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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의 진동부터 숨소리까지…스트라빈스키의 거친 질감을 온몸으로 받아내다

입력 2025-07-14 14:57   수정 2025-07-14 16:12



“신발을 벗고 입장해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13일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 집. 옷차림에도 격식을 갖춰야 하는 보통의 클래식 공연과 달리 이 자리엔 고리타분한 관념이나 불필요한 경계(境界)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무대와 객석 간의 최단 거리는 불과 세 뼘 남짓. 70여 명의 청중은 고정석 없는 마룻바닥에 두 다리를 쭉 편 채로 옹기종기 모여앉았고, 그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온 연주자들은 귀에 꽂히는 듯한 생생한 음향으로 공간을 가득 채웠다. 피아니스트가 페달을 밟으며 생겨나는 진동의 세기가 바닥을 타고 온몸으로 느껴졌고, 바이올리니스트와 첼리스트가 활을 현에 세게 내려치면서 생겨나는 송진 가루의 묘한 향과 땀방울에서 나는 시큰한 냄새가 연신 코끝을 스쳤다.

연주자와 관객들이 더 가깝게 만나야 한다는 취지에서 2002년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박창수의 서울 연희동 단독 주택에서 시작한 마룻바닥 음악회, 더하우스콘서트의 여름 음악 축제인 ‘줄라이 페스티벌’ 얘기다. 7월 내내 열리는 이 페스티벌에서는 매년 한 명의 작곡가가 선택된다. 그의 작품 세계를 집중 조명하기 위해서다. 베토벤(2020년), 브람스(2021년), 슈베르트(2023년), 슈만(2024년) 등을 잇는 올해 축제의 주인공은 ‘20세기 음악의 거장’ 스트라빈스키다. 이날 공연은 스트라빈스키의 ‘이탈리아 모음곡(바이올린·피아노 이중주)’ 연주로 문을 열었다. 그 뒤로 첼로와 피아노의 이중주로 편곡한 버전이 연달아 연주됐다.



무대에 오른 바이올리니스트 김응수(한양대 교수)는 활을 악기에 강하게 밀착해 만든 단단한 음색으로 주제 선율이 품은 맹렬한 악상을 펼쳐내다가 금세 언제 그랬냐는 듯 가벼운 터치로 애절한 선율을 속삭이며 작품의 다채로운 감정선을 섬세하게 드러냈다. 그와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성신여대 초빙교수)는 서로에게 무섭게 달려드는 듯한 거친 질감을 강조했는데, 이는 스트라빈스키 특유의 원초적 에너지를 극대화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워낙 가깝다 보니 바이올린과 피아노 선율이 어긋나는 순간이나 호흡이 변화하는 타이밍에서 발생하는 잡음 등이 여실히 드러나기도 했는데, 오히려 마룻바닥 연주에서만 들을 수 있는 묘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들의 ‘이탈리아 모음곡’이 오랜 연륜에서 우러난 결과물이었다면, 다음 무대인 첼리스트 윤설과 피아니스트 박영성의 ‘이탈리아 모음곡’은 2030세대 젊은 혈기가 넘실대는 산물과도 같았다. 두 연주자는 작품 고유의 굴곡진 선율을 예리하게 처리했고, 셈여림, 질감, 리듬, 악구의 전환에 따라 순간순간 어울리는 역동을 펼쳐내며 강한 몰입감을 불러냈다. 바이올린과 달리 첼로의 경우 엔드핀(연주 시 악기를 바닥에 고정시키는 도구)이 있어 활을 현에 떨어뜨리는 세기, 보잉 속도, 비브라토의 폭 등에 따라 거대한 울림부터 세세한 진동까지 전부 청중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변화하는 음색을 귀로 듣는 것을 넘어 시시각각 바뀌는 공기의 움직임까지 피부로 느끼는 시간은 스트라빈스키의 소리를 새롭게 읽는 기회와도 같았다.



마지막 곡은 피아노 독주로 편곡된 스트라빈스키의 대표작 ‘봄의 제전’이었다. 높은 하이힐 대신 맨발로 등장해 페달을 밟은 피아니스트 김희재는 작품 고유의 ‘날 것의 느낌’을 탁월하게 표현해냈다. 손가락 자체의 무게를 한 음 한 음 떨어뜨리는 듯한 무심한 터치로 신비로우면서도 환각적인 음색을 불러내다가 돌연 망치로 유리를 깨뜨리는 듯한 강렬한 타건을 불러와 스트라빈스키의 공격성과 원시성을 뿜어내는 연주는 청중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기에 충분했다. 파격적이면서도 까다로운 복합 리듬과 조성은 내내 선명하게 조형됐다. 건반을 때리는 힘에 따른 바닥의 진동과 피아노 몸체에서 쏟아지는 거대한 음량은 수많은 음표가 사방팔방으로 튀어 오르는 듯한 생동감마저 불러왔다. 본래의 대규모 관현악에서 느껴지는 광활한 에너지와는 또 다른, ‘봄의 제전’에서 제물로 바쳐질 소녀의 참혹함과 비극적인 정서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귀중한 경험이었다.

스트라빈스키를 중심으로 프로코피예프·쇼스타코비치 등 20세기 러시아 작곡가를 집중 탐구하는 이번 줄라이 페스티벌은 오는 31일까지 이어진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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