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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연대, 투쟁…여성 서사가 전하는 울림

입력 2025-08-14 15:52   수정 2025-09-05 00:27

"해가 동쪽에만 한참 머물다가 이제야 서서히 중천으로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어서 해가 둥실 떠 햇빛이 온 세상에 고르게 양분을 주면 좋겠습니다." (여성 1인극 '프리마 파시'의 이자람 배우)



여성을 주인공으로 전면에 내세운 공연이 늘어나고 있다. 그동안 여성은 남성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조연이나 뮤즈 역할에 불과했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루시, '베토벤'의 안토니 브렌타노, '웃는 남자'의 데아 등 숱한 여성 캐릭터가 그랬다. 이제는 극중 여성을 다루는 방식이 한층 다양해졌다. 여성 과학자, 의사 등 실존 인물의 삶을 소재로 한 작품부터 여성 배우 혼자 무대를 책임지는 1인극까지 등장했다. 여성의 이야기를 온전하게 비추는 작품을 살펴본다.

불합리에 맞서 싸우다

오는 27일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초연하는 연극 '프리마 파시'는 단 한 명의 여성 배우가 110분간 공연을 이끌어가는 보기 드문 작품이다. 호주의 인권 변호사 출신 작가 수지 밀러가 쓴 희곡을 무대화했다.

주인공인 변호사 테사 엔슬러는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남성을 전문적으로 변호하는 일을 맡아왔다. 그러다 하루 아침에 성폭행 피해자가 되고, 불합리한 법 체제에 맞서는 고독하지만 치열한 투쟁을 시작한다.



여성 변호사의 눈을 통해 성폭력 재판에서 피해자가 짊어진 가혹한 입증 책임과 법 시스템의 허점을 고발하는 작품이다. 2019년 호주에서 초연한 뒤 런던 웨스트엔드와 뉴욕 브로드웨이에 진출해 현지 관객과 평단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2022년, 영국 공연계 최고 권위의 로렌스 올리비에상에서 최우수 연극상을 받았다.


당시 영국 배우 조디 코머는 테사 역으로 올리비에상 여우주연상과 토니상 연극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인극인 만큼 책임도, 스포트라이트도 한 명이 가져간다. 한국 초연 무대에는 이자람, 김신록, 차지연 등 각기 다른 매력의 실력파 배우 세 명이 오른다. 소리꾼으로 유명한 이자람은 '노인과 바다', '눈, 눈, 눈', '사천가' 등 연극성이 강한 창작 판소리로 판소리의 지평을 넓힌 인물. 뮤지컬과 연극 무대에도 오른 적 있다. 김신록은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대중매체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 차지연은 국내 최정상급 뮤지컬 배우다.

이자람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대본을 받자마자 엄청난 속도로 읽고 작품의 무게가 아주 무겁다는 걸 깨달았다"며 "인생의 큰 도전이 찾아온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낯선 땅에서 피운 사랑과 열정

"나는 사랑하기 위해 이 땅에 왔고, 사랑으로 이 땅에 남겠습니다." 조선 말기, 미국에서 건너온 선교사이자 의사인 로제타 셔우드 홀의 헌신적인 삶을 그린 '로제타'도 눈길을 끄는 여성 서사극이다. 홀 여사는 외국인 여성으로서 온갖 차별과 편견에 시달리면서도, 당시 유교 사상에 젖어 남성 의사에게 진료받길 거부하는 조선인 여성을 치료하는 데 전념했다. 여성 의사를 양성하기 위해 전문 교육기관을 설립하는 데도 열정을 쏟았다.

이 작품은 미국 유명 실험주의 극단 '리빙 시어터'가 처음 내한해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등과 공동 제작한 아시아 협력작으로, 2023년 초연했다. 리빙 시어터는 브로드웨이 상업 연극에 맞서 여성 해방·인종차별 반대 등 진보적 메시지를 내세운 미국 최초의 아방가르드 실험 극단이다. 알 파치노, 로버트 드 니로 등 명배우들이 거쳐 가며 세계 현대 연극사에 한 획을 그은 전설적인 극단으로 평가된다.

이번 무대에선 배우 김성령을 비롯해 한국 배우와 미국 배우 8명이 로제타를 번갈아 연기한다. 배우 고인배, 견민성, 원경식, 이경구, 김하리를 비롯해 리빙 시어터의 브래드 버지스, 엠마 수 해리스 등 초연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들이 성별과 국적에 관계없이 함께한다. 공연은 오는 23일부터 31일까지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고통 속에서 움튼 연대의 힘

네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뮤지컬 '마리 퀴리'도 실존 여성의 삶을 조명한다. 마리 퀴리는 방사성 원소 '라듐'을 발견해 여성 최초로 노벨상을 받은 세계적인 과학자다. 이 작품의 출발점은 뮤지컬 '마리 퀴리'의 작가 천세은이 어린 딸에게서 들은 천진난만한 질문이었다. "엄마, 사람 이름이 '퀴리 부인'이야?" 천 작가는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과학자 마리 퀴리의 삶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과학을 향한 마리의 열정과 의지, 순수한 탐구심, 소박한 삶의 태도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며 "그 벅찬 감동을 어떻게 딸에게 고스란히 전할 수 있을까 시작한 고민이 뮤지컬 '마리 퀴리'가 됐다"고 전했다.



작품이 위인전처럼 사실만 나열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사건에 상상을 더한 에피소드도 가미됐다. 마리의 친구 안느가 일하는 시계 공장에서 라듐에 노출된 여성 노동자들이 잇따라 죽음을 맞이한다는 이야기로, 마리가 보다 직접적으로 라듐 피해자와 마주하게 된다는 설정이다. 천 작가는 이를 통해"마리 퀴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 끝내 외면할 수 없었던 인간적인 책임과 그 속에서 피어난 조용하고 단단한 연대를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리 퀴리 역은 배우 김소향, 옥주현, 박혜나, 김려원이 맡는다. 공연은 서울 신사동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10월 19일까지 이어진다.

이외에도 보수적인 19세기 런던에서 여성 작가로 성장해나가는 '안나'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레드북'이 오는 9월 23일부터 12월 7일까지 관객들을 만난다. 2018년 초연 이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이처럼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무대가 많아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과거 공연계는 여성 관객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면서도 여성 서사는 비주류에 속했다. 그러다 미투 운동 등의 영향으로 여성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창작진도 여성 서사를 다루는 데 용기를 얻었다.

천 작가는 "단순히 여성 관객과 여성 창작진이 많아 여성 서사의 소비가 활발해졌다고 보지 않는다"며 "그동안 '여성의 이야기'라는 이유만으로 무대에 오르기 어려웠던 많은 소재들이 창작자의 자신감을 만나 무대에 설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다"고 말했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뮤지컬 등 공연이 웃음을 주는 코미디를 넘어 삶과 사회에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장르로 진화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솜사탕 같은 러브스토리를 벗어나 여성의 주체적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했다.

허세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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