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사태의 중심인물인 최순실(개명 이름 최서원) 씨가 안민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대법원이 일부 허위사실을 인정하며 최 씨의 손을 들어줬다. 정치적 비판이라도 사실이 아닌 사안에 대해 근거 없이 단정해서는 안된다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엄상필 대법관)은 최 씨가 안 전 의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을 일부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6일 밝혔다.
최 씨는 안 전 의원이 방송 등에서 자신이 은닉재산을 숨기고 자금세탁을 했다는 등의 허위사실을 반복적으로 퍼뜨려 명예를 훼손했다며 1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안 전 의원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여러 차례 방송에 출연해 “최 씨의 해외 은닉재산 규모가 수조 원에 달한다”, “독일에 자금세탁을 위한 페이퍼컴퍼니가 수백 개 존재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통치자금이 최 씨 일가에 승계됐다”, “스위스 비밀계좌에 입금된 자금이 최 씨와 연관돼 있다”, “최 씨가 미국 방산업체 회장을 만나 이익을 취했다”는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1심은 최 씨의 주장을 전부 받아들였다. 안 전 의원이 소장 송달 이후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았고 재판에도 한 차례도 출석하지 않은 점을 고려해 재판부는 "1억 원 전액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과정에서 쟁점이 된 ‘스위스 비밀계좌 연루’, ‘방산업체 회장과의 이익 취득’ 등의 발언은 모두 허위사실로 간주됐다.
2심은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안 전 의원 측이 항소심에서 변호인을 선임해 본격적으로 소송에 대응하고 발언의 사실관계를 다투자 재판부는 "해당 발언들은 국정농단 논란이 한창이던 시기에 제기된 공적 사안에 대한 비판으로 국회의원의 정치적 발언으로 볼 수 있다"며 표현의 자유로 보호된다고 판단했다. 특히 스위스 계좌나 방산업체 관련 발언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허위사실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사회적 의혹에 기반한 정치적 견해로 이해될 수 있다"며 최 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르게 판단했다. 재판부는 “정치인의 발언이라도 구체적 정황 없이, 진실이라 믿을 이유 없이 단정적으로 한 경우에는 책임을 피할 수 없다”며 ‘스위스 비밀계좌 연루’와 ‘방산업체 회장과의 이익 취득’ 발언은 허위사실에 해당해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원심을 일부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반면 ‘수조원대 은닉재산’이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치 자금 승계’ 등 나머지 발언에 대해서는 정치적 주장 또는 의견에 가까우며, 사회적 비판의 일환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해 법적 책임은 없다고 봤다.
이어 정치인의 발언이라 하더라도 그 내용과 형식, 사실관계에 대한 뒷받침 여부에 따라 표현의 자유의 보호 범위는 달라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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