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세계적인 발레 콩쿠르 ‘프리 드 로잔’ 우승으로 한국 발레의 위상을 높인 박윤재(17)가 오는 26일과 27일, 성남아트센터 갈라 무대에 오른다. ‘성남 발레스타즈 2025’에서 그는 돈키호테 속 남자 주인공 ‘바질’을 연기한다. 박윤재를 최근 경기 성남아트센터 연습실에서 만났다.
“어릴 적부터 돈키호테의 ‘바질’을 많이 연기했는데, 더 성숙해진 다음 무대에서 제대로 해보고 싶었어요. 키트리(여자 주인공)의 사랑을 받는 스타와 같은 캐릭터라서, 상대방(이채은·서울예고 동기동창)에게 ‘나한테 네가 와야지~’라는 식의 제스처를 많이 보여줄 거예요.”
박윤재는 로잔 콩쿠르 후 무대의 맛을 비로소 알게 됐다고 했다. “무용수가 아닌 저는 평범한 소년에 지나지 않아요. 하지만 무대에 서는 순간만큼은 별처럼 찬란하게 빛날 수 있어요. 그 느낌 때문에 몇 분짜리 무대라도 저를 갈고닦습니다. 박수와 환호를 받는 게 소름 돋을 정도로 좋아요.”
박윤재는 다섯 살 때 발레를 시작했다. “누나가 발레 학원에 다녔는데, 음악에 맞춰 춤추는 모습이 놀이처럼 재밌게 보였다”고 했다. 취미로 춤을 추다가 본격적으로 발레리노의 꿈을 꾼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원 시험을 준비하면서부터다. “날고 기는 친구들 사이에서 제대로 배우다 보니, 내가 너무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종일 발레만 하려고 초등학교를 그만두고 홈스쿨링을 했을 정도였어요. 새벽까지 절실하게 춤을 췄어요.”
계원예중 시절 참가한 동아무용콩쿠르에서 그는 꼴찌를 했다. 한 번 턴 실수를 했더니 걷잡을 수 없이 실수가 줄줄 이어졌다고. “낮은 점수표를 보고 절망했지만, 그 무대 하나로 제 인생이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바닥을 쳐봤으니 다음엔 더 나아질 것이란 생각으로 달려왔어요.”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발레를 대하자 올해 초 로잔 콩쿠르 우승이 찾아왔다. 한국인 발레리노로는 최초라는 쾌거와 함께.
박윤재는 최근 서울예고를 중퇴했다. 로잔 콩쿠르 우승으로 유수의 발레학교에서 수많은 스콜라십 제의를 받았다. 그가 선택한 곳은 미국 뉴욕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산하의 재클린케네디오나시스(JKO) 발레학교다. 오는 9월 입학한다. ABT를 선망한 것은 이 발레단의 열려 있는 스타일, 다채로운 레퍼토리 덕분이었다. “저만의 색깔로 그 어떤 배역을 맡아도 해내는 발레리노가 되는 게 지금 꿈이거든요. 러시아 바가노바 스타일, 미국의 발란친 스타일,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 스타일 등 다양한 발레를 배우는 커리큘럼이 JKO에 있어요. 여러 발레를 접하면서 시야를 넓히고 싶습니다.”
박윤재는 성남 발레스타즈에서 만날 선배 채지영(보스턴발레단 수석무용수)을 존경한다고 했다. 그는 “채지영의 춤은 깔끔하고 정교하고 모든 동작이 버려지는 것 없이 연결되는 점이 무척 신기하게 느껴진다”며 “이번 계기를 통해 많이 보고 배우겠다”고 했다.
로잔 콩쿠르 우승 직후, 롤모델을 묻는 말에 박윤재는 “제2의 로베르토 볼레(이탈리아의 유명한 발레리노)가 되고 싶다”고 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는지 궁금했다. 박윤재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제2의 누구보다 그냥 박윤재 할래요. 어디에 갇히고 싶지 않고 저만의 발레를 하고 싶어요.” 10년 후에 박윤재는 뭘 하고 있을까. “입단을 희망하는 건 ABT나 파리오페라발레단인데요, 어디서 춤을 추고 있든 누구에게나 환영받는 무용수가 돼 있으면 좋겠어요. 항상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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