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난히 뜨거웠던 올여름 무더위도 막바지 자락에 접어들었다. 특히 건설 등 야외 작업을 하는 곳은 폭염과 싸우느라 더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한낮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선 사고 위험을 줄이려 작업자들의 안전 확보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우리가 글쓰기를 할 때 어려워하는 표기가 하나 눈에 띈다. ‘작열하는 태양’의 ‘작열’이 그것이다. 작열? 작렬? 장렬? 일상에서 흔히 하는 말인데 막상 쓰려다 보면 알쏭달쏭해진다.
우선 ‘작열하다’를 보자. ‘불 따위가 이글이글 뜨겁게 타오름’이 작열(灼熱)이다. ‘불사를 작(灼), 더울 열(熱)’로 이뤄졌다. 둘 다 글자에 ‘불 화(火)’ 자가 들어 있음을 염두에 두면 알기 쉽다(熱 자 아래쪽 점 4개가 부수 火의 이체자다). 올여름 내내 입에 오르내렸던 ‘이열치열, 열대야, 열사병’ 같은 말에 모두 같은 ‘열(熱)’ 자가 들어 있다.
‘작렬하다’의 ‘작렬(炸裂)’은 ‘터질 작, 찢을 렬’ 자다. 그래서 포탄 따위가 터져서 쫙 퍼지는 것을 뜻한다. ‘장렬(壯烈)하다’는 ‘장할 장, 세찰 렬’이다. ‘장하다’는 기상이나 인품이 훌륭하다는 뜻이니 ‘장렬하다’는 곧 의기가 씩씩하고 굳세고 열렬함을 나타낸다. 이들은 의미에 따라 각각 “① 태양이 작열하다 ② 포탄이 작렬하다 ③ 최후를 장렬하게 마치다”처럼 구별해 쓰인다.
이들 단어의 표기에는 우리말의 큰 줄기 중 하나인 두음법칙이 적용돼 있다. 두음법칙은 간단히 말하면 “단어 첫머리에 ㄴ, ㄹ이 오는 것을 피한다”는 규정이다(한글맞춤법 11항). ‘녀자(女子)’라 하지 않고 ‘여자’로, ‘력사(歷史)’가 아니라 ‘역사’로 적는 게 이 규정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이는 뒤집어 말하면 단어 첫머리가 아니면, 즉 중간이나 뒤에서는 본래 음대로 ㄴ, ㄹ을 살려 쓴다는 얘기다. ‘자녀(子女)’, ‘경력(經歷)’ 같은 게 그렇게 해서 나온 표기다. 모국어 화자라면 이런 유의 두음법칙은 대부분 따로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말하고 적을 수 있다.
앞에서 본 것처럼 단어 첫머리가 아닌 경우에는 두음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즉 원래 음대로 적으면 된다. 다만, “모음이나 ‘ㄴ’ 받침 뒤에서는 ‘렬, 률’도 ‘열, 율’로 적는다”. ‘나열[나열], 비율[비ː율], 선열[서녈], 운율[우ː뉼]’ 등에서와 같이 현실 발음이 [열], [율]로 소리 나므로 소리대로 적게 했다.
이런 두음법칙 규정을 ‘작열-작렬-장렬’ 세 단어에 적용해보자. 이들의 한자 구성은 앞에서 살펴보았다. 우선 ‘모음이나 ㄴ받침 뒤’에선 ‘열’, 그 외에는 본음인 ‘렬’로 적는다는 규칙을 잊어선 안 된다. 이 원칙을 적용하면 설령 단어 표기를 모를지라도 “포탄이 작렬하다”이고 “장렬한 전사”처럼 쓴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작열하는 태양”에서는 달라진다. ‘작렬’이 아니라 ‘작열(灼熱)’이다. 앞의 작렬(炸裂)과 장렬(壯烈)에서는 본음이 ‘렬’이지만 작열의 ‘熱’은 본음이 ‘열’이기 때문이다. 본음이 ‘열’이니 이를 ‘작렬’로 적을 이유가 없음은 당연한 이치다. 이런 복잡한 표기 규칙 말고도 이들이 더 헷갈리는 까닭은 발음이 모두 [장녈]로 나기 때문이다. 다음 호에선 ‘작열-작렬-장렬’에 얽힌 발음 논란에 대해 살펴본다.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