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 제작 영상이 급증하면서 저품질 콘텐츠, 이른바 ‘AI 슬롭(slop·쓰레기)’이 쏟아지고 있다. ‘AI 슬롭’은 초현실적이거나 기괴하고, 단순히 우스꽝스러운 AI 저질 영상을 뜻하는 신조어다.
워싱턴포스트(WP), 가디언 등 주요 외신은 “손쉽게 대량 생성되는 인공지능 영상으로 인해 AI 슬롭이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SNS)를 뒤덮고 있다”고 보도했다.
AI 슬롭 확산의 배경에는 영상 생성 도구의 발전이 있다. 구글 ‘비오3’, 일론 머스크의 ‘그록이매진’ 등 모델이 공개되면서 누구나 손쉽게 영상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가디언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유튜브 채널 10곳 중 1곳은 AI 영상 기반 채널이다. 상위 100개 급성장 채널 가운데 9개가 AI 생성 콘텐츠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들 채널에는 발사 준비 중인 로켓 안으로 들어가는 아기, 인간화된 고양이의 멜로 드라마 등 기괴한 이야기가 다수 포함돼 있으며, 상당수가 ‘AI 슬롭’으로 분류된다.
제작 방식은 단순하다. 챗GPT로 대본을 쓰고, 미드저니로 이미지를 만들고, 일레븐랩스로 음성을 입힌 뒤 오픈AI 소라, 메타의 무비젠, 루마·클링 등으로 애니메이션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AI 영상 제작은 부업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WP는 “대학생, 전업주부, 실직자까지 많은 사람들이 AI 영상을 우버 운전처럼 일종의 긱워크(독립형 일자리)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아이다호 대출 담당자 루이스 탈라베라(31)는 지난 6월 AI로 만든 ‘농담하는 노인’ 첫 영상이 인기를 끌었다. 이후 2주 만에 유사한 영상을 91개 제작해 구독자 18만 명을 모았다. 그는 현재 퇴근 후 저녁 시간과 주말을 활용해 AI 영상을 제작하고 있으며, 틱톡을 통해 매달 약 5,000달러(약 700만 원)을 벌고 있다.
플로리다 대학생 아델(20)은 WP에 “AI 영상으로 돈을 벌기 위해 대학을 휴학했다”고 말했으며, 애리조나의 한 크리에이터는 AI로 만든 ‘공항 캥거루’ 영상으로 3개월 만에 1만 5,000달러(약 2,000만 원)를 벌었다고 전했다. 또 카나리아 제도 대학 연구원 후안 파블로 히메네스 도밍게스(29)는 “AI 광고 영상 제작 수익만으로도 생활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WP는 “수익을 위한 ‘쓰레기 영상’이 인터넷에 범람하고 있다”며 “SNS에는 불안할 정도로 사실적인 콘텐츠가 넘쳐나 실제 영상조차도 의심스러워 보인다”고 우려했다.
가디언 또한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AI 영상이 플랫폼의 ‘엔시티피케이션(enshittification·엉터리화)를 가속화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플랫폼이 고품질 콘텐츠 제공보다 수익성을 우선시하면서 사용자 경험의 질이 저하되는 현상을 뜻하는 신조어다.
뉴스테러 가비지 데이의 저자 라이언 브로데릭은 “유튜브가 불쾌하고 영혼없는 AI 영상의 덤핑장이 됐다”고 비판했고, 바스대 아킬 바르드와즈 교수는 “AI 엉터리 콘텐츠가 핀터레스트 온라인 커뮤니티를 파괴하고, 스포티파이 아티스트들과 수익을 놓고 경쟁하며, 유튜브의 저질 콘텐츠를 확대한다”고 비판했다.
에식스대 토니 샘슨 교수도 “AI 영상은 진실성·미적가치로 경쟁하지 않고, 빠른 속도로 대량 배포되며 시청자들의 충격과 매혹에 의존해 확산한다”며 “결국 인간 창의성이 압도당하게 된다”고 말했다.
AI 영상은 단순 플랫폼 조회수 수익뿐 아니라 강좌·템플릿 판매, 광고 제작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식 ‘먹방’ AI 영상으로 인기를 끈 크리에이터는 제작법을 담은 파일을 15달러(약 2만 원)에 판매하고 있다고 전했다.
예측 시장 플랫폼 칼시는 NBA 파이널 기간 AI로 제작한 TV 광고에 2,000달러(약 300만 원)를 투자해 기존 스튜디오보다 훨씬 빠른 72시간 만에 영상을 완성했다. 제작자 PJ 아케투로는 “도파민이 풍부한 AI 영상이 올해 광고 트렌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민주 기자 minj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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