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7월 30일 09:48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민간 자본을 통한 혁신 산업 투자 확대를 위한 이재명 정부의 전략이 속속 구체화되고 있다. BDC(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 첨단전략산업 국민펀드 등을 도입해 벤처·스타트업 등 비상장기업들이 대규모 자금을 유치할 길이 열리고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정작 BDC 등의 투자 대상인 비상장기업에 대한 주식 관리 체계는 여전히 뒤떨어져 있다. 주식 관련 사무 대부분이 수기로 처리되면서 투자 이후 주식을 관리하고, 사후에 투자 성과를 검증할 시스템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이는 투자금 운용의 투명성과 신뢰성 확보에 큰 허점으로 지적된다.
'깜깜이' 비상장 주식 관리
30일 벤처캐피탈업계에 따르면 지난해말 등록된 비상장 벤처기업 3만8604곳 가운데 한국예탁결제원에 증권 발행·등록을 완료한 기업은 1221곳(3.2%)에 그쳤다.벤처·스타트업 상당수는 주식 관련 전문 인력조차 없어 주주명부를 엑셀 파일을 활용해 수기로 관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명부에는 주식 수량, 발행금액, 지분율, 주주의 개인정보 등 주요 정보가 담겨 있다.
IPO(기업공개)를 준비하면서 비로소 전자증권으로 전환하거나 통일주권 발행을 검토하는 수순이다. 그 전까지는 외부 투자자와의 거래, 내부 지분 변동 관리, 스톡옵션 발행 등 중요한 주식 사무가 규정된 절차 없이 자의적으로 이뤄진다. 2019년부터 시행된 전자증권제도가 비상장기업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한 벤처캐피탈 관계자는 “일부 스타트업은 주식 발행 내역이 정리돼 있지 않아 실사를 통해 확인해야 할 정도로 관리가 안 되는 경우도 많다”며 “이처럼 투자 이후 주식 관리 리스크가 커지는 점은 투자를 망설이게 되는 요소 중 하나”라고 말했다.
벤처투자 출자자(LP)들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담당자들은 한해에만 수만건에 이르는 투자 회사의 주식사무와 관련 서류를 GP(운용사)로부터 이메일이나 팩스로 수령한 뒤, 이를 수기로 집계하고 있다. 현장에서 업무 비효율성이 극심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문제는 이런 ‘아날로그 방식’이 투자 투명성을 해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비상장주식을 이용한 사기 사건 대부분은 투자자가 외부에서 해당 기업의 자본 변동 사항이나 주식 발행 내역을 쉽게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을 악용한 경우다.
스톡옵션이나 전환사채(CB) 등으로 지분율이 변동된 후에도 기존 투자자에게 이를 고지하지 않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관리체계 부실이 불완전판매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제도는 있지만 실효성은 미비
전자증권법에 따라 상장회사 주식은 발행부터 유통, 보관, 결제, 등록까지 전 과정이 한국예탁결제원을 통해 관리된다. 그러나 비상장기업의 경우 증권 인프라 밖에 놓여 있다. 예탁결제원도 예산과 인력의 한계로 모든 비상장주식 발행 업무를 전담하긴 한계가 있다.2019년 전자증권법이 시행되면서 법적으로 예탁결제원의 독점 구조는 해소됐다. 하지만 현재까지 전자등록을 사업으로 수행하겠다고 나선 민간 사업자는 사실상 전무하다. 전자증권법 개정의 실효성이 비상장 주식 시장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금융당국도 소극적이다. 비상장사의 전자등록 비용 부담 등으로 실질적 수요가 많지 않다는 판단이다. 당장 민간 사업자가 전자등록업 허가를 신청하더라도 심사 기준 및 절차 등과 관련된 실무적 준비도 이뤄지지 않았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비상장주식의 전자등록 필요성에 대해 시장 수요와 여건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해외 주요국은 비상장기업의 주식 관리 투명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영국, 싱가포르, 네덜란드 등은 벤처기업의 주식 발행 내역을 신고제로 관리하거나 전자등록을 의무화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투자금의 투명한 운용을 위해 최소한 정부 정책자금을 투자 받으려는 기업부터라도 전자등록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비상장주식 전자등록을 의무화하는 전자증권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벤처캐피탈 관계자는 “전자등록 의무화가 모든 기업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은 감안하되, 정책펀드 투자 기업 등 필요성이 높은 기업부터 적용하는 방안을 현실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며 “투자금의 집행과 지분 현황을 시장이 추적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결국 혁신 생태계에 신뢰를 심는 길”이라고 말했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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