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의 문화예술 분야에서 뚜렷한 성과를 남긴 대통령을 꼽으라면 박정희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을 거론하는 이들이 많다. 박 대통령은 1972년 ‘문화예술진흥법’을 제정했고, 이후 5년에 한 번씩 문화예술 진흥 계획을 수립해 실천에 옮겼다. 서울 광화문에 세종문화회관을 건립한 것도 박 대통령이다. 김 대통령은 외환위기 와중에 집권했지만 정부의 전체 예산에서 문화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을 처음으로 1%대로 끌어올렸다. 문화산업이 한국의 차세대 성장산업이 될 것으로 보고 ‘문화산업진흥 기본법’을 마련하기도 했다.그런데 이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제시한 문화예술 분야 공약들을 뜯어보면 윤석열 정부 시절 만든 ‘문화한국 2035 비전’과 큰 차이가 없다. 콘텐츠산업 세제 지원 및 정책금융 확대, K컬처 글로벌 브랜드화, 국내 콘텐츠 플랫폼 해외 진출 지원 등의 정책과제가 구체적인 표현만 다를 뿐 공통으로 포함돼 있다. 문화예술 분야는 외교 안보 노동 환경 등 여타 분야와 달리 진보와 보수 간의 견해 차이가 크지 않다. 중요한 건 실행 의지다.
문화예술계에서는 그동안 문예기금 정상화를 위한 대책 마련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정부는 일반회계나 복권기금과 같은 다른 기금에서 전입금을 끌어오는 방식으로 매년 부족분을 메꿔왔다. 하지만 이런 땜질 처방으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이미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타기금에서 전입받는 재원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방안, 부가가치세 등 간접세의 일부를 문예기금으로 조성하는 방안, 문화세를 간접세로 신설하는 방안 등이 논의돼왔다.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만 있으면 기금 고갈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순수예술을 지원하는 국내 유일 기금의 재정 불안으로 문화예술계 전반이 위축된다면 이 대통령이 목표로 내건 문화강국 비전은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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