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밸류업 CEO’ 공동 2위에 박정원 두산 회장과 김민철 대표가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총주주수익률(TSR) 1393.8%의 뛰어난 성과를 기록하며, 두산 지주사 체제의 저력을 시장에 각인시켰다.
두산은 지주사 디스카운트 해소는 물론, 자회사인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로보틱스, 두산밥캣 등 핵심 자산의 가치를 시장에서 재평가받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기업 밸류업이 단기적인 재무 성과를 넘어서, 구조 개편과 경영 전략의 일관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구조조정의 상징에서 밸류업 모범 사례로
특히 박 회장은 코로나19 이후 그룹의 전면적인 체질 개선을 이끌며 핵심 사업군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데 중심 역할을 했다. 김 대표는 최고재무책임자(CFO)로서 지주사 운영의 실질을 강화하고, 재무 전략을 바탕으로 주주 가치 제고 흐름을 이끄는 데 기여했다.

두산은 불과 4~5년 전만 해도 유동성 위기와 구조조정의 상징으로 거론되던 기업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지배구조 개선, 재무 건전성 회복, 핵심 포트폴리오 정비 등을 통해 시장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저평가 원인으로 지적됐던 불확실성이 큰 사업 구조와 재무 리스크를 해소하며, 지주사 가치 제고의 모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박 회장은 그룹의 총수이자 최고경영자(CEO)로서, 장기적인 방향성과 비전을 제시하며 기업 가치 제고를 진두지휘했다. 박 회장이 이끈 기업 가치 제고 전략의 핵심은 ‘주주 가치 중심의 경영’과 ‘선제적 사업 구조 혁신’이었다.
특히 2020년 유동성 위기 상황에서 과감한 자산 매각과 재무 구조 조정에 나서며 시장의 신뢰를 회복한 것이 전환점이 됐다. 이후 두산은 핵심 자회사 중심의 포트폴리오로 재정비됐고, ‘지주사 디스카운트’가 해소되면서 밸류에이션도 함께 상승했다. 이 과정에서 김 대표는 CFO로서 그룹의 재무 전략 수립과 실행을 주도했다.
에너지·기계·반도체, 3대 성장축 구축
두산은 채권단 체제 이후 두산테스나를 인수하며 반도체 사업에 새롭게 뛰어들었다. 최근 전자BG의 첨단 소재를 활용한 제품이 글로벌 시장에서 각광받으며 실적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박 회장은 기존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퓨얼셀로 대표되는 ‘차세대 에너지’와 두산밥캣, 두산로보틱스의 ‘기계·자동화’에 이어 ‘반도체·첨단소재’ 분야를 새로운 사업 축으로 해 3대 축을 중심으로 미래 성장 기반을 다지고 있다.

또한 두산은 배당 확대와 더불어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등 적극적인 주주 환원 정책을 병행하며 주주 중심 경영 이미지를 강화해 왔다. 2024년부터는 두산로보틱스 상장 등 비상장 자회사 기업공개(IPO)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서 보유 자산 가치에 대한 시장의 재평가가 이뤄졌다.
실적 측면에서도 안정적인 회복세를 보였다. 2022년 이후 수익성 개선과 함께 기업 가치가 재평가됐다. 2024년 기준 두산그룹의 매출액은 18조1329억 원, 영업이익 1조38억 원을 기록했다.

유동성 위기 이후, 두산의 변화는 단순한 재무 구조 개선에 그치지 않았다. 구조조정의 고통을 딛고, 사업 포트폴리오 전반을 혁신적으로 개편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2020년 두산그룹은 두산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의 유동성 위기와 그룹 차원의 자금 부족 문제로 산업은행 등 채권단의 긴급 자금 지원을 받으며 ‘뼈아픈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했다. 당시 두산은 두산솔루스, 두산모트롤BG, 두산인프라코어 등 알짜 자회사를 잇달아 매각하며 체질 개선에 나섰고, 시장에 재무 건전성 회복 의지를 강하게 보여줬다.
창립 130주년 향해 가는 장수기업
그러나 두산의 변곡점은 단순한 자산 매각에서 멈추지 않았다. 구조조정 이후, 두산그룹은 사업 전략의 중심축을 재편했다. 특히 그룹의 주력 계열사였던 두산중공업은 2022년 사명을 두산에너빌리티로 변경하고 원자력, 수소, 풍력 등 차세대 에너지 분야를 중심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사명 변경은 단순한 명칭 변경이 아닌, 에너지 전문 기업으로서 정체성을 재정의하고 시장과의 신뢰를 새롭게 구축하기 위한 선언이었다.
박 회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기술과 제품 경쟁력은 입증한 만큼 자신감을 갖고 치열하게 시장을 이끌어 나가자”고 임직원들에게 당부했다.
내년 창립 130주년을 앞두고 있는 두산그룹은 ‘변화 DNA’와 이를 뒷받침한 ‘차세대 동력 발굴’을 장수의 비결로 꼽는다. 특히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수요가 증대되고 있는 에너지 분야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바탕으로 핵심 파트너의 입지를 강화해 가고 있다.
지난 2016년 3월 두산그룹 회장에 취임하며 재계에서 처음으로 4세 경영 시대를 연 박 회장은 취임과 동시에 기존 사업의 기술 경쟁력과 수익성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한편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한 신사업 투자에도 적극 나섰다. 박 회장은 차세대 에너지, 기계·자동화, 반도체·첨단소재 사업을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새로운 두산을 이끌고 있다.
박 회장은 두산그룹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장기적 성장성이 높은 핵심 사업군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데 집중해 왔다. 특히 그는 탈탄소 전환, 수소터빈,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차세대 에너지 분야를 그룹의 첫 번째 성장 축으로 삼았다. 전통 발전 사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도, 신재생·친환경에너지 기업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한 것이다.

무탄소 에너지에 필요한 기술·역량 모두 보유
특히 두산에너빌리티는 청정 전기 생산을 위한 가스터빈과 대형 원전, SMR을 비롯해 수소터빈, 해상풍력 등 다양한 발전 주기기 부문에서 기술경쟁력을 높이며 공급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세계 다섯 번째로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 개발에 성공한 두산에너빌리티는 이 분야에서 기술력을 검증받으며 수주를 확대해 가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13년부터 340여 개의 국내 산학연과 함께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 개발에 착수했으며, 1조 원 이상의 자체 투자와 기술 개발로 2019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개발에 성공했다.
SMR 시장에선 ‘글로벌 SMR 파운드리(생산 전문 기업)’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70여 개의 SMR이 개발되는 가운데 두산에너빌리티가 2019년부터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 뉴스케일의 SMR 모델은 2020년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 인증 심사를 사상 처음으로 통과했다. 2023년에는 미국의 4세대 고온가스로 SMR 개발사인 엑스-에너지와 지분투자 및 핵심 기자재 공급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고, 지난해 말에는 미국 테라파워와도 SMR 주기기 제작성 검토 및 공급권 확보 계약을 체결하며 SMR 설계사들과 협력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두산은 풍력발전 분야에도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지난 2005년부터 풍력 기술 개발에 매진해, 순수 자체 기술과 국내 최다 실적을 보유한 해상풍력발전기 제조사다. 지난 2011년에는 아시아 최초로 3메가와트(MW)급 해상풍력발전기를 개발해 국제인증을 받았다. 2019년에는 5.5MW 해상풍력발전시스템 국제기술인증을 획득했다. 최근엔 국책과제로 개발 중인 8MW급 해상풍력발전 시스템이 국제인증을 취득했다.
박정원 회장, “유럽은 두산밥캣 제2의 홈마켓”
두 번째 축은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로 대표되는 ‘기계·자동화’ 부문이다. 두산밥캣은 글로벌 소형건설장비 시장에서의 안정적인 경쟁력을 기반으로 그룹의 수익성을 뒷받침하고 있으며, 두산로보틱스는 협동로봇 시장 1위 자리를 공고히 하며 제조업 자동화의 핵심 자산으로 부상했다.
두산의 산업기계 영역을 담당하고 있는 두산밥캣은 최근 5년간 외형이 2배로 커질 정도로 성장성이 돋보인다. 이런 성장성은 두산밥캣이 가진 북미 시장의 독보적인 브랜드 인지도와 탄탄한 영업망을 활용해 제품 포트폴리오를 강화한 덕분이다. 특히, 두산밥캣의 신사업인 농업 및 조경용 장비(GME)는 강력한 브랜드 파워와 제품력을 기반으로 북미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 중이다.

두산로보틱스는 독자적인 토크센서 기술을 기반으로 업계 최고 수준의 안전성을 제공하는 협동로봇을 생산하고 있다. 업계 최다 라인업과 사용 편의를 위한 직관적 인터페이스를 갖추고 있어 2018년부터 줄곧 국내 협동로봇 시장 점유율 1위를 지켜 왔으며, 북미, 서유럽 등 해외 판매가 늘어나면서 국내 협동로봇 기업 최초로 ‘글로벌 톱4’에 진입했다.
박 회장은 지난 4월, 독일에서 열린 유럽 최대 건설기계 전시회를 찾아 “유럽 시장은 북미에 이어 두산밥캣의 지속 성장을 뒷받침할 제2의 홈마켓”이라며 “밥캣만의 혁신 기술로 시장을 선도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유럽은 두산밥캣 매출 비중에서 북미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중요한 시장이다. 두산밥캣 전체 매출의 15~20%가 유럽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특히 두산밥캣은 신기술 도입과 포트폴리오 확장 등으로 최근 4년간 유럽 시장에서만 연평균 8%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세 번째 축은 두산테스나와 전자BG로 상징되는 ‘반도체·첨단소재’ 부문이다. 박 회장은 두산이 기존에 영위하던 에너지(발전), 산업기계 부문과 함께 그룹을 이끌어 갈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며 미래 성장 잠재력이 큰 반도체 및 첨단 정보기술(IT) 분야의 사업 발굴과 육성에도 주력하고 있다.
두산은 자동화·무인화·스마트화 등 디지털 전환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는 상황에서 반도체 수요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반도체 분야 진입 기회를 꾸준히 모색해 왔다. 그 결과 두산은 2022년 국내 반도체 테스트 분야 1위 기업인 테스나(TESNA) 인수를 결정했다. 테스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와 카메라이미지센서(CIS) 등 시스템 반도체 제품에 대한 테스트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다. 국내 동종 기업 중 최상위권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며, 특히 웨이퍼 테스트 분야에서는 시장점유율 1위를 굳게 지키고 있다.
두산은 적극적 투자를 통해 국내 1위 반도체 테스트 전문 업체로서 테스나의 경쟁력을 확고히 하고, 중장기적으로 첨단 패키징 기술을 확보하는 등 반도체 후공정 전문 회사로 사업 영역을 점차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처럼 박 회장이 그리는 두산의 미래는 세 가지 성장 축을 기반으로 한 ‘안정성과 성장성의 동시 추구’에 방점이 찍혀 있다. 단기적인 위기 대응에 그치지 않고, 중장기적 성장 전략으로 밸류업을 실현한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전자BG 성장 본격화…AI 수혜주로 재조명
두산은 최근 AI 수요 확산의 최대 수혜주로 급부상하며 주가가 크게 올랐다. 그 중심에는 전자BG(전자사업부)의 고성능 동박적층판(CCL) 공급 확대가 있다. 두산은 세계 최대 AI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에 차세대 그래픽처리장치(GPU) ‘블랙웰’ 시리즈용 CCL을 독점 납품하고 있으며, AI 서버 수요 증가와 함께 관련 매출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전자BG 매출은 처음으로 1조 원을 돌파(1조?72억 원), 영업이익은 1226억 원을 기록했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실적이 단기적 수혜에 그치지 않고, 두산그룹의 새로운 핵심 성장 축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반도체 패키징 소재와 전기차용 첨단 소재 등으로의 확장 가능성도 주목받고 있다.
두산은 지난 2월 이사회를 통해 3600억 원 규모 자사주를 소각하는 주주 환원 계획을 결의했다고 공시한 바 있다. 이번 중장기 주주 환원 계획은, 보통주 발행주식 총수의 약 6%인 99만 주를 연간 33만 주씩, 3년에 걸쳐 균등하게 소각하는 것으로, 25일 종가 36만3000원 기준 약 3600억 원 규모다. 세부 일정은 별도 이사회를 거쳐 공시될 예정이다.
두산 관계자는 “앞으로 시장 상황과 경영 환경 변화를 면밀히 모니터링하며 주주 환원을 위한 최적의 방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할 계획”이라며 “주주와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중장기 주주 가치 제고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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