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6월부터 이상 고온을 보이다가 7월 들어 연일 40도 가까운 폭염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만 겪는 현상이 아니다. 2025년 7월 현재,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는 비정상적인 장마가 이어지고 있다. 적도에서 조금 내려오긴 했지만, 남반구라 원래는 비가 내리지 않는 건기지만, 한창 우기인 6~7월에도 연일 폭우가 쏟아지며 도시 일대가 물바다가 되고 있다. 현지 언론은 이를 ‘우기 같은 건기’라 표현하며, 이상 기후의 전형적 징후로 본다. 자카르타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침하(沈下)하는 도시 중 하나다. 이미 해수면보다 낮은 지역이 많고, 지하수 과잉 사용과 연이은 폭우는 도시의 침수 리스크를 더욱 높이고 있다.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도를 보르네오섬으로 이전하는 초유의 결정을 내렸지만, 새 정부 들어서도 그 비용 충당과 현실적 이주는 첩첩산중이다.
다른 동남아 국가에서도 기상 이변은 일상이 되고 있다.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지나는 메콩강은 과거 ‘동남아의 젖줄’이라 불렸지만, 지금은 댐 개발과 기후변화로 수위가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농업에 의존하는 수천만 주민들의 생계는 타격을 입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논농사를 포기하고 있다. 수온 상승으로 생태계 파괴도 심각하다. 이 변화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식량 안보와 이주 문제로 직결된다.
도시도 예외가 아니다. 방콕, 마닐라, 호치민시 등 대도시에서는 극한 폭염이 반복되고 있다. 체감온도 50도를 넘는 날이 늘어나면서, 열사병, 정전, 교통혼잡 등의 문제가 매년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빈곤층이 밀집한 지역은 냉방 수단이 부족해 생명에 직접적인 위협을 받는다. 기후 위기는 가장 가난한 이들을 가장 먼저, 가장 아프게 때리고 있다.
이와 더불어 태국 북부에서는 최근 몇 년간 사계절이 무너지고 있다. 원래는 2~3월이면 이미 건조한 더위가 시작되어야 하는데, 2025년 초엔 예상치 못한 한파가 닥치고 5월까지 안개와 낮은 기온이 계속됐다. 농민들은 씨를 뿌릴 시기를 놓쳤고, 일부는 아예 농사를 포기했다. 이러한 기후 불규칙성은 농업 생산뿐 아니라 지역경제 전체를 뒤흔든다. 사람들은 점점 도시로 떠나고, 농촌은 더 빠르게 붕괴한다.
말레이시아의 보르네오섬 사라왁 주에서는 산불이 새로운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 원래 열대우림으로 유명한 이 지역은 최근 몇 년 동안 가뭄이 극심해지며 연쇄적인 화재 피해를 보고 있다. 2024년 말 기준, 사라왁 지역 산불로 발생한 탄소 배출량은 그 해 국가 전체 배출량의 20%를 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며, 인접국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까지 대기질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심지어 고산 국가라 여겨지던 라오스조차 폭염에 시달린다. 2025년 4월, 수도 비엔티안에서는 43도를 넘는 사상 최악의 폭염이 기록되었다. 팬데믹 이후 관광 산업 회복을 기대하던 현지 업계는 더위로 관광객 유입이 줄며 이중고를 겪고 있어 라오스도 더 이상 ‘기후 안전지대’가 아니다.
필리핀은 기후 위기가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대표적 동남아 국가다. 마닐라와 세부를 비롯한 주요 도시들은 매년 2~3개의 초강력 태풍에 직면하고 있으며, 해안 지역 주민들은 상습 침수와 해수면 상승에 고통받고 있다. 2025년 2월, 타가이타이 인근에서 발생한 화산 분화와 폭우가 겹치면서 경사면에 화산재가 흘러내리는 라하르(화산이류: 火山泥流) 현상이 발생해 수천 명이 대피했다. 또한 필리핀 북부 고지대에서는 극심한 폭염과 가뭄이 겹쳐 작황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고, 중부 루손 지역에서는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강변 마을들이 붕괴하였다. 이처럼 필리핀은 폭염, 태풍, 가뭄, 침수, 산사태, 해수면 상승이라는 기후 위기의 전 영역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기후 위기로 인한 물리적 피해에 더해 사회적 균열도 깊어지고 있다. 대도시로 몰려드는 이주민, 침수된 마을에서 떠밀려 나온 난민 등, 기후 난민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동남아에서도 현실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도시의 주거 불안정, 교육 붕괴, 치안 문제로 이어진다. 국가 간 협력이 부족한 아세안 지역에서는 국경 간 이동마저도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이 된다.
이런 현상은 단지 대기 환경 오염에 따른 자연의 분노로만 볼 수 없다. 아세안 국가들의 탄소 배출은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지만, 정작 가장 먼저 고통을 겪고 있다. 산업화의 이익은 선진국이 가져갔고, 그 부작용은 기후변화라는 형태로 아세안에 돌아오고 있다. 더불어 아세안 내부의 도시개발과 자원 남용, 정책 미비 역시 이 위기를 악화시키고 있다.
그런데도 아세안 국가들이 기후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자원과 제도는 충분치 않다. 탄소중립이나 재생에너지 전환, 도시 인프라 개편 등은 선진국보다 훨씬 큰 비용과 외부 협력이 필요하다. 국제사회는 더 이상 아세안을 ‘성장하는 신흥국’이라는 경제 프레임으로만 보지 말고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연대와 지원의 대상으로 봐야 한다.
기후 위기는 더 이상 환경운동가나 학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동남아의 침수, 가뭄, 폭염은 우리가 매일 소비하는 커피, 의류, 전자제품의 생산지에서 일어나는 현실이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재난은 곧 우리 생활과도 연결된다. 아세안이 기후 위기로 침몰한다는 것은, 단지 그들이 위험에 빠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세계가 함께 가라 앉고 있다는 경고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후 위기에 대한 공감 이상의 구체적인 행동이다. 동남아의 위기를 ‘그들만의 문제’로 간주하는 순간, 인접한 동북아 우리에게 이상 기후는 더 빠르고 더 거세게 밀려올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침수된 도시에서, 메콩강 하류의 바짝 마른 논밭에서, 기후 재앙은 조용히 그리고 분명히 진행되고 있으며 결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어쩌면 한 세대가 지나기 전, 동남아는 우리가 생각하던 아름다운 자연과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는 곳이 아닌, 잦은 태풍, 변덕스러운 기후, 폭염, 폭우로 더 이상 가기 힘든 곳이 되어 있을지 모른다. 적어도 기후 환경 문제에 있어서는 동북아와 동남아가 연대하여 통일된 목소리와 힘을 모아야 하는 시점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이성득 인도네시아 UNAS경영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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