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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로 엮은 고릴라·기린·사자…기후위기 피해 2만㎞ '대이동'

입력 2025-07-31 16:52   수정 2025-08-01 02:07

영국 런던에 야생동물이 나타났다. 새벽녘, 타워브리지를 건너 도심으로 들어온 100여 마리의 실물 크기 코끼리와 기린, 사자, 가젤 등 퍼펫 동물들은 도시를 가로질렀다. 지난 6월 27일의 일이다.

이들은 2025년 4월 9일 콩고에서 출발해 유럽 주요 도시를 거쳐 북극권까지 이어지는 2만㎞ 여정을 수행 중이다. 남에서 북으로 이어지는 이 퍼포먼스는 기후 재난을 피해 이동하는 생명의 흐름을 상징한다. 열대우림에서 해빙 지대까지 이어지는 광대한 여정은 생존을 위한 탈출이자 언어를 갖지 못한 존재들의 소리 없는 저항이다. 이 동물들은 런던을 지나 7월 초 맨체스터로 향했다.

‘더 허즈(The Herds)’는 전례 없는 규모의 예술 프로젝트이자 기후 행동 캠페인이다. 예술감독을 맡은 이는 팔레스타인 출신 연출가 아미르 니자르 주아비다. 전쟁, 난민, 상실 등을 예술로 풀어내며 공동체 기반 프로젝트를 이끌어온 그는 2021~2022년 ‘리틀 아말(Little Amal)’ 프로젝트로 주목받았다. 3.5m 신장의 난민 소녀 퍼펫 ‘아말’은 터키-시리아 국경에서 맨체스터까지 8000㎞를 걸으며 유럽 전역 공동체와 협업했다.

더 허즈는 그 거리와 규모가 확장된 이동형 퍼포먼스다. 해수면 상승으로 마을이 물에 잠긴 섬 주민, 가뭄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 농부, 산불로 집을 잃은 사람들. 이들은 기후 재해 때문에 집을 떠나야 하지만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보이지 않는 난민이라고 불린다. 100년 만의 불볕더위와 ‘역사상 최악의 더위’가 반복되는 시대에 기후 난민은 이제 인간에 국한되지 않는다. 기후 변화는 인간뿐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직접적인 생존 위기를 가져온다. 가뭄으로 먹이와 물이 부족해지고, 산불로 서식지를 잃기도 하며 북극곰이 살 수 있는 얼음 땅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느낀 듯, 거대한 퍼펫 동물 무리가 기후 재난을 피해 달리기 시작했다.

런던 퍼포먼스 당시엔 타워브리지 야외 공연장 ‘더 스쿱’에서 객석에 조용히 앉아 있던 한 관객의 개가 맹렬히 짖기도 했다. 종이로 만들어진 퍼펫이 조종사들과 호흡하며 살아 있는 동물처럼 움직이자 본능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퍼펫들은 공연장 주변으로 모여들어 사람들을 관찰했고, 키 큰 기린이 목을 내밀었다. 원숭이들이 난간을 따라 움직이고 치타는 객석 중앙 계단을 타고 무대로 내려왔다. 런던의 초등학생들과 어린이 전용 유니콘 극장이 함께 만든 무대에서 아이들은 율동과 노래로 미래를 이야기했고, 동물들은 조용히 그 장면을 함께했다.

런던은 전 세계에서 모인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다. 이곳의 예술은 다층적인 시선과 협업 속에서 펼쳐진다. 더 허즈 프로젝트 또한 이런 토양 위에서 탄생했다. 런던예술대, 로열발레단과 로열오페라, 서머싯하우스를 비롯해 거리 예술가와 지역 단체들이 힘을 모아 거대한 예술 실험을 이뤄냈다.

퍼펫은 아프리카 퍼펫 예술 단체 ‘우크완다(Ukwanda) 퍼펫 & 디자인 아트 콜렉티브’가 디자인한 모형을 바탕으로 런던예술대 학생들이 이를 확장해 실물 크기로 제작했다. 색을 칠하거나 다른 소재를 덧붙이지 않고 판지로만 인형을 만들었는데, 틈을 이용해 얼룩말의 줄무늬를 표현하는 등 아이디어가 빛났다. 이처럼 동물들은 종마다의 특징을 잘 드러내면서도 유연하게 움직였고, 퍼펫티어들은 동물의 실제 움직임을 관찰하고 퍼펫과 함께 호흡하며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이 프로젝트는 도시마다 새로운 참여자들과 함께 ‘현장에서 다시 태어나는’ 공연이다. 각 도시의 리듬과 공간에 맞춰 기획이 수정되고 참여자들도 지역 기반으로 모집됐다. 이동을 줄여 탄소 배출을 줄이고, 현지 커뮤니티와 연계하는 방식이었다. 더 허즈는 환경 메시지 전달을 넘어 공연예술이 기후 위기 시대의 새로운 예술 언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구체적인 몸의 감각으로 환기하는 이 퍼포먼스는 예술이 어떻게 삶의 감각을 다시 세울 수 있는지를 묻는다.

런던=정재은 아르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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