필요한 대상을 타깃으로 할 수 있다. 무역협회 회원사는 모두 수출기업으로, HS 코드로 분류한다. CBAM 규제 대상에 해당하는 산업 코드를 HS 코드로 변환하면 규제 대상 기업을 정확히 파악 가능하다. 그 기업들의 현재 수준을 진단하는 것이 첫 단계다. 진단 후 탄소 데이터 수집 및 탄소 데이터에 대한 제3자 인증까지 업체에 맞게 지원하는 사업을 올해 7월부터 시범사업으로 실시한다.”
- CBAM 관련 검·인증 상호 인정도 풀기 어려운 숙제다.
“CBAM과 관련해 유럽계 EU 인증기관은 자신들만이 CBAM 적격 인증기관이라고 주장한다. EU CBAM 이행 규정에서는 ‘ISO 14065’ 인증 독립 검증기관이면 가능하지만, 세부 요건은 2025년 하반기에 발표할 예정이라 업계에서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협회는 탄소배출 검·인증과 관련해 한·EU 상호 인정 협정(MRA)을 적극 추진하는 한편, 우리 수출기업의 애로를 해소하기 위한 접촉도 확대할 예정이다. 한국과 EU 양측이 공정한 검증 프로세스에 기반해 상호 검증 체계를 확보하고, 전과정평가(LCA) 기반 탄소배출 검증을 전 분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 기업의 공급망 관리도 발등의 불이다.
“현재 환경산업기술연구원과 MOU를 맺고 공급망 실사 컨설팅 사업을 진행 중이다. 무역협회가 기업을 선정하면 연구원이 예산을 바탕으로 공급망 컨설팅 사업을 제공한다. 향후 정부에 요청해 국고 지원으로 공급망 관리를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대기업과 1차 협력사가 함께 참여하는 사업도 검토하고 있으며, 현재 수요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 중이다.”
-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정책은 우리 기업에 위협이 되고 있다.
“최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조치 강화와 환율 변동 등으로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졌다. 이에 수출기업들은 생산 및 투자 계획 수립에 상당한 차질을 빚고 있다. 실제로 예정된 거래가 보류되거나 취소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또 관세 부담이 우리 기업에 전가돼 단가 인하 등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매출 감소 등 기업들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응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관세 대응 바우처 확대, 물류비 등 자금 지원 강화, 대체 시장 발굴을 위한 시장 개척 지원 등이 필요한 상황이다.”
- 트럼프 이후의 ESG 경영은 어떠해야 할까.
“트럼프 이후 ESG가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직접 규제뿐 아니라 연성 규제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들은 공급망에 ESG와 관련해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시민사회 측면에서 기업들의 ESG 활동 순위를 정해 유럽의회 의원들에게 보내고 있다. 이런 부분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 조금 약화되더라도 장기 전략으로 볼 때 여전히 ESG 경영을 준비해야 한다.”
-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ESG 과제는 어떻게 다른가.
“대기업은 자사 탄소 데이터는 관리 가능하지만, 협력사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예를 들어 탄소배출량 신뢰성 확보를 위해 데이터를 검증해야 하지만, 해당 정보는 원가와 관련되어 검증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탄소배출량과 관련해 제3자 공인 기관 부족과 과도한 검증 비용도 문제다. 한국형 공급망 탄소 데이터 플랫폼 구축과 글로벌 상호 검증 체계 확보가 필요한 이유다. 중소기업은 규제 정보 이해도가 낮은 데다 데이터 관리 체계도 미비한 실정이다. 복수 규제를 적용받거나 고객사 요구가 일치하지 않아 혼란을 겪기도 한다. 따라서 현장 밀착형 컨설팅과 투자 지원이 절실하다.”
- AI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컨설팅할 예정인가.
“생산공정에 센서를 설치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AI 분석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전략을 제시할 계획이다. 예전에는 숙련된 기술자가 감각으로 판단했다면, 이제는 데이터 기반 예측으로 고장이나 품질 저하를 예방할 수 있다. 조금만 도와줘도 생산성이 올라가는 기업이 있을 것이다. 수출기업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맞춤형 AI 컨설팅을 진행할 것이다.”
- 기업의 ESG 경영에 필요한 인센티브는 무엇이라고 보나.
“기후 규제 준수를 위한 비용 부담은 크지만, 그에 따른 보상이 부족하다. 기후 정책이 기업 친화적이지 않으면 투자 위축, 생산 비용 증가, 해외 이전 등의 부작용이 발생한다. 산업 성장과 탄소감축을 동시에 고려하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예컨대 탄소감축 목표를 산업별 특성과 경제적 영향력을 고려해 설정하고, 신산업 육성으로 성장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비현실적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배출권거래제의 과도한 적용, 높은 녹색금융 기준 등은 기업의 부담을 키울 수밖에 없다. 강제적 감축목표보다는 세금 감면, 기술개발 지원 등으로 자발적 감축을 유도해야 한다.”
- 앞으로 포부를 밝힌다면.
“무역협회의 임무는 우리 기업의 원활한 수출을 돕는 것이다. 기업 차원에서 대응하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적극 돕고자 한다. ESG가 새로운 비관세 장벽이 되지 않도록 정부, 국회와 협력해 대응해나갈 계획이다. 올 하반기부터 ESG가 더 부각될 수 있다고 본다. EU와 상호 인증 협정을 적극 추진하고, 기업들이 지속 성장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것이다.”
구현화 한경ESG 기자 ku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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