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1일 “미국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중국 공장에 반도체 장비 반출을 막아 우리 기업이 중국에서 빠지면, 미국의 통제권이 더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 불거진 미국 측의 반도체 장비 규제에 대해 처음으로 입장을 밝혔다.김 실장은 이날 유튜브 매불쇼에 출연해 “기업들이 걱정하던 사안이고 정부도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미국의 정책이) 결정됐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대책 마련을 위해) 많이 노력해야 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29일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에 미국산 장비 반출을 허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명단에서 이들 기업의 중국 법인을 제외하면서 중국 공장 생산 역량 확대를 위한 장비 반출을 허가하지 않아 우리 기업은 저가 제품만 제조할 수밖에 없게 된다. 화기애애하게 마무리된 정상회담 이후 생긴 돌발 변수에 기업들은 당황하는 기색이다.
이에 대해 김 실장은 “우리의 방어 논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우방국의 핵심 기업이라는 것”이라며 “최악의 경우 장비가 반출되지 않아 이들 기업이 (중국에서) 빠지면, 중국은 이 대신 잇몸으로 뭐든 대신 만들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렇다면 미국의 통제권이 사라지게 된다”고 덧붙였다. 김 실장은 “두 기업이 (중국 공장에서) 생산하는 반도체는 (전체의) 30%가량”이라며 “세계 경제에 (정부도) 같이 설득해가면서 노력하려고 한다”고 했다. 이날 미·중 무역 갈등이 반도체 산업으로 확산할 것이란 우려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각각 전날보다 3.01%, 4.83% 빠졌다.
김 실장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 “매우 살얼음판을 걷는 환경”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이) 관세 협상안에 사인하지 않으면 정상회담 앞두고 큰일 벌어질 수 있다고도 했다”며 “회담 전까지 러트닉 장관과 2시간 동안 컨퍼런스콜을 했는데. 고성도 지르는 등 아슬아슬한 순간이 많았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김 실장은 “3500억달러 펀드가 얼마나 큰 돈인데, 환율이 몇백원 뛰는 등 외환 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겪게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제일 불확실성 높은 정상회담이 아니었을까 싶다”며 “이러다 내가 정상회담 망치는 거 아닐까, (컨콜에 참여한) 우리 멤버들도 웅성웅성했다”고 소회를 털어놨다. 그러면서 “우리가 외환 위기를 겪은 나라라 일본과 다르다고 설득하니 후반부에 (러트닉 장관이) 우리의 문제 제기를 이해했다”고 했다.
미국 측의 무리한 요구에 이재명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취소까지 고려했다고 한다. 김 실장은 “(한·일 정상회담을 위해) 일본에 갈 때만 해도, 일본만 하고 돌아올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며 “이재명 대통령도 한·미 정상회담을 안 해도 되니 무리한 내용엔 사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이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릴 용기가 있는 사람이 이긴다’라고도 말했다”고 전했다. 김 실장은 “우리는 일본과 달리 MOU를 맺을 때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하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경청해달라고 하니 (러트닉 장관도) 이해하더라”며 “전날 (러트닉 장관과의 설전이 정상회담에서) 나름대로 효과가 있었다”고 했다.
다만 우리 정부와 미국은 관세 협상 과정에서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김 실장은 “미국과 조성하기로 한 3500억달러 운용 방안을 놓고 아직도 상당한 이견이 있다”며 백병전을 치르고 있다고 표현했다. ‘우리는 직접 투자가 아니라 대출, 보증 형식으로 하겠다는 것이고, 미국은 직접 투자하라는 식의 이견이냐’는 질문에 김 실장은 “MOU 문안에 대해 수십번 가량 협의하고 있는데, 이견이 많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관세 합의문이 늦어지는 것은) 우리 기업 입장에선 답답할 것”이라면서도 “자동차도 중요하지만, 종합적으로 따져봐야 하기에 섣불리 사인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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