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9월 02일 15:05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이커머스 자회사 11번가의 처리를 두고 고민해온 SK스퀘어가 개정 상법의 벽에 막혔다. 외부 매각 실패와 재무구조 악화로 11번가의 가치는 계속해서 떨어지는 가운데 사모펀드(PEF)와 국민연금 등 재무적투자자(FI)들의 투자금 상환 압박은 거세지고 있다. 상법에 주주충실 의무가 명시되면서 상환 과정에서 SK스퀘어 일반 주주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방안까지 고민해야하지만 11번가의 경쟁력 악화를 고려할 때 뚜렷한 방법이 없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SK스퀘어와 재무적투자자인 H&Q아시아퍼시픽코리아는 이르면 이번주 11번가 지분 처리방안을 두고 구체적인 협상에 돌입할 예정이다. H&Q는 2018년 국민연금, 새마을금고 등 주요 기관과 함께 5000억원을 투입해 11번가 지분 20%를 확보했다. 당시 5년 뒤인 2023년 9월까지 회사를 상장하지 못하면 모회사가 원금에 연평균 3.5%의 이자를 붙여 되사주거나 FI주도로 경영권 매각에 돌입할 수 있는 주주간계약을 맺었다.
만기인 2023년이 도래했지만 쿠팡의 이커머스 시장 석권에 따른 11번가의 경영악화로 IPO는 결국 실패했다. 당시 SK스퀘어 측은 돌연 콜옵션 행사도 포기하면서 FI 주도로 경영권 매각을 타진했다. 오아시스에쿼티파트너스 등 여러 후보들이 거론됐지만 실제 계약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이에 SK스퀘어의 콜옵션 행사 시점도 다시 2년 연장돼 내달부터 가능해진다.
SK스퀘어 측이 2023년 콜옵션 행사를 포기한 배경엔 이사회의 배임 우려가 있었다. 투자유치 당시 11번가의 기업가치는 2조7500억원 수준이었지만 올해 상반기 기준 모회사인 SK스퀘어가 보유한 80% 지분의 장부가액은 약 6600억원에 그친다. 전체 기업가치 기준으로도 1조원에 미치지 못하는 회사 지분을 2018년에 책정한 기업가치로 되사오는 것은 SK스퀘어의 주주가치 훼손을 불러온다는 입장이었다.
2차 콜옵션 행사기한을 앞두고 여당 주도의 상법 개정안이 발표하면서 SK스퀘어의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아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개정상법에선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고, 이사가 전체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공평하게 대우해야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위배할 경우 이사들은 소수주주로부터 곧바로 민·형사상 책임에 직면하게 된다. 개정 상법 시행 이전이라면 자본시장 내 '관행' 측면에서 허용됐던 콜옵션 등 주주간계약 이행이 이제는 법적 리스크로 바뀌는 셈이다.
업계에선 SK스퀘어가 11번가 지분 20%를 사들이기 위해 콜옵션을 전량 행사해 원금과 이자를 포함 6000억원 이상을 투입할 경우 주가하락 등 주주가치 훼손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투자금을 상환하는 대신 잔여 지분에 대한 투자기한을 연장하거나 FI 보유 11번가 지분을 SK스퀘어의 신주와 교환하는 등의 아이디어들가 거론된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SK스퀘어의 손실이 불가피해 주주가치 훼손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은 구조다.
일각에선 취약한 11번가의 재무구조를 고려할 때 한차례 증자가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11번가는 수년간 1000억원대 적자를 기록하면서 남은 자본은 약 300억원에 그친다. 구조조정을 거쳐 손실 규모를 대폭 줄였지만 업계에선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위해선 신규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상장사인 SK스퀘어 상황에선 적자 자회사인 11번가 지원을 위한 증자 결정이 주가하락의 트리거가 될 수 있다보니 이사들의 고심이 더욱 커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경영계 관계자는 "개정 상법의 사례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이사들의 10년전 경영결정까지도 소송 대상이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며 "특히 주가하락 가능성이 큰 증자 등 결정까지 이어지면 이사들의 반발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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