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군 이래 가장 야구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는 지금, '이렇게 주변에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나' 싶은 정도로 사람들을 만나면 야구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 이후 1000만이 넘는 최다 관중 수를 기록했던 지난해에 이어 2025년엔 8월 초에 이미 900만 관중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야구 경기가 진행되는 날 지하철에선 야구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을, 식당이나 술집에선 삼삼오오 모여 야구 경기를 라이브로 보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뜨거운 열기도 포스트시즌이 끝나 겨울이 오면 식는다. 겨울의 야구장은 불이 꺼지고, 관중석엔 찬바람이 맴돈다.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몇 달 동안 야구장은 긴 겨울잠에 들어간다. 한국의 야구장은 아직 시즌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시 한 구장의 비시즌 풍경은 사뭇 다르다. 하늘 위로 대관람차 불빛이 천천히 번지고, 구장 안 호텔의 옥상에는 바비큐 연기가 피어오른다. 아이들이 회전목마를 타며 웃음을 터뜨리는 사이 어른들은 특산품을 고르고 경기장으로 향한다. 야구장이면서 동시에 쇼핑센터, 공원이자 사계절 열려 있는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이다. 도호쿠 라쿠텐 골든 이글스의 홈구장 라쿠텐 모바일 파크 미야기 구장 얘기다.
단계적으로 진행된 리노베이션은 관람석을 확장하고 상업시설을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식 '볼파크' 개념을 도입해 야구 없는 날에도 사람들이 찾을 이유를 만들어냈다. 현재 구장은 3만 508석 규모로, 경기 관람뿐 아니라 쇼핑, 식사, 휴식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완성됐다.

구장의 외야에는 4000㎡ 규모의 '스마일 글리코 파크'가 자리한다. 높이 36m의 관람차, 회전목마, 놀이터가 연중 운영된다. 경기 중에는 특별관람석, 비시즌에는 도시 전망대와 놀이공원으로 활용된다.
파크 입장권, 경기 입장권, 연간 회원권이 있다면 얼마든지 무료로 탈 수 있어 많은 사람이 경기가 없을 때도 찾는다. 경기장을 찾는 가족은 오후 한때를 이곳에서 보내고, 저녁에는 야구를 관람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2025년 리노베이션을 통해 관람차에 가라오케, 건식 사우나 등을 적용해서 일본 특유의 감성을 더했다. 야구 관람 없이 스마일 글리코 파크를 즐기기 위한 방문도 납득이 간다.

우리나라도 구장별로 유명한 간식거리가 생겨나는 추세다. 라쿠텐 모바일 파크의 경우 '스타디움 구르메'라는 푸드 특화 공간을 점차 강화해 관람객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으로 만들었다. 일반적인 간식거리나 음식을 파는 것이 아니라 지역 특산물을 판매해 지역 경제에 기여하고, 특산물로 구장의 특별 메뉴를 개발해 구장에 오는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로컬 푸드 허브'에서는 미야기현 농가와 직거래한 신선한 식자재로 만든 메뉴를 판매한다.




특히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선수가 참여해 만든 메뉴들이다. 라쿠텐 골든 이글스의 선수와 감독, 치어리더팀, 마스코트까지 메뉴를 함께 고민해 팬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하야카와 타카히사의 '하와이안 헬시 포케', 후지히라 나오진의 '야키토리동', 아사무라 히데토의 '아사무-멘'처럼 선수 이름을 건 메뉴는 팬심과 미식을 동시에 만족시킨다.
만약 그 선수가 트레이드될 경우 해당 메뉴도 함께 사라지는 점은 아쉽다. 하지만 선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표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재미 요소가 됐다. 이 밖에도 다양한 지역 농산물로 만든 특별 메뉴들이 시즌별로 나온다. 이렇게 다양한 특산물 활용은 관광객에게는 미야기 특산물을 알리고, 지역 농가에는 안정적인 판매처가 된다.

라쿠텐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일본 최초로 야구장 내 호텔을 도입한 것이다. 2020년 스마일 글리코 파크 내 카페 건물을 리모델링해 4실 규모의 이글스 테마 숙소를 조성했다. 발코니나 옥상 테라스를 통해 파크와 구장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특별한 객실을 만들어 경기 날에는 응원 열기를, 비시즌에는 한적한 풍경을 즐길 수 있다. 경기 전후로 숙박을 즐기는 여행객, 지역주민이 자연스럽게 구장을 드나든다. 쇼핑, 테마파크 이용과 야구 경기 관람을 함께하는 '경기+여행 +휴식'의 패키지다. 3대 요소를 이어지는 동선은 야구장을 365일 살아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런 모든 변화가 결코 헛된 투자가 아니었음을 통계가 보여준다. 라쿠텐의 비시즌 방문객은 연간 80만명에 달한다. 라쿠텐 구장 방문객은 리뉴얼 이후 가족 단위 방문객이 70% 증가했다. 일본 프로야구 평균 여성 방문객이 30% 정도인 데 비해 라쿠텐 구단은 이 비율이 45%에 이른다. 다른 구장에 비해 여성,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이 증가했다는 실상이 수치로 드러난다. 일반적인 야구 구장의 역할을 넘어 한 지역의 문화생활을 즐기는 플랫폼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라쿠텐은 지역을 위한 플랫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환경을 생각하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구장을 구현하고 있다. 현재 라쿠텐의 목표는 사용 전력 100%를 재생할 수 있는 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실천으로 여러 가지를 진행하고 있다. 도호쿠 전력그룹의 수력발전 전력을 공급받아 CO₂ 배출을 줄이고 있다. 2022년엔 연간 약 2600t의 CO₂ 배출량을 절감했다고 한다.
2023년 구장 입구에 대형 발광다이오드(LED) 스크린이 설치됐고 모든 조명이 고효율 LED로 교체됐다. 이에 따라 전력 소비가 약 60% 절감됐다. 운영 전력은 점차 재생에너지로 전환되고 있다. 환경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최신 정보기술(IT)을 활용해 관람 경험을 향상하는 스마트 스타디움으로 거듭난 것이다. 경기장 곳곳에는 무인 결제 시스템과 실시간 데이터 분석이 적용돼 팬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해졌다.
페트병의 경우 팬들을 위한 굿즈로 재탄생하고 있고, 사용된 일회용 젓가락은 재생지로 재활용된다. 즐기면서 나오는 일회용품들이 재사용되는 노력을 하는 구장과 야구단이라니. 응원하는 팀으로 얼마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까.
아직 시즌 중심으로 운영되는 한국의 야구장은 스토브리그에 차가운 공기로 가득 차 있지만, 언젠가는 변화할 것이라 믿는다. 한국의 겨울 구장도 로컬 푸드 마켓에서 장을 보고, 지역 주민들이 모여 플리마켓을 열거나 다양한 이벤트를 즐기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 날이 오면, 야구장의 시즌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구장의 겨울은 뜨거운 응원과 함성이 없더라도 사람들의 삶과 문화로 충분히 채워질 것이다. 다양한 연령대가 사계절 누릴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자 플랫폼으로 한국의 구장들이 변화할 모습이 기대된다. 스토브리그에 각자의 모습을 그려보길.
김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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