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자유무역은 세계 각국의 산업정책과 맞아떨어져야만 성립한다는 점에서 '조건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으킨 관세 전쟁으로 통상 분쟁의 위험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가운데, 산업통상자원부에서 통상 분쟁을 총괄 대응하는 김세진 과장은 이 같이 진단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탄과 이에 맞서는 중국의 수출 통제 등 글로벌 형국에 대해 일각에서는 보호무역주의, 탈세계화를 운운하고 있다. 김 과장은 "자유무역 시대는 완전히 저물지 않았다"며 "다만 각국이 우후죽순으로 쏟아내는 산업정책들의 위협이 커졌다는 점에서 '황혼'에 가까워졌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2022년 10월 국내 대형 로펌에서 받던 억대 연봉을 뒤로 하고 개방형 직위로 산업부 공무원이 됐다. 변호사 업계에서는 국제투자중재(ISDS), 국제 수출통제 및 경제제재 실무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1세대 선두주자로 이름을 날렸지만, 세계 경제 질서가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 대표로 복무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민간에서 잔뼈가 굵은 실무가가 한 사람이라도 더 국가대표로 뛰어야 한다고 판단해 정부에 '자원입대' 했던 것"이라고 했다.
김 과장은 3년 가까이 통상 전쟁 최일선에서 뛰어온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 책 『조건부 자유무역의 시대』를 출간했다. 그는 "트럼프 1기는 중국의 급부상이라는 외적 요인과 미국 내 대표적인 스윙보트(경합주)인 러스트벨트의 붕괴 등 미국 내 제조업 기반의 몰락이라는 내적 요인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중국의 급부상이 조건부 자유무역 시대를 몰고 온 배경이 됐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30여년 간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며 산업대국으로 성장했다. 그 절정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었다. 이 시기 중국은 자유무역의 수혜를 입으며 고속 성장을 이뤘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 주요국은 중국의 불투명한 산업정책을 비판하며 중국의 급부상을 경계했다. 그러다 2016년 중국이 인공지능(AI), 방산 등 핵심 첨단산업에서 기술 자립을 이루고 산업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국가혁신주도형 발전전략 강요'를 발표했을 때 미국 등의 불안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김 과장은 "미·중 무역전쟁을 벌인 트럼프 1기는 그렇게 등장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의 산업정책은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반도체, 인프라, 친환경 등 3개 분야에서 제도화됐다"며 "트럼프 2기는 바이든 전 대통령의 전반적인 산업정책 기조는 사실상 이어받되, 고율 관세를 내걸어 동맹국을 다치게 하면서까지 온쇼어링(자국 내 생산시설 유치를 위한 전략)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의 이런 기조는 스스로가 안심할 때까지 (정권 변화에 상관없이)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에 주어진 과제는 무엇일까. 김 과장은 "한국의 무역 성적표를 올림픽에 비유하면, 선수단은 작지만 전 종목 출전이 가능하고 대부분 메달권에 드는 나라"라고 했다. 그는 "반도체, 배터리, 철강, 화장품 등은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고, 특히 원전, 조선, 방산 등은 트럼프 2기 들어 존재감이 더 커진 분야들"이라며 "기업들은 기존의 WTO법 등으로 일률적으로 규율되지 않는 각국의 통상 규제들 속에서 저마다 다변화된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그가 제시한 정부의 역할은 세 가지다. 우선 각국이 통상 규제를 설계할 때부터 한국의 입장을 반영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 우후죽순 쏟아지는 글로벌 통상 규제를 기업들이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레귤레이션 트래커’와 같은 정보 전달 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다. 김 과장은 "무엇보다 각국의 규제에 직접 대응하기 어려운 국내 기업을 위해 '연성법'(매뉴얼·가이드라인 형태의 규제 대응 기준)을 마련하고, 국내 기준이 유럽 등에서도 우호적 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인증 지원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무엇보다 학계에서도 공격적인 실무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과장은 "WTO와 자유무역협졍(FTA) 위주의 통상법이 아닌 각국 산업 정책에서 파생된 통상 규제를 분석하고 대응하는 실무형 연구로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고 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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