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은 7월 29일 국무회의에서 반복되는 산업현장 사망사고를 강하게 질책한 뒤 “올해가 산재 사망 근절의 원년이 되기를 바란다”며 관련 기업의 면허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강력한 법적조치 가능성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이는 현 정부가 산업재해 문제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강한 메시지다.
국정기획위원회는 최근 국민보고대회를 통해 ‘안전하게 일할 권리의 보장’을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시켰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산재 사망률을 낮추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엄중하다. 2024년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산업재해로 인한 연간 사망자 수는 2098명에 이른다.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사고로 김용균 씨가 목숨을 잃었고, 이를 계기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과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지만 2025년에도 같은 사업장에서 50대 근로자의 사망사고가 다시 발생했다는 점은 법률 제재 강화만으로는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산업재해 원인을 개별 기업의 과실에서만 찾아서는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 비용 절감 및 속도에 치중한 하도급 중심의 사업구조, 단기 재무성과 위주의 경영 문화, 안전에 대한 사회의 인식 수준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산업현장이 외주화·일상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국가적 구조와 문화의 문제로 인식하고 다층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와 투자를 통해 산업재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주목받는다.
ESG 투자와 제도화를 통한 지속가능한 해법
금융위원회는 상장기업의 산재 발생을 ESG 평가에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이 대통령도 산재 다발 기업에 대한 제재 방식으로 ESG 평가 하향과 함께 여러 차례 공시를 통해 주가가 하락하게 하는 등의 강력한 제재 수단을 언급했다. ESG 투자를 통해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관리하는 것은 단순 규제와 달리 지속가능한 시장 기반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투자자가 산재를 리스크로 인식하고 관심을 기울인다면 기업은 산업안전 문제를 중대한 재무적 이슈로 취급하면 안전 성과는 투자 의사 결정에 반영되고, 기관투자자는 주주관여 및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통해 실질적 압박과 개선 유도가 가능해진다. 결과적으로 기업활동의 외부효과가 내부비용으로 전환되며, 점차 사회적비용은 줄고 기업의 중장기 경쟁력은 높아진다.
ESG 평가기관과 기관투자자들은 시장 메커니즘과 ESG 생태계 시스템을 통해 산업재해를 상시 모니터링하게 된다. 이를 통해 기업 경영자와 이사회는 산재 이슈를 비중 있게 다루게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기업 내부에서도 안전과 보건 이슈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받게 되고, 이는 점차 문화로 자리 잡아간다. 이러한 시스템이 효과적인 것은 사고 발생 후 주가를 폭락시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산재 위험이 높은 기업에 투자자들이 ESG 평가 데이터에 기반해 리스크 관리 수준을 묻고, 기업이 이에 적극 대응하도록 직간접적으로 압력을 가할 수 있다. 즉 ESG 평가와 투자는 사후적 주가 폭락보다 사전 리스크 예방 및 관리에 그 효능감이 있는 것이다.
국내외 주요 ESG 평가기관은 이미 산업재해 관련 데이터를 도입해 산업재해 발생 여부를 ESG 등급 산정에 반영하고 있다. 실제 2022년부터 2025년 상반기 기준, 서스틴베스트에서 조사한 컨트로버시 이벤트(ESG 관련 부정적 사건사고를 지칭함) 가운데 산업안전 이슈로 점수가 차감된 사례 비중은 평균 35%를 차지하며 1위를 기록했다. 중대재해가 발생 시 ESG 등급이 자동 하향 조정되는 시스템이 작동 중인 셈이다.
국민연금도 2023년부터 산업안전과 기후변화를 중점 관리 사안으로 지정하고, ESG를 반영한 책임투자를 실천하고 있다. 이는 산업재해가 단순한 안전문제를 넘어 기업의 재무성과 및 지속가능성에 연결되는 중대한 리스크 요인이라는 인식이 반영된 조치다. 국민연금의 책임투자 유형 위탁운용사에 해당하는 자산운용사도 산업재해를 투자 정책에 이미 반영해 운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서스틴베스트에서도 산업재해가 기업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적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사망, 부상, 질병을 모두 포함한 재해율이 1% 증가할 때 1인당 매출액은 1215만 원에서 1431만 원까지 감소했고, 1인당 영업이익액은 211만 원에서 247만 원까지 하락했다. 산업재해 이슈는 기업의 재무 성과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왜 그동안 산업재해 이슈가 개선되지 않은 것은 현재 국내에서 아직 ESG 투자가 제도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관측된다. 자본시장에서 아직 ESG 투자는 보편적 투자 방식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국내 현실은 ESG 투자의 영향력이 극히 미미하다.
결국 산업재해를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면 ESG 투자가 보편화되어야 한다. ESG 투자가 보편화되려면 선진국처럼 ESG 투자가 자본시장에서 제도적으로 수용되어야 한다. ESG 투자의 제도화를 위해서는 다음 3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첫째,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를 도입해야 한다. 그러면 공시기준에 따라 재무 중요성(financial materiality) 판별이 중요해지고, 산재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기업은 해당 이슈를 이사회 또는 ESG 위원회에서 직접 다루게 된다. 산재 반복 기업에 대한 산업안전 리스크와 성과가 투명하게 공시되면 이는 ESG 평가를 통해 투자 데이터로 전달된다.
둘째, 스튜어드십 코드의 실질화다. 기관투자자의 역할과 책임이 단기적 투자 성과에만 있지 않으며, 나아가 중장기적 기업가치 제고에 있다는 보편적 컨센서스에 도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연금 및 공적연기금의 역할이 매우 크다. 위탁운용사 선정 및 성과 모니터링에 실질적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 내역을 포함하면 빠르게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유럽의 지속가능금융 공시 규제(SFDR)에 해당하는 규제 도입도 적극 고려해볼 만하다. SFDR에 따르면, 금융회사는 기업 수준과 금융상품 수준에서 지속가능성 관련 정보를 공시해야 한다. 만일 이러한 제도가 도입된다면 금융회사로서는 산업재해를 포함한 다양한 컨트로버시 이슈를 리스크로 관리하게 되고 외부에 공시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본시장은 비로소 산재 리스크를 금융상품 가격에 반영하게 된다. 안전을 소홀히 하는 기업의 자본비용은 높아지고 조달·투자 기회가 줄어든다. 반대로 기업이 안전에 투자하면 중장기 수익성과 기업가치가 높아진다. ESG 투자가 보편화될 때 산업재해 외부효과는 기업 내부 비용으로 전환되고 시장은 지속적으로 개선 압박을 가하게 된다.
산업재해는 정권의 의지나 규제만으로 단기간 내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정부, 기업, 투자자, 평가기관이 함께 해결해야 하는 사회 공동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
ESG 투자가 제도화되면 보편적 투자로 자리 잡게 되고, 이는 자본시장의 시스템을 구성한다. 이는 산업재해 이슈를 자본시장과 금융상품에 반영하는 강력한 인프라 기능을 담당한다. ESG 공시는 투명성을, ESG 평가는 인센티브를, ESG 투자는 기업에 대한 압력을 만든다. 이 세 축이 맞물려 돌아갈 때 산업현장의 안전문화는 예방 위주로 점차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오승재 서스틴베스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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