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은 산업 재편을 넘어 국가 생존이 걸린 기술 패권 경쟁 국면으로 진입했다. 미국은 ‘반도체 및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을 통해 반도체산업에 520억달러를 직접 투자했고, 유럽연합(EU)은 ‘유럽반도체법’(European Chips Act)을 통해 공동투자와 규제 완화를 동시에 추진 중이다. 중국은 ‘중국제조 2025’를 통해 반도체, 바이오, 전기차 등 10대 전략산업을 국가 주도로 집중 육성하고 있다.한국 역시 2022년 ‘국가첨단전략산업법’(국첨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산업계는 국첨법이 기술 보호 중심으로 설계돼 실질적인 기업 유인책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 핵심에는 ‘입지 제한’과 ‘인센티브 미비’라는 두 가지 근본적 문제가 있다. 특히 국첨법은 수도권정비계획법 등 기존 규제를 그대로 적용받아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내에서는 공장 신설과 증설이 사실상 제한된다. 즉 수도권에 특화단지를 지정해도 실제로 국내 기업이 반도체 팹(Fab), 바이오 생산시설 같은 제조시설을 설치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반면 외국인투자기업을 대상으로 한 ‘경제자유구역법’(경자법)은 훨씬 유연하다. 외자 비율이 30% 이상을 충족하면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내에서도 공장 설립이 가능하다. 이런 예외 조항 덕분에 인천 송도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등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 생산시설을 갖춰 글로벌 바이오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국첨법이 제공하는 인센티브는 제한적이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나 인허가 특례 정도는 있지만 법인세 감면, 토지 임대료 할인, 고용보조금 같은 직접적이고 예측 가능한 유인책은 미비하다. 반면 경자법은 세제, 금융, 행정 절차 등 전방위 인센티브를 체계적으로 제공한다. 전략산업 특화단지에 진입하는 국내 기업이 오히려 경자구역에 입주하는 외국인투자기업보다 적은 혜택을 받는 역전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제는 이런 이중 구조를 해소해야 한다. 국가가 전략적으로 지정한 특화단지라면 최소한 그 안에서는 기업이 자유롭게 설비를 설치하고 인력을 유치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 입지 규제 완화, 세제 혜택, 행정 간소화는 선택이 아니라 전제조건이 돼야 한다.
지역 균형발전의 관점에서는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지만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산업의 광역화를 이뤄낼 수 있다는 점도 주지해야 한다. 현재 광주는 인공지능(AI)·미래차, 전북은 탄소 소재, 대구는 의료기기, 강원은 수소 등 지역별로 특화된 전략기술 거점이 빠르게 성장 중이다. 이들 전략기술 거점과 수도권 전진기지가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해 거대한 산업 체인을 형성해야만 지역 균형발전과 대한민국 산업 글로벌 경쟁력 확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지금이 바로 법과 제도를 리뉴얼할 골든타임이다. 정부는 국가첨단전략산업법을 경제자유구역법 수준으로 정비하고, 수도권이든 지방이든 대한민국 어디든지 준비된 곳에는 입지 규제 완화, 세제 혜택, 규제 개선이라는 3박자 인프라를 아낌없이 제공해야 한다. 국내·외, 수도권·지방이라는 구분을 넘어 수도권 규제를 개선하고 수도권 개발이익을 지방과의 광역화를 통해 상생 발전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이제는 규제가 아니라 전략으로 지난 몇 년 동안 잃어가고 있는 글로벌 경쟁력을 되찾는 ‘진짜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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