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강령:영혼의 기술》이 8월 26일부터 11월 23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개막 일주일 전, 전시 설치 현장에서 안톤 비도클, 할리 에어스, 루카스 브라시스키스를 직접 만나 기획 의도와 현장 이야기를 들었다.

2000년 시작된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예술, 산업, 기술의 교차 지점을 통해 도시의 미래를 사유해 왔다. 이번 13회 비엔날레는 특히 ‘기술이 영혼과 맺는 관계’를 중심 주제로 삼아, 급변하는 시대 상황 속에서 기술적 경험이 우리의 감정, 정체성, 사회적 연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한다. 역대 두 번째 국제 공모를 통해 초대된 예술감독팀이 제안한 제목 <강령: 영혼을 위한 기술>(Seance: Technology of the Spirit)은 그 출발점부터 도발적이다.
프랑스어 세앙스(seance)는 영적 매개를 통해 생 너머에 존재하는 세계와의 접속을 위해 모이는 사람들의 모임을 뜻한다.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유럽에서 급속한 산업화, 근대화가 진행되던 시기, 많은 이들이 영성주의를 정서적·상징적 탈출구로 삼았고 세앙스는 그러한 실천의 핵심이었다. 예술감독팀은 당시 예술가들이 기존 지식 체계 바깥으로 시선을 돌려 얻었던 인식과 실천을 재검토함으로써, 오늘날 디지털 기술과 데이터 기반 경험으로 빚어진 ‘가짜 현실’ 속에 놓인 우리가 새롭게 취할 수 있는 ‘영혼의 기술’을 모색하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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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령(seances)이라는 은유를 사용해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를 정하게 된 이유를 설명해 주세요.
안톤 비도클: "강령은 초기 모더니즘 시기,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널리 유행했어요. 18세기 후반 이후 산업화·기계화·조직화·합리화가 가속되면서 사람들은 일상에서 큰 스트레스와 소외를 겪었고, 그로 인해 감정적이고 상상적인 대안으로서 영성주의·오컬트·신비주의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었어요. 예컨대 시간에 맞춰 생활 리듬을 재편하는 것조차 인간 역사에서는 낯선 변화였고, 지금 우리가 알고리즘·AI로 삶의 많은 부분이 급격히 바뀌는 상황과 닮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2023년 상하이 비엔날레 준비 기간에, 일상적 행위를 위해 특정 앱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환경에서 휴대 전화가 없거나 앱을 쓰지 못하면 마치 길에 버려진 아이처럼 느껴진 경험이 있었어요. 이런 상실감과 방향 감각의 붕괴가 100년의 간격을 두고 다시 나타나는 셈이죠. 물론 역사는 똑같이 반복되지는 않지만, 과거 강령과 관련된 실천과 개념이 많은 전위 예술가에게 영향을 미쳤듯이, 오늘날의 불안과 상실감 속에서 다른 세계와의 접속을 열망하는 작가들이 등장하는 것은 놀랍지 않아요."
할리 에어스: "비슷한 주제를 다룬 전시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비엔날레 규모로 영성·오컬트와 근현대 미술의 접점을 총체적으로 다루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전통적인, 선형적인 미술사 서술에서는 예술가들의 영적 실천이 충분히 논의되지 않아 왔기 때문에,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근현대 미술의 전개 과정에서 영적 경험이 어떤 역할을 수행해 왔는지를 질문하고, 그간 미술사가 놓쳐온 빈틈을 메우고자 합니다."

▷이번 비엔날레 주제가 한국의 장소성과 동시대 미술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궁금합니다.
안톤: "한국은 영적·종교적 다양성이 매우 높은 나라입니다. 리서치 결과에 따르면 공식 등록된 종교만도 180여 종에 이르고, 새로운 종교·신앙 형태가 계속 등장한다고 해요. 기획자 입장에서는 그런 환경 자체가 이번 비엔날레의 중요한 맥락이 됩니다. 사실 인터뷰 전 미술관 마당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저에게 종교 전단을 주고 가셨어요. (웃음)"
루카스 브라시스키스: "리서치 과정에서 제주에 가서 굿을 직접 관람했고, 그 경험은 전시 구성에 실제로 반영되었어요. 그 결과 한국 작가들 가운데 샤머니즘을 다루는 이들이 포함되었죠. 다만 이런 현상을 단지 ‘한국적 특수성’으로만 보지는 않아요. 한국에서 샤머니즘은 식민지와 독재 시기를 거치며 탄압과 동시에 국가적 이용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샤머니즘의 제도화·산업화를 둘러싼 맥락은 복잡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며,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 역시 그런 보편성을 지향합니다."
할리: "샤머니즘뿐 아니라 강령 같은 ‘영혼의 기술’ 자체를 어떻게 자본주의적·추출주의적 도구로부터 분리해, 그것만의 기술적·사회적 가능성으로 읽을 수 있을지에 대한 보편적 고민이 있었어요. 동시에 국가적·정치적 악용을 경계하면서도, 그 실천이 갖는 고유한 의미를 어떻게 보호하고 해석할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안톤: "이번 비엔날레는 모더니즘 미술사를 ‘다시 쓰겠다’는 선언이라기보다, 미술의 틀을 확장하려는 시도에 가깝습니다. 작품 수급도 쉽지 않았어요. 예컨대 힐마 아프 클린트 재단은 비엔날레나 동시대 그룹전에 참여하는 데 소극적이었지만, 우리는 그녀의 작업이 동시대 작가들과 서로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어요. 전시는 도입부에 루돌프 슈타이너, 힐마 아프 클린트, 엠마 쿤츠 등 역사적 작가들을 배치한 뒤 점차 동시대 작가들이 등장하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섹션별 분절 대신 하나의 흐름으로 제시해 세대를 넘나드는 연속성을 보여주고자 해요. 고인이 된 작가와 생존 작가를 구분하거나 위계를 부여하지 않고, 모두를 동등한 자리에서 만나게 하는 것이 이 기획의 핵심입니다."

▷리서치 과정에서 전시에 직접 반영한 역사적 사실이나 특정 인물·장소 중 특히 인상 깊었던 사례가 있습니까?
안톤: "가장 인상 깊었던 방문지 중 하나는 일본의 오모토교 센터였어요. 오모토교는 19세기 말에 시작되었는데 문맹의 여성이 새해 첫날 초자연적 존재를 만나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교단이 시작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데구치 오니사부로가 그 기록을 해석, 번역하면서 교단이 형성되었고, 오모토교는 예술을 신성의 현현으로 여겨 사제는 전통 예술을 수행하는 예술가여야 한다는 규범을 갖고 있어요. 또한 1970년대부터는 동시대 미술에도 관심을 두고 여름 예술학교를 운영하는 등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는 활동을 이어왔어요. 우리는 오니사부로가 만든 찻잔들을 전시에 소개하고자 직접 찾아갔어요. 오니사부로는 단 15개월 만에 3천 점이 넘는 찻잔을 손수 제작했고, 한 점을 만들 때마다 기도문을 반복했다는 기록이 있어요. 그녀는 그 작업을 ‘내 영혼의 힘을 불어넣은 불, 물, 흙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할리: "스위스 도르나흐의 인지학 협회 괴테아눔에 방문해, 루돌프 슈타이너가 공개 강연 중 칠판에 그렸던 드로잉을 직접 확인하고 재제작 가능성을 논의하기도 했어요. 현장에서는 슈타이너가 신지학 운동에서 결별한 뒤 여러 종교 전통을 융합해 제시한 인지학의 비전뿐 아니라, 괴테아눔을 중심으로 인지학적 미학에 따라 설계된 주거와 정원, 유기농 방식으로 와인을 양조하며 생활하는 공동체의 일상도 목격할 수 있었죠. 책에서 읽은 내용이 실제 삶으로 지속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예술과 삶 사이의 경계가 결코 분명하지 않다는 깨달음을 다시금 얻었습니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무빙 이미지가 주제적으로 크게 강조되는데요(세앙스의 어원과도 관련이 있다고요). 관련 영화 프로그램도 자세히 소개해 주십시오.
루카스: "프랑스어 seance는 본래 ‘모임’이나 ‘세션’을 뜻합니다. 그런데 영화 상영이라는 행위-어둠 속에 모여 이미지와 목소리, 또 다른 존재를 집단적으로 경험하는 일-과의 은유적 연관성 때문에 우리는 영화를 일종의 현대적 강령술로 읽을 수 있어요. 영화는 과거의 흔적을 보존하는 동시에 그것을 현재에서 작동시키며, 망자를 살아있는 존재보다 더 생생하게 느끼게 하는 기이한 시각성을 만들어냅니다. 이 때문에 시네마적 경험은 단순한 관람을 넘어 관객과 이미지 사이에 심리·감정적 전이가 일어나는 장이 되어 왔죠. 19세기 말 세앙스와 동시기 등장한 정신분석과 영화가 비슷한 시기에 출현한 것도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영화 속 이미지는 관객의 투사와 무의식까지 건드리며, 일종의 집단적 꿈이나 의례로 작동합니다. 비엔날레의 영화 프로그램은 시네마의 이러한 매개적 성격을 전면에 놓고,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와 공동 주최로 네 개의 주제, ‘망자와의 대화’, ‘조상들의 숨결’, ‘프시케와 스크린’, ‘일상 속 신비주의’로 구성된 21편의 영화를 매주 토요일에 상영해요. 우리가 특히 고민한 질문은 ‘시네마적 강령의 경험을 극장 내부와 외부의 현실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였습니다. 이를 위해 상영을 마치고 극장을 나설 때 착용하도록 제공되는 ‘안경’을 준비했어요. 이 안경은 문자 그대로의 시각 보조 기구라기보다 상징적 오브제로, 관객이 극장을 나설 때 영화 체험이 현실에서도 이어지고, 영화와 현실의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점을 직접 체감하도록 하고자 했어요."

▷낙원상가에 사운드룸을 설치한다고 들었어요. 사운드 프로그램이 비엔날레 전체 서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나요?
안톤: "사운드 프로그램은 영성이라는 측면에서 시각보다 더 깊은 관련이 있어요. 음악은 언제나 다른 세계로 들어서는 길이자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수단이었죠. 우리는 루돌프 슈타이너가 예술의 형식이자 치료법으로 개발한 ‘유리드미’라는 말과 음악의 소리를 몸짓과 안무로 바꾸는 기법의 이름을 제목으로 정하고 음악에 정통한 사나 알마제디(Sanna Almajedi)에게 큐레이팅을 맡겼습니다. 무엇보다 낙원상가라고 하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라이브 뮤직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역사적인 장소에서 이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게 되어 정말 기뻐요!"
▷프리 비엔날레의 발표회에서 제시된 ‘강령회로서의 전시(exhibition as seance)’ 개념은 실제 전시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안톤: "세앙스로서의 전시를 물리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흰 벽, 회색 바닥, 미니멀 디자인으로 이루어진 표준적인 동시대 미술 전시의 관습을 따르지 않기로 했어요. 도쿄에 본 열린 힐마 아프 클린트 전시를 예로 들면, 작품들은 혁신적이었지만 전시 형식은 작가의 급진성에 걸맞지 않게 전형적이었어요. 아프 클린트는 자신의 작업을 위한 ‘신전’을 그릴 정도로 강렬한 비전을 가졌는데, 그런 태도를 전시 형식에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게 이상했죠. 이번 비엔날레의 전시 디자인은 힐마 아프 클린트를 포함해 우리가 소개하려고 하는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업만큼 급진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전시 공간 디자인은 상하이 비엔날레에서 함께 일했던 홍콩의 건축 스튜디오 콜렉티브(COLLECTIVE)와 협업했어요. 우리가 추구한 개념을 잘 이해하는 팀이었고, 그들과 함께 공간에서 색채와 형태가 신체적, 의례적 경험을 촉발하도록 작업했어요. 색채 선택은 애니 베전트(Annie Besant)와 C.W. 리드비터(Leadbeater)의 공저 <상념체 (Thought-Forms)>에 수록된 채색 도판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이 책은 ‘생각은 고유한 패턴과 형태를 가진 다’는 원리를 설명하며 음악, 감정, 색채가 비물질적 실체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해 삽화를 만들었고, 칸딘스키, 몬드리안, 아프 클린트 등에게 영향을 준 이정표적 텍스트입니다. 전시를 준비하는 내내 색이 의도대로 구현될지 매우 긴장했어요. 실제로 전시가 설치되고 있는데, 강렬한 색채 위에 작품들이 놓였을 때, 우리가 계획한 감각적 효과가 구현된 것을 보고 너무 기뻤습니다."

할리: "색은 음악처럼 언어 이전에 직접적으로 소통됩니다. 리서치 과정에서 누군가 어떤 새로운 예술/미학 이론이나 영적 이론을 창안할 때 항상 색채론을 함께 창안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우리는 아이디어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대신 아이디어가 움직이고 섞이며 흐르게 하고 싶었습니다. 울타리가 아닌 문턱과 같은 색으로 이루어진 전시에서 색이 불러일으키는 정동을 느끼기 바라고 전시실과 전시실 사이의 색의 그라데이션에서 투과성을 느껴 보시길 바랍니다."
루카스: "‘하얀 벽이 없다’는 것은 미학적 선택을 넘어 정치적 선언입니다. 중립적 전시 공간이라는 환상을 버리고, 모든 전시적 결정이 정치적·윤리적 함의를 지닌다는 점을 드러내고자 했어요. 색과 형태, 배치가 관객의 감각을 규정하고 관람 경험을 구조화하며, 그 과정에서 작품들이 서로 매개하고 충돌하도록 설계했어요."
안동선 프리랜서 미술 전문기자<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border:1px solid #c3c3c3" />
3명의 예술감독 소개
● 안톤 비도클(Anton Vidokle)
: 작가이자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며, 현대미술 온라인 플랫폼 이플럭스(e-flux)의 공동 창립자이다. 다수의 전시 기획과 출판 활동을 통해 국제적 담론 형성에 기여해 왔다.
● 할리 에어스(Hallie Ayres)
: 큐레이터이자 연구자, 미술사학자로 활동한다. 영적 믿음을 바탕으로 선주민과 서구 사회의 지식 생산 체계의 화합에 관한 글을 출판하고 강연했다.
● 루카스 브라시스키스(Lukas Brasiskis)
: 필름과 실험영화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필름 큐레이터로, 인간 너머의 관점을 제시하는 매개로서 무빙 이미지의 한계와 잠재력을 탐구하는 기획과 저술 활동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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