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J건설(현 대한통운 건설부문)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 동안 98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건설경기는 최악이었고, 신용등급 하락 압력도 컸다. 극장 체인에 4차원 실감형 시스템(4DX)을 공급하는 시뮬라인(현 CJ포디플렉스)도 좀처럼 시장이 확대되지 않아 2014년 자본잠식에 빠졌다. 두 자회사를 두고 고심하던 모회사 CJ와 CJ CGV가 이듬해 자본 확충을 위해 ‘TRS(총수익스와프) 카드’를 꺼낸 이유다. 10년 전 거래를 두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재를 확정한 현시점에서 공정위와 CJ 측 입장은 엇갈렸다. 공정위는 한계기업에 대한 부당 지원이라고 여기는 반면 CJ는 다수 기업이 활용하는 적법한 거래라고 주장하고 있다.

최장관 공정위 시장감시국장은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연 브리핑에서 “한계기업인 계열회사에 대한 사실상의 신용보강·지급보증을 파생상품을 통한 투자처럼 보이도록 은폐한 행위를 제재한 사례”라고 말했다. 당시 시장 퇴출 위기에 처한 CJ건설과 시뮬라인을 지원하기 위해 CJ와 CJ CGV가 자사가 손해 보는 구조의 거래를 짰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모회사의 지원으로 CJ건설과 시뮬라인이 각각 500억원, 150억원어치의 전환사채(CB) 발행에 성공해 기사회생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CJ건설은 31억원, 시뮬라인은 21억원의 이자비용을 아꼈고, 이런 신용보강 대가를 모회사에 지급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CJ 측은 CJ건설과 시뮬라인이 당시 일시적인 신용 위기에 처했을 뿐 잠재적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이었다고 반박했다. TRS 거래를 통한 CB 발행이 유상증자와 채권 발행 등 여러 대안 중에서 모회사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경영상의 결정이었다는 주장이다. CJ 관계자는 “증자는 주주 동의가 필요하고, 채권 발행은 여러 조건이 불리했다”며 “당시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TRS 활용이 부담도 덜하고, 자회사로선 자본금 확충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 방안이었던 것”이라고 했다.
이 거래 이후 CJ건설은 되살아났고, 시뮬라인도 4DX 분야에서 글로벌 극장 체인에 관련 상품을 공급하는 수출기업이 됐다. 공정위는 이를 두고 ‘경쟁질서 제한’과 ‘거래질서 훼손’이라고 봤다. 최 국장은 “CJ건설의 도급 순위가 오르며 독립 중소 건설사의 경쟁 기회가 제한됐고, 시뮬라인의 경우 퇴출 위기를 모면한 뒤 잠재적 경쟁사가 배제돼 시장에서 사실상 유일한 사업자가 됐다”고 했다.
재계 관계자는 “자본시장에 널리 통용된 TRS 거래를 통해 기업이 살아난 걸 문제 삼는다면 회사가 망하고, 직원들이 길거리에 나앉도록 모회사가 그대로 방치하라는 것인가”라고 꼬집었다.
재계에선 앞으로 공정위의 TRS 제재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그동안 한화, KT, 신세계, 호텔롯데 등 여러 기업이 비슷한 거래를 했기 때문이다. 최 국장은 “다른 기업의 TRS 거래에 대해서도 인식하고 있고, 탈법적 보증행위를 확인하면 제재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 자본시장법 전문가는 “전환권이 존재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TRS를 통한 CB 발행 자체가 부당 지원이 될 수 있다는 전례가 생긴 것”이라며 “기업들이 그동안 자회사 유동성 보강 통로로 활용하던 TRS가 사실상 봉쇄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은/김대훈 기자
▶총수익스와프 (TRS)
total return swap. 기초자산인 주식, 채권 등의 신용·시장 위험을 매수자에게 이전하는 파생금융상품. TRS 매도자(증권사)가 자본이득, 손실 등 모든 현금흐름을 TRS 매수자(기업 혹은 운용사)에게 이전하고 그 대가로 약정이자를 받는 계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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