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관세 협상을 이끄는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농산물 분야에 대해 전략적 고려가 필요하다”고 14일 밝혔다. 농산물과 관련된 비관세 장벽을 일부 완화하거나 추가적으로 시장을 개방하지 않으면 미국과의 관세 협상 타결이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여 본부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연 방미 결과 브리핑에서 “협상 전 멘데이트(위임)를 얻어야 할 부분에 대해 관계 부처와 이해관계자들의 협의가 꼭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여 본부장은 지난 5일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해 닷새간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 등을 만났다.
여 본부장은 “농산물에선 반드시 지켜야 할 게 있지만, 그렇지 않은 건 협상의 전체 틀에서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했다. 미국은 한국에 쌀 시장 추가 개방과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 금지 해제 등을 요구하고 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소비자 선택권이 넓어지고 물가를 안정화할 수 있는 품목 위주로 접근하면 농민 단체를 설득할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유럽연합(EU)과 일본 등 모든 국가가 빠르게 태도를 바꾸고 있고, 한국은 협상 타결을 원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협상 과정에서 에너지·농산물 등 자국 상품 구매 확대를 통한 무역 균형과 농산물을 포함한 각종 ‘비관세 장벽’ 문제 해결 등을 집중적으로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정부는 농산물에선 양보가 어렵다는 뜻을 밝혀왔다. 이날 여 본부장은 “농산물에서 민감하지 않은 품목은 협상의 전체 틀 안에서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처음 언급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에 대해 “농산물과 비관세 분야에서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기 상당히 어려운 상황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협상 시한이 2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민감한 농산물 시장 추가 개방을 놓고 이해관계자 간 합의를 이뤄낼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전문가들은 덜 민감하고 양보가 가능한 농산물부터 수입 물량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밥상 물가 안정에 도움이 되고 국내 생산량이 적은 품목들이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예를 들어 블루베리와 튀김용 감자는 미국 내 생산 지역별로 검역 조건이 제각각인데, 이런 문제는 바로 해소해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필요하다면 쌀과 소고기 시장도 테이블 위에 올려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을 허용하되 월령 표기를 의무화하거나, 쌀의 경우 미국에 할당되는 저율관세 한도를 늘리는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수입쌀에 40만t까지 저율관세할당(TRQ)을 부과하고 있고, 이 중 미국에 할당되는 양은 13만t이다. 이 외에 수입쌀에는 513%의 관세가 부과된다.
김 교수는 “협상단이 국내 합의를 강조하는 건 협상 여지가 생겼다는 뜻도 되는 만큼 지금이라도 대통령실이 나서 농민을 설득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훈/김리안/이광식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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