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일본 경제산업성이 내놓은 ‘석유화학산업 시장 구조에 관한 조사 보고서’는 당시 세계 5대 석유화학 강국이었던 일본을 충격에 빠뜨렸다. 흑자를 내는 기업들에 당시 연 720만t 규모인 에틸렌 생산시설을 통폐합해 470만t으로 줄일 필요가 있다는 목표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기업들끼리 알아서 ‘빅딜’을 하라고 압박한 건 아니었다. 공정거래법 등 각종 규제에서 예외로 빼주고, 다양한 인센티브를 주는 식으로 판을 깔아줬다. 그러자 일본 1위 미쓰비시케미컬과 2위 스미모토화학은 이듬해 에틸렌 공장 문을 일부 닫았다. 일본 석유화학업계의 다이어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일본 석유화학 구조조정의 열쇠를 쥔 것은 정부였다. 경제산업성은 2014년 구조개혁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5년 단위의 명확한 감축 목표를 제시했다. ‘1개 현(광역자치단체)에 1개 에틸렌 회사만 남긴다’는 등의 가이드라인도 비슷한 시기에 만들었다.
구조조정에 걸림돌이 되는 공정거래법 등 각종 규제는 법 개정을 통해 풀었다. 특정산업구조개선임시조치법을 마련해 공동 투자와 합작 투자, 과잉 설비 처리 등의 근거를 마련한 것.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독과점과 담합은 예외로 인정해 줬다. 그 덕에 기업들은 통폐합 이후 각자 잘하는 제품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정부 주도 사업 재편의 성과는 수치로 나타났다. 구조조정 3년 만인 2017년까지 일본의 에틸렌 설비는 연 80만t가량 줄었다. 제품별 생산설비가 한 곳에 집중되면서 분야별 선도 기업이 나오기 시작했다. 자동차 부품 등에 쓰이는 폴리프로필렌(PP)에선 일본폴리프로가, 폴리에틸렌(PE)에선 일본폴리에틸렌 등이 글로벌 1위로 뛰어올랐다.
일본의 구조조정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일본은 2028년까지 에틸렌 설비 280만t을 추가로 줄인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되면 전체 생산능력이 연 430만t으로 줄어 한국(연 1280만t)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여러 기업과 소통해 가이드라인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담합 금지 예외 등 규제 완화와 보조금 지급 등 사업 재편 인센티브도 필요하다고 호소한다. 지난 36년 동안 적용된 적이 없는 공정거래법 40조 2항을 활용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조항에 담긴 ‘불황 극복을 위한 산업 구조조정 목적일 경우 인수합병 심사 요건을 완화할 수 있다’는 내용을 적용해 정부가 사업 재편의 길을 터주자는 얘기다.
김우섭/성상훈/김진원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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