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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이프이스트-이성득의 아세안 돋보기] 미국 상호 관세 성적표와 '숙제'

입력 2025-08-12 17:24   수정 2025-08-12 17:25

지난 7월 말까지 글로벌 경제에서 가장 뜨거웠던 화두는 미국의 ‘상호 관세’ 협상이었다. ‘상호’라는 표현이 무색하게, 이는 사실상 미국의 일방적인 관세 부과 방침이었다. 미국 시장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은 다수의 아세안 국가들은 관세율을 낮추기 위해 워싱턴과의 치열한 협상전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2025년 8월 1일, 미국의 ‘상호 관세(Reciprocal Tariffs)’ 정책이 공식 발효됐다.

미국이 말하는 상호 관세는, 교역 상대국이 미국산 제품에 부과하는 무역 장벽과 관세를 근거로 동일한 수준의 관세를 매기는 방식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초기부터 예고됐고, 그 과정에서 이미 세계 무역 질서를 크게 흔들어 놨다. 특히 FTA를 통해 미국산 제품에 거의 무관세를 적용해 온 한국에도 관세를 부과한 점에서, 이번 조치가 ‘공정 무역’이라는 구호보다 미국의 무역 적자 축소, 공급망 재편, 특정 국가 견제라는 전략적 목적에 더 방점이 찍혀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은 이를 통해 자국 제조업 보호와 해외 생산기지의 미국 회귀를 유도하는 한편, 중국을 비롯한 주요 경쟁국의 영향력 약화를 노골적으로 겨냥했다.

관세 발효 직전, 일부 동남아 국가에는 최대 49%라는 고율이 예고되면서 역내 경제 분위기는 급격히 냉각됐다. 장관급 협상과 민간 경제사절단의 잇따른 워싱턴 방문, 정상 간 통화가 이어졌다. 각국 정부는 미국 통상 당국과 비공개로 만나 전략 산업의 중요성과 미국 기업에 제공할 기회를 강조하며 관세율 완화를 설득했다. 그 결과, 최종 관세율은 대부분 20% 안팎으로 조정됐다. 위기는 일단 피한 듯했지만, 장기적인 불확실성과 구조적 취약성은 여전히 남았다.

베트남은 이번 협상의 최대 수혜국으로 꼽힌다. 미국이 처음 제시한 46%의 관세를 20%로 낮췄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적’ 형태로 중국산 제품이 베트남을 거쳐 미국으로 들어올 경우 최대 40%의 처벌적 관세가 부과된다. 이는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제3국 경유 무역에 대한 단속 강화 신호다. 베트남 정부는 미국산 제품에 0% 관세를 적용하겠다는 파격 제안을 내놓으며 협력 이미지를 부각했지만, 동시에 미국의 공급망 요구를 수용해야 하는 부담도 떠안았다. 주요 수출 업종에서는 이미 원자재·부품 조달처를 중국 외 지역으로 옮기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최종 관세율이 25%로 소폭 상승했지만, 반도체와 의약품이 면세 품목으로 남아 충격을 완화했다. 말레이시아는 전 세계 반도체 패키징·테스트 분야 점유율 13%를 차지하며 미국의 공급망과 깊게 연결돼 있다. 의약 원료와 제네릭 의약품 부문에서도 미국 제약업계와 높은 상호 의존도를 보이고 있다. 전략 품목의 면세 유지가 가능했던 배경이다. 말레이시아는 이를 “산업 포트폴리오의 질이 협상에서 강력한 방패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은 약 19%의 관세율로 협상을 마무리했다. 초기 위협 수준보다 낮아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발효와 동시에 원산지 증명 제도를 전면 개편하고 통관 투명성 강화를 발표, 향후 비관세 장벽 확대에 대비했다. 태국은 자동차·부품 산업에서 한숨 돌린 뒤, 전기차 배터리 등 차세대 산업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필리핀은 미국 기업 의존도가 높은 BPO(비즈니스 프로세스 아웃소싱) 산업 덕분에 관세 충격이 제한적이지만, 전자·농산물 수출 확대를 위해 기술 협력을 강화하려 한다.

반면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는 여전히 높은 장벽을 마주했다. 캄보디아는 49%에서 36%로 낮아졌지만, GDP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의류·섬유 산업은 여전히 가격 경쟁력 회복이 어렵다. 라오스는 48%에서 40%, 미얀마는 44%에서 40%로 낮아졌지만, 산업 다변화가 더디고 미국 시장 의존도가 높아 구조적 취약성이 크다. 특히 이들 국가는 작년 미국과의 교역에서 적자이거나 근소한 흑자에 그쳐, 3~40%에 달하는 상호 관세가 실질적으로 어떤 효과를 낼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번 협상 과정은 1987년 발간된 트럼프 대통령의 저서 '협상의 기술(Art of the Deal)'에서 묘사한 방식과 닮아 있다. 처음에는 비현실적으로 높은 수치를 제시해 심리적 압박을 가하고, 이후 완화된 조건을 제안해 ‘양보’를 얻어낸 듯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전형적인 전략이다. 그러나 최종 합의안에는 중국 견제, 공급망 재편, 미국 제조업 회귀라는 목표가 분명하게 반영됐다.

아세안은 개별 국가별로 단기 실리를 챙겼지만, 블록으로서의 결속력 부족이 드러났다. 일부는 산업별 면제를 얻었지만, 다른 국가는 고율 관세를 감수했다. 미국은 국가별로 개별 협상을 진행하며 면제 조건을 차등 부여해 역내 균열을 심화시켰다. 관세율 완화로 숨통이 트인 것은 사실이지만, 비관세 장벽 확대 가능성은 여전히 불확실성을 키운다. 미국은 원산지 증명 강화, 환경·노동 기준 상향, 공급망 투명성 규제 등 새로운 장벽을 예고했다. 이는 단순히 세율을 둘러싼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 속 아세안의 위치를 재정립하라는 압박이다.

8월 1일의 성적표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시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늘의 20%가 내일의 50%로 바뀌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번 협상은 동남아 각국에 “지금이 산업 구조를 바꿀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성적표는 나왔지만, 진짜 시험은 이제부터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이성득 인도네시아 UNAS경영대학원 초빙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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