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일(한국시간) 미국 미시건주 미들랜드CC(파70) 16번홀(파4). 약 4m 거리에서 친 임진희의 버디 퍼트가 중간쯤에서 멈춰섰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의 유일한 팀전 다우 챔피언십(총상금 330만달러) 최종라운드, 20언더파로 먼저 경기를 마친 렉시 톰슨과 메건 캉(모두 미국)을 1타 차로 추격하고 있었기에 그 어느 때보다 간절했던 버디를 놓친 것. 파로 홀을 마무리한 임진희는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이소미에게 "미안해"라고 말했고 이소미는 어깨를 두드리며 "괜찮다"고 웃어보였다.
그리고 17번홀(파4)에서 이소미는 버디를 잡아내 공동 선두로 팀을 끌어올리며 임진희의 부담을 덜어줬다. 연장으로 이어진 승부, 이번엔 임진희가 화답했다. 18번홀(파3)에서 포섬 방식으로 열린 연장에서 4m 버디퍼트를 성공시키며 이소미와 함께 LPGA투어 첫 승의 기쁨을 완성했다. 제주 출신 임진희와 완도 출신 이소미, 두 '섬 소녀들'의 반란이 완벽하게 성공한 순간이었다.
이 대회는 단체전이어서 세계랭킹 포인트는 못받지만 두 선수는 우승상금 80만 5381달러(약 10억9000만원)을 나눠갖고 각각 시드 2년을 확보했다. 또 김아림, 김효주, 유해란에 이어 올해 LPGA투어에서 한국선수의 네번째 우승을 올리며 한국 여자골프의 부활을 알렸다.

◆늦깎이와 엘리트, 미국서 동병상련 겪다
1998년생 임진희와 1999년생 이소미는 비슷한 또래이지만 KLPGA투어 활동 당시에는 큰 접점이 없었다. 남들보다 늦은 고등학교때 선수의 길을 선택한 임진희는 3부투어부터 차근차근 올라갔다. 2018년 KLPGA투어 데뷔 이후에도 긴 무명을 거친 뒤 2021년 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 우승으로 주목받았고 2023년 4승, 투어 통산 6승을 올리며 강자로 우뚝 섰다.
반면 이소미는 한국 여자골프 엘리트코스를 걸어온 선수다. 2017년 국가대표를 지내 일찌감치 주목받았고 2020년 KLPGA투어 첫 승을 시작으로 총 5승을 올렸다.
두 선수를 가깝게 만들어준 것은 '동병상련'이었다. 지난해 나란히 LPGA투어에 루키로 도전했지만 미국 무대에서 쓴맛을 봐야했다. 임진희는 몇차례 우승에 도전했지만 아쉽게 놓쳤고, 신인상도 2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이소미 역시 '무관'의 시즌으로 시드를 유지한데 만족해야했다.
올해도 둘은 같은 아픔을 겪었다. 지난해까지 건설사의 후원을 받았던 이들은 경기 악화로 올해 재계약에 실패했다. 특히 LPGA투어에 대한 후원 열기가 뜸해진 상황이 더해지면서 두 선수 지난 1월 시즌 시작부터 두 선수 모두 메인 후원사를 만나지 못해 마음고생을 하며 가까워졌다.
이소미는 올 시즌부터 빈 모자를 쓰고 뛰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도 앞면이 비어있는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도 당차게 경기했고, 투어 첫 승을 거머쥐었다.

◆제주출신·노력 천재 임진희, 신한금융 손잡아
임진희는 다행히 지난 4월 신한금융과 손을 잡았다. 그는 가장 일찍 연습장으로 나와, 가장 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독종'으로 유명하다. '노력'이라는 가장 빛나는 재능을 가진 그를 신한금융그룹이 눈여겨봤다.
신한금융은 송영한, 김성현 등 남자 선수만 후원해왔다. KPGA투어 최고 권위 대회 중 하나인 신한동해오픈의 오랜 주최사일 정도로 남자 골프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 그런 신한금융이 관례를 깨고 처음으로 후원 협약을 맺은 여자 선수가 바로 임진희였다. "도전 정신과 자기 관리를 기반으로 성장해 온 임진희 선수의 진정성에 주목했다"는 것이 신한금융 측의 설명이다.
임진희의 고향이 제주라는 점도 신한금융과의 인연에 큰 힘이 됐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제주은행이 신한금융그룹의 계열사라는 점에서 제주 출신 임진희가 LPGA투어에서 활약하면 우리 고객들에게도 큰 기쁨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임진희를 위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후원 계약은 4월 16일에 공식 발표했다. 통상 협약식에 선수가 참석한다. 하지만 신한금융그룹은 임진희에게 "다가오는 JM이글 LA챔피언십에 집중하라"며 대면 협약식없이 공식후원을 시작했다.
임진희는 대회 공백기인 5월 중순 한국을 찾아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진 회장은 응원의 하이파이브를 건넸고, 임진희는 "올해 꼭 우승을 거두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이날 완벽한 위닝퍼트로 후원사에게 보답했다.

◆"한국 여자골프, 안죽었다"
이번 팀은 이소미의 제안으로 결성됐다. 팀 이름은 BTI(Born to be Island), 섬 출신이라는 자부심을 담았다. 그리고 둘은 찰떡호흡을 보였다. 티샷을 멀리 똑바로 치는 이소미, 정교한 샷과 퍼트가 강점인 임진희는 서로의 강점을 살려두며 3라운드까지 내내 선두를 압박하며 추격했다.
연장에서는 두 선수의 팀워크가 빛을 발했다. 톰슨은 티샷을 핀 2m 옆에 붙이며 이소미를 압박했다. 이소미가 보낸 핀 4m 지점에서 먼저 퍼트에 나선 임진희는 완벽한 라인을 만들며 버디를 잡아냈다. 여기에 캉이 흔들렸다. 짧은 퍼트가 당겨지면서 홀을 멀찍이 벗어났고 이소미와 임진희의 우승이 확정됐다.
우승을 확정한 뒤 임진희는 "소미와 함께했기에 가능한 우승이었다"고 공을 돌렸고, 이소미 역시 "믿을 수 없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특히 두 선수는 "한국 여자골프의 저력을 지켜내겠다"는 다짐도 밝혔다. 이소미는 "최근 한국 선수들이 부진하다는 걱정이 많으신데 미국에서 우리는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한국 여자골프는 절대 죽지 않았다. 우리가 얼마나 강한지 증명해내겠다"고 강조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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