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영 분야에서 인문학 열풍이 불던 때가 있었습니다. 대략 10년 전쯤 됐을까. 르네상스 시대 미술과 함께 가장 많이 거론된 화가는 파블로 피카소였습니다. 대표작 ‘아비뇽의 처녀들’은 경영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줬습니다.
동료인 마티스와 비슷한 화풍을 갖고 있던 피카소. 그는 어느 날 마티스, 그리고 그의 딸과 식사 자리에 앉았습니다. 마티스의 딸은 당시 파리에서 유행하던 아프리카 목각인형을 들고 나왔습니다. 피카소의 눈길은 그 목각인형에 멈춰 섰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바라봅니다. ‘제7의 감각’을 쓴 윌리엄 더건은 이 순간을 ‘전략적 영감’의 순간이라고 표현합니다. 야수파적 화풍과 아프리카 목각인형이 연결되는 순간 피카소의 새로운 전략이 탄생합니다. 안개가 걷히고 이질적인 점과 점이 연결된 새로운 조합의 탄생, 그 결과물이 ‘아비뇽의 처녀들’입니다. 그리고 입체파의 거장이 됐고 가장 위대한 예술가로 남았습니다.
최근 ‘케이팝 데몬 헌터스’란 애니메이션을 뒤늦게 봤습니다. 제목에 스토리가 다 드러나는 애니메이션이라 기대는 없었습니다. 의무감에 봤다고 할까. 콘텐츠 만족도는 기대치와 반비례한다고 하는데 이 작품에 맞는 말이었습니다. 보는 내내 절묘한 조합의 힘을 느꼈습니다. 결핍을 가진 주인공이 또 다른 결핍을 가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악귀를 물리친다는 단순한 스토리였습니다. 이 단순한 스토리가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K팝 및 한국의 전통과 결합되며 폭발력을 일으켰습니다.
노래와 춤으로 악귀를 쫓는 한국의 무당은 걸그룹과 결합했습니다. 주인공인 ‘헌트릭스’입니다. 한국의 저승사자는 남성 아이돌과 결합해 악귀의 대리인인 ‘사자보이스’로 재탄생했습니다. 이질적 조합은 작품 내에도 수두룩합니다. 세련된 K팝 아이돌과 민화 작호도에서 뛰쳐나온 듯한 호랑이와 까치가 자연스럽게 어울립니다. 감독인 메기 강도 영화 내적으로 이질적인 것들의 조합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말합니다. “봉준호 감독이 자주 쓰는 톤의 전환을 활용했다. 코미디 같은 유쾌하고 바보스러운 장면과 감정적인 장면을 함께 넣음으로써 양극단의 균형을 맞췄다.”
뻔한 스토리와 K팝의 세련되고 감각적인 스타일, 실제 보이그룹 멤버를 연상케 하는 사자보이스와 그냥 일반인 캐릭터가 개성 있게 그려진 헌트릭스, 무당과 아이돌, 아이돌과 작호도, 조선의 전통과 K팝 외에 또 다른 조합도 있습니다. ‘일본 자본의 미국 회사가 만든 K팝 작품’이라는 정체성입니다. 태생 자체가 새로운 조합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메기 강 감독 자체가 한국계 캐나다인이고, 미국 애니메이션이지만 수많은 한국계가 참여했다는 것 자체가 융합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팬층도 뒤섞여 있었습니다. 애니메이션 팬과 K팝 팬 모두를 끌어들이는 효과는 조합의 힘이었습니다. “요소는 식상하지만 조합은 새로웠다.”
조합이라고 다 새롭지는 않습니다. 이를 가능케 한 포인트는 조합을 작품의 본질과 디테일이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작품의 출발은 ‘한국적인 것을 보여주자’였습니다. 감독은 이를 한번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저승사자, 도깨비, 무당 등이 상상의 출발점이었고 K팝 아이돌을 통해 현실화했습니다. 한국적 디테일은 끝없이 이어집니다. 한국 전통의 노리개와 문양, 칼, 한국어 가사, 음식, 남산타워와 낙산공원, 북촌마을 등이 실사처럼 등장합니다. 식당에서 수저를 놓을 때 휴지를 까는 한국인만의 특징, 주차금지 구역에 버젓이 주차된 차, 목욕탕에서 등장한 이태리타월 등은 사소한 하이라이트로 보였습니다.
본질을 디테일로 뒷받침하려는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메기 강은 이 영화에 대해 “K팝에 대한 나만의 러브레터”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래서일까. 대한민국 최초의 걸그룹 ‘저고리 시스터즈’, 1960년대 처음으로 미국에 상륙한 ‘김 시스터즈’, 아이돌 걸그룹의 원조 격인 SES 등을 선대 퇴마사로 등장시켰습니다. 또 K팝의 원형으로 불리는 서태지와 아이들, 그와 동시대를 주름잡았던 듀스의 음악을 넣음으로써 러브레터를 완성했습니다.
소니도 넷플릭스도 기대하지 않았던 ‘케데헌’ 성공의 키워드는 이질적 요소의 조합, 본질, 디테일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메시지도 있었습니다. “너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약함을 받아들일 때 그것이 새로 시작할 힘이 된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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