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사태로 갑작스럽게 대권을 잡았지만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 경기지사를 거친 행정가 출신이다. 당 대표도 두 번 했다. 그만큼 사람을 쓰고 일 처리하는 데 능숙하다. 여권 관계자는 “집권하자마자 몰아치듯 그동안 하고 싶었던 현안을 하나씩 풀어가고 있다”며 “이 대통령이 보여준 최근 국정 운영 스타일을 보면 앞으로 5년을 예상하는 게 어렵지 않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1호 지시’로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지시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한 차관 및 실·국장급 실무자를 모아놓고 2시간20분 동안 회의를 했다. TF 회의에는 차관들만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이 대통령이 실무진 배석을 지시해 국장급까지 회의에 들어갔다고 한다. 회의에 배석한 한 정부 관계자는 “대통령이 사안에 대해 굉장히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 한다는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대통령 주재 회의는 대부분 비공개인데, 비공개회의에서 이 대통령이 어떻게 회의를 이끌어가는지 유추해볼 수 있는 행사가 최근 있었다. 지난달 25일 열린 ‘광주 타운홀 미팅’이다. 이 행사에서는 전남 무안군의 반대로 수년째 표류하고 있는 광주광역시 내 군(軍)공항 이전 문제가 주로 논의됐다. 강기정 광주시장, 김영록 전남지사, 김산 무안군수 등이 참석했다.
이 대통령은 “광주 군공항을 이전하면 부지를 개발해 남은 이익 1조원을 무안군에 주겠다”는 강 시장에게 “예상 개발 이익이 얼마인데 1조원까지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이에 강 시장이 약 10년 전 추산을 근거로 4500억원이라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그러니까 무안군에서 1조원을 주겠다는 약속을 못 믿는 것 아니냐”며 농담조로 타박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앞으로 이 대통령을 만나서 회의하려면 지방자치단체장이든 중앙 공무원이든 디테일 준비를 많이 해야 할 것”이라며 “생중계된 타운홀 미팅을 보고 긴장한 공직자가 많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의 이 같은 국정 운영 스타일은 전형적인 ‘톱 다운(top down)’ 방식에 가깝다는 평가다. 역대 정권은 대통령이 굵직한 아젠다를 던지면 그다음은 장관 주도하에 각 부처에서 실행 방안을 챙겼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인천공항공사를 찾아가 ‘임기 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0)’를 약속했다. 이는 공공기관 인건비 폭등이라는 부작용으로 이어졌다. 윤 전 대통령도 취임 직후 3대 개혁(노동·연금·교육) 과제를 제시했다. 방향성에 공감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지만 탄력을 받지 못했다.
이 같은 이 대통령의 행보가 정책의 구체성과 실현 가능성을 담보하긴 하지만 국정 철학 부재로 보는 일부 시각도 있다. 민생을 챙기는 건 정권의 당연한 책무일 뿐, 인기는 없지만 잠재성장률 확보 등을 위해 꼭 필요한 국가적 개혁 과제를 이 대통령이 외면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발표된 인선을 보면 ‘실무형 인재’ 선호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곧바로 투입해 일을 시킬 인재를 찾는다”고 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하정우 인공지능(AI)미래기획수석 등 기업인 출신이 이런 기준에 부합한다. 국정 철학 이해도가 높은 여당 중진을 대거 입각시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느 정권에서나 교수 출신을 내각에 대거 중용한 것과 차별화된다.
재계 관계자는 “예전 정권에서는 경제단체 등을 통해 기업인 추천을 받았는데, 이번 정부에서는 추천 요청이 있었다는 얘기를 못 들었다”고 했다. 대신 여당 내 핵심 그룹이 일종의 ‘기업인 후보군(pool)’을 만들어 놓고 직접 평판 조회를 한다고 한다. 후보군에는 주요 그룹사 현직 ‘C레벨’ 수십 명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이 재계 총수들에게 직접 추천을 요청한 경우도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주요 5대 그룹 총수와 만난 자리에서 “인사 추천에 관한 의견도 개인적으로라도 많이 주면 좋겠다”고 했다. 내각 인선에는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 등 극소수가 조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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