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미 관세장벽을 높이면서 자유무역협정(FTA)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있다. 전통적인 대미 수출길이 흔들리자 대기업보다 위기 대응력이 떨어지는 중견기업은 큰 도전에 직면했다.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은 이럴 때일수록 정부와 기업이 똘똘 뭉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지난 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신(新)관세 시대를 헤쳐 나가려면 FTA 때보다 강력한 민관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장비·소재 분야 중견기업인 심팩 대표를 겸임하고 있는 최 회장과의 일문일답.
▷미국발 관세로 어려움이 큽니다.
“한국 중견기업들의 미국 수출은 꾸준히 증가해 왔습니다. 지난해 중견기업의 대미 수출액 대비 무역수지 흑자율은 56%였습니다. 대기업(47%)과 중소기업(28%)보다 월등히 높습니다. 이 때문에 중견기업들이 15%로 확정된 한·미 상호 관세율을 더 많이 걱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철강과 자동차부품 기업이 제일 힘들다고 합니다. 과연 우리가 어떻게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미국에 수출할 수 있을지 고민이 큽니다.”
▷철강업계 사정은 어떤가요.
“올해 6월부터 철강과 알루미늄의 50% 고율 관세는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한국은 아직 미국에서 철강을 생산할 능력이 없어 미국에 전기로가 있는 일본이나 유럽연합(EU)과 똑같은 관세율을 적용받아도 불리한 부분이 많습니다. 국내 철강업체들은 산업용 전기요금 때문에 원가 경쟁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미국발 관세까지 맞아 그야말로 설상가상입니다.”
▷관세가 중견기업에 많이 불리합니까.
“경쟁국인 일본·EU와 같은 15% 관세율로 확정된 건 불행 중 다행입니다. 우리가 미국 수출 경쟁력을 그렇게 많이 훼손당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현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중국과 미국의 관세 협상 결과입니다. 국내 중견기업이 아직 많은 부분에서 중국과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죠.”
▷관세보다 더 큰 위기 요인이 있나요.
“중국 자체가 가장 큰 위협입니다. 트럼프 2기 정부의 강경한 정책 기조는 상수죠. 중국 때문에 한국 주력 산업인 자동차, 석유화학, 전자부품, 철강 등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은 풍부한 자원과 노동력을 기반으로 국가 차원의 물량 공세를 쏟아붓고 있죠. 반도체와 우주항공, 인공지능(AI) 등 중국 정부가 국가전략기술로 정한 50개 분야로 한정하면 중국은 이미 한국을 크게 넘어섰습니다.”
▷중국의 공세를 체감하나요.
“우리가 20년 전 프레스 기기를 공급한 메이티라는 중국 화장품 회사가 있습니다. 광저우에 있는 그렇게 크지 않은 회사였는데 얼마 전 독일 최고의 프레스 자동화 기업인 쿠커를 인수했어요. 고객사였던 중국 화장품 회사가 프레스 자동화 업체를 사서 우리와 경쟁하고 있는 거죠. 중국 정부가 끊임없이 기업에 자금을 지원해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돌파구가 없습니까.
“우리가 중국과 제대로 경쟁할 수 있는 분야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중국 정부의 지원에 맞서려면 우리는 민간 분야에서 역동성과 창의성을 키워야 합니다. 그나마 K컬처, K푸드같이 우리가 프리미엄을 갖춘 분야가 있습니다. 제조업으로 한정하면 AI를 빨리 접목해야 합니다. 자동화를 활용해 제품 경쟁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게 단기적으로 해볼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제도 개선도 뒤따라야겠네요.
“기업이 역동성과 창의성을 발휘하려면 규제 완화가 필수입니다. 고용, 해고 등 노동제도가 유연해야 합니다. 기업이 망하기 전까지 해고할 수 없다면 어떤 기업인도 신사업에 도전할 수 없어요. 또 상속세·증여세율을 낮춰 기업이 지속가능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춰야 합니다. 중견기업들이 상속세 최고세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30%까지 인하해달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정부의 다른 지원도 필요한가요.
“미국발 관세 부담으로 수출 기업에 15% 정도 달러 자금 부담이 더 생겼습니다. 정부는 우선 수출 금융 지원을 세심하게 들여다봐야 합니다. 최소 15%나 그 이상의 저리 자금을 수출 중견·중소기업에 제공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FTA를 체결했을 때보다 훨씬 강력한 민관 협력 체계가 필요한 때입니다.”
▷어떤 협력이 가능할까요.
“이번 한·미 관세 타결 협상에서 봤듯이 중국 대비 경쟁력이 있는 조선 같은 산업을 더 육성해야 하고요. 또 우리가 호주나 카타르에서만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할 게 아니라 미국에서도 수입해야 합니다. 민관이 함께 연구해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미국 본토나 알래스카를 구분하지 말고 셰일가스와 LNG를 가져와야죠. 민관이 함께 나서서 미국과 전략적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 최진식 회장 약력
△1958년 경기 고양 출생
△1977년 서울 한영고 졸업
△1983년 동국대 무역학과
△1991년 연세대 경영학 석사
△1999년 한누리투자증권 전무이사
△2001년 쌍용정공 인수, 심팩 창립
△2022년~현재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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