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는 실패했다” “수출 제한 때문에 미국이 주도권을 잃을 수 있다” “미국 세수(稅收)에도 부정적 영향을 준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올 들어 미국 반도체 수출 규제에 대해 뱉은 비판 발언이다.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기업인이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핵심 정책을 놓고 작심 발언을 쏟아낸 데는 이유가 있다. 미국의 수출 규제가 중국의 반도체 자립을 부추길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이다. 젠슨 황 CEO의 우려는 곧 현실이 됐다. 중국 인공지능(AI) 반도체의 자존심인 화웨이가 자체 AI 가속기를 개발한 것. 그러자 미국 정부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잠재우기 위해 엔비디아의 저사양 AI 가속기인 H20의 수출을 전격 허용하기로 했다.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화웨이였다. 이 회사는 올초 엔비디아의 보급형 AI 가속기 성능에 버금가는 어센드 910C를 독자적으로 개발해 알리바바 같은 중국 빅테크에 납품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으로 시장을 넓힐 것이란 현지 보도도 나왔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규제가 중국의 AI 반도체 생태계를 단단하게 하고 있다”며 “1~2년 내 중국에 따라잡힐 수도 있다는 우려가 미국 정책에 영향을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엔비디아에 따르면 H20의 중국 판매 실적은 분기당 80억달러(약 11조원) 수준이다. 해외 투자은행(IB)들은 이번 수출 규제 완화로 현재 4.3달러인 엔비디아의 2026회계연도(2025년 2월~2026년 1월) 주당순이익 전망치가 15% 이상 증가할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도 반사이익을 얻을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4월 H20 수출 규제 전까지 엔비디아에 H20용 4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를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HBM 가격이 AI 가속기 판매가격의 5% 안팎인 것을 감안할 때 단순 계산으로 삼성전자의 분기 매출이 5000억원 이상 늘 것이란 관측도 있다.
중국 수출 규제가 완화되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중국 사업에도 숨통이 트일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올 2분기에 약 1조5000억원 규모 재고충당금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상당수는 중국 고객으로부터 수주받아 파운드리 사업부가 생산해 놓은 AI칩과 저가 HBM, D램·낸드플래시 등인 것으로 전해졌다. SK하이닉스도 중국 우시 D램 공장의 공정 업그레이드가 한결 수월해질 전망이다.
신중론도 나온다. 국내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미국 기업인 엔비디아의 사정을 봐준 일회성 조치일 수도 있다”며 “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 완화가 확대될지 예단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황정수/박의명 기자 hjs@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