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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태 칼럼] 한·일, 한·미 회담에서 얻은 것

입력 2025-09-01 17:36   수정 2025-09-02 00:14

80년 전 오늘, 다리를 저는 한 일본인이 지팡이를 짚고 도쿄만에 정박한 미국 전함 USS미주리함에 올랐다. 일본 외무대신 시게미쓰 마모루였다. 그는 갑판을 가득 메운 미군과 맥아더 장군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본 대표로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길고도 길었던 제2차 세계대전이 공식적으로 막을 내린 순간이다. 시게미쓰는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있는 인물이다. 1932년 중국 상하이를 침공한 일본군은 훙커우공원에서 승전기념식을 열었다. 기념식은 윤봉길 의사가 던진 폭탄에 아수라장이 됐다. 다수의 일본군 장성이 목숨을 잃었고 당시 주중 일본공사인 시게미쓰도 다리가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다. 비록 이날 일본의 항복 문서에 서명한 승전국 명단에 우리가 낄 자리는 없었지만, 선조들의 피와 독립에 대한 열망은 시게미쓰의 의족에 새겨져 있었던 셈이다.

중국은 이튿날인 9월 3일을 전승절로 기념한다. 국민당 정부가 일본군으로부터 항복 문서를 공식 접수한 날이다. 10년 전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의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나라 안팎을 놀라게 했다. 톈안먼 성루에서 시진핑, 블라디미르 푸틴과 함께 중국 인민해방군의 열병식을 지켜보는 한국 대통령의 모습은 미국과 일본엔 작지 않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올해는 취임 한 달도 안 된 이재명 대통령에게 중국이 물밑에서 참석을 타진해 왔다. 새 정부는 고심 끝에 결국 불참으로 결론을 내렸다. 당시 당권 도전 중이던 정청래, 박찬대 두 사람 모두 “가야 한다”고 주장할 만큼 여권의 기류는 “가면 안 된다”는 국민 여론과 달랐다. 만약 그때 참석으로 결론이 났다면, 내일 톈안먼 성루에 오르는 것은 김정은이 아니라 이 대통령이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 대통령과 김정은, 시진핑, 푸틴이 나란히 선 모습이 세계 언론을 장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상상만으로도 어쩐지 등골이 서늘해지는 장면이다.

한국이 중국의 초청을 받아들였다면 최근의 한·미, 한·일 정상회담이 과연 열릴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 정상회담 성사는커녕 10년 전보다 훨씬 파괴적인 외교적 후폭풍을 마주했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실용’을 국정 브랜드로 내건 이 대통령이 적어도 외교에서만큼은 첫 단추를 잘 끼웠고 아직 초심을 잊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이시바 시게루와의 정상회담을 들여다보면 외교·안보 참모들이 중심을 잡고 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한·일 정상회담을 한 것은 ‘신의 한 수’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던 트럼프와의 회담에서도 한·일 화해 무드는 도움이 됐고, 퇴진 압박에 시달리는 이시바를 측면 지원하는 효과도 거뒀다.

이 대통령이 “강제징용·위안부 문제에 있어 전 정부의 합의를 뒤집을 수 없다”고 한 것과 “이제는 과거와 같은 안미경중(安美經中)의 태도를 취할 수 없다”고 천명한 건 놀랍다. ‘대통령 이전의 이재명’을 부정해야 하는 데다 핵심 지지층을 돌아서게 할 수 있는 문제여서다. 얽힌 매듭을 잘 풀 수 있다는 자신감과 내부 비판을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강단도 엿보였다. 물론 ‘아무 성과가 없었던 회담’이라는 비판이 없지 않다. 하지만 두 회담에서 ‘우려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시작으로선 충분한 성과다. 우리가 설 자리를 분명히 한 덕분이다. 격랑의 시대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난세의 전국시대에 강자들 틈에서 살아남아 최후 승자가 된 비결이기도 하다. 방일 전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이 그의 인내심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했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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