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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타투, 34년 만의 법제화 첫걸음…기회와 유예 갈림길에 서다[비즈니스 포커스]

입력 2025-08-23 09:39   수정 2025-08-23 09:41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지난 8월 20일 여의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제2소위원회에서 비의료인의 문신과 반영구 화장 시술을 허용하는 ‘문신사법’ 순번은 70개 안건 중 65번. 통과는커녕 조금만 더 시간이 지체되면, 기회조차 오지 않을 순번이었다.

오전부터 내내 기다린 소식은 저녁 7시 45분쯤이 되어서야 전해졌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위를 통과한 순간이었다. 지난 34년간 ‘불법’ 낙인에 갇혔던 타투이스트들은 눈물을 삼켰다. 한국 성인 1300만 명이 경험했고, 35만 명이 종사하는 거대한 산업이 음지에서 양지로 나아가는 첫 관문이었다.
34년 만에…보건복지위, 심사 통과
“미국 땅을 뜨기 전엔 모든 사람이 제게 아티스트라고 칭했지만 불과 몇 시간 후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저는 범법자가 됩니다.”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와 작업해 세계적 유명세를 떨친 타투이스트 김도윤(활동명 ‘도이’)의 발언은 오랫동안 한국 문신 산업의 현실을 압축하는 상징 같은 문장이었다.

문신 시술은 1992년 대법원에서 ‘의사가 아닌 사람’이 시술한 문신을 불법이라고 판결한 이후 줄곧 불법으로 묶여 있었다. 의료법 27조 1항에 따르면 비의료인은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


현실은 달랐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2023 문신 시술 이용자 현황 조사’에 따르면 문신 시술 경험자 중 병의원을 이용한 비율은 1.4%에 불과했다. 81%는 전문점을 통해 시술을 받았다. 의료인이 아닌 비의료인 ‘문신사(서화문신을 하는 타투이스트와 반영구화장 문신사 포함)’들이다.

2021년 기준으로 약 35만 명. 지금은 더 늘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문신사들은 모두 음지에서 일해야 했다. SNS에서는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매장 간판을 걸지는 못했다. 신고가 접수되거나 적발 시엔 최소 2년의 징역형과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에 처해졌다. 이들은 때로는 전과자가 되었고 고객에게 시술을 해주고도 “불법으로 신고하겠다”는 협박을 당했다.

타투이스트 김도윤 씨도 법정에 서야 했다. 그는 2019년 자신의 스튜디오를 찾은 연예인에게 시술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졌고 1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는 타투이스트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직업의 자유를 얻기 위해 문신사 노동조합 ‘타투유니온’을 설립했다. 이후 헌법재판소에 의료법 조항이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2023년 헌재는 5대 4 의견으로 해당 조항이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헌재는 판결문에서 “의료법, 대법원 판례 등을 종합해보면 ‘의료행위’는 의학적 전문지식을 기초로 진찰, 외과적 시술 외에 의료인이 행하지 않으면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 행위로 분명하게 해석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회 현실은 달라지고 있었다. 헌재의 결정과 달리 ‘반영구 화장’에 한해 하급심 법원에서는 다른 판단이 나왔다.

부산지법은 2023년 5월 “눈썹 문신 시술은 의료행위가 아니다”라며 무죄를 선고했고 같은 해 청주지법도 비슷한 판결을 내렸다. 당시 판결문은 “30년간 반영구 화장을 경험한 누적 인구가 1000만 명에 달하고 종사자만 35만 명에 이르는 사회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외에서는 정부·지자체로부터 타투이스트 자격증을 받으면 보건·위생 지침을 지키며 활동할 수 있다. 일본도 최고재판소 판례를 뒤집고 비의료인 시술을 허용했다. 한국만이 유일한 ‘문신 불법국’으로 남아 있다는 점은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부각시켰다.

현실은 법과 괴리돼 있었다. 타투를 배우기 위해 의과대학에 진학하는 이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타투이스트가 미대를 진학했다. 합법적인 ‘메디컬 타투이스트’로 활동하는 인물은 한국에서 손에 꼽혔다. 조명신 빈센트의원 원장이 그중 한 명이다.

그조차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의사 중 몇 명이나 타투를 배우려 하겠으며, 그 인력으로 과연 문신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지 제도의 현실성을 지적했다.

그동안 수차례 발의가 좌절됐던 문신사법은 22대 국회 들어 여야 의원들이 잇따라 발의하면서 다시 동력을 얻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 강선우 민주당 의원의 안이 이번 보건복지위 소위에서 하나로 묶여 통과됐다.


문신사 자격은 면허로 관리되며 문신 행위를 위해서는 국가시험에 합격해 면허증을 받아야 한다. 또 미성년자에 대한 문신 행위, 문신업소 외에서의 시술은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시술 기록과 염료 사용 내역을 반드시 남기도록 한 조항도 새로 추가됐다.

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은 “변호사 시절부터 부당한 처벌을 받던 문신사들을 변호했고 여러 차례 법안을 발의해왔다”며 “마침내 결실의 첫 문을 열었다”고 밝혔다.

이제 남은 건 8월 27일 보건복지위 전체회의 표결과 법사위 심사, 국회 본회의 표결, 대통령 공포다. 박 위원장은 “문신을 안전하게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이라며 “본회의 통과까지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강조했다.
이미 타투관광…K타투, 준비는 끝났다
의료계는 즉각 반발했다. 대한의사협회는 8월 21일 “의료법의 근간을 흔들고 국민 건강을 외면한 법안”이라며 전면 재검토를 주장했다.

그러나 위생 교육과 면허 제도, 기록 의무화 등 안전장치를 담은 이번 법안은 달라진 현실을 반영한다. 타투이스트들은 “우리는 안전 규정을 지킬 준비가 돼 있다”며 조속한 문신사법 통과를 촉구했다.

타투이스트들은 합법화가 타투 산업과 한국 경제에도 긍정적 파급력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지난 34년간 불법화의 시간 동안 놓친 기회가 분명하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10여 년간 한국의 타투 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해외 소비자들이 한국 타투이스트를 직접 찾거나, 반대로 해외 대형 스튜디오가 한국 아티스트를 영입하는 현상은 이미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뉴욕 맨해튼의 세계적 스튜디오 ‘뱅뱅’에는 2021년 기준 40명 중 14명이 한국인 아티스트였다. 지금도 간판급 아티스트 중 ‘김·이·박’ 성씨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세계 무대에서 한국인의 입지는 분명하다.

한국 타투이스트들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얇은 선과 섬세한 색채로 대표되는 ‘파인 라인 타투’, 일명 ‘코리안 스타일’은 글로벌 트렌드가 됐다. 해외 매체들이 “세계 타투 트렌드는 서울에서 시작된다”고 평할 만큼 국제 무대는 열려 있었다.

하지만 산업 내부의 시각은 조금 더 냉정하다. 한국 타투이스트는 아직 전체 문신사들의 한 자릿수(6~8%) 수준에 머문다. 절대다수는 반영구 화장 문신사들이다. 김도윤 타투유니온 지회장은 “합당한 대가가 있어야 높은 완성도가 나오는데, 지금은 산업 구조가 무너지고 있어 높은 퀄리티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10년 전만 해도 합법화가 이뤄졌다면 한국이 자체 컨벤션을 갖고 세계 유명 스튜디오들을 인수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그 기회를 놓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김 지회장은 여전히 산업적 기회가 남아 있다고 본다. 그는 “법제화가 되면 노동의 가치를 낮추는 행태를 막을 수 있다. 자격증 장사나 무분별한 공급 확산이 아니라, 문제를 일으킨 작업자를 철저히 책임 묻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이런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국 타투가 다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K타투가 K팝·K뷰티에 이어 새로운 한국 문화 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는 제도화 이후 산업을 어떻게 꾸려가느냐에 달려 있다. 김 지회장은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 하지만 이번이 한국 타투 산업의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며 “노동 가치와 퀄리티를 지키는 데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지회장도 8월 해외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법안 통과에 매달리고 있다. 그는 “한국의 타투이스트들은 정해진 법률을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 그간의 염려를 안심과 안전으로 바꾸겠다”고 강조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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