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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다닥" 휘몰아친 발소리에 전율…'브로드웨이 42번가' 숨은 주역 [김수영의 크레딧&]

입력 2025-09-06 18:18   수정 2025-09-08 08:14



객석의 어둠을 뚫고 무대 막이 오르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탭슈즈를 신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30여명의 발이다. 흥겨운 스윙 리듬에 맞춰 움직이는 발끝에서는 경쾌하고 짜릿한 마찰음이 난다. 이 소리가 모이니 귀 바로 옆에서 '솨아아' 하고 시원한 장대비가 내리는 듯하다. 때로는 천둥과 같은 기개 넘치는 울림이 나오기도 한다.

'쇼뮤지컬의 정석'으로 꼽히는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오프닝부터 시원한 탭댄스의 향연으로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 1930년대 대공황기를 배경으로 무명 배우가 브로드웨이 스타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에서 환하게 웃으며 군무를 소화하는 배우들의 발은 단 1초도 쉬지 않고 소리를 낸다. 31명의 앙상블에 더해 주연까지 대부분 탭댄스를 춘다.

극강의 체력, 호흡, 쾌감, 환희가 한데 어우러진 땀 냄새 나는 무대 뒤에는 '탭댄스 선생님' 권오환 안무감독이 있었다. 주연 줄리안 마쉬 역으로 출연 중인 박칼린은 연습에 합류하며 앙상블의 군무 실력을 보고는 "안무 선생님이 큰 박수를 받아야 한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박수받아 마땅한 여정이었다. 배우 대다수가 탭댄스를 처음 접했다. 권 감독은 "주연을 포함해 탭을 아예 처음 하는 분들이 70% 이상이었다. 지난 4월에 사전연습을 시작했다. 처음 하는 친구들부터 연습을 시작했고, 이후 경험이 있는 이들이 합류하는 식으로 진행했다"고 밝혔다.

연습은 10 to 10. 모두가 하루 12시간씩 모여 구슬땀을 흘렸다. 극 중 빌리 로러 역할을 소화하고 있는 기세중은 프레스콜에서 "땀이 후두두 떨어져서 연습실 바닥을 계속 닦아야 했다"고 밝혔었다. 페기 소여 역의 최유정은 처음 배우는 탭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 집을 연습실 근처로 옮기기도 했단다.



권 감독은 '전우애'라는 표현을 썼다. 치열하게 습득하고 익혀나가는 과정에서 생겨난 끈끈함은 각기 다른 실력을 하나의 짜임새 있는 그림으로 완성하는 동력이 됐다. 그는 "같은 스텝이어도 누군가는 되고, 누군가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배우들이 서로 잘하는 걸 가르쳐주곤 했다. 그런 시간이 쌓이다 보니 전체적인 실력이 느는 게 눈에 보였다"고 말했다.

촘촘하게 밟는 스텝부터 시원시원하게 다리를 뻗는 과감한 동작까지 30여명이 넘는 앙상블과 주연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웅장한 쇼는 '브로드웨이 42번가'의 가장 큰 매력이다. 무대를 꽉 채우는 움직임이 눈을 즐겁게 하는 건 물론이고, 대규모 인원이 만들어내는 힘 있는 탭 사운드가 연신 관객들을 흥분시킨다.

31명 앙상블의 발은 누구 하나 튀거나 뒤처지는 것 없이 마치 하나의 큰 악기처럼 리듬을 만들어낸다. 장면의 특성에 따라 인물의 감정을 품은 채로 정교하고 다채롭게 전개되는 탭의 소리는 마치 관객들에게 말을 거는 듯하다. 단순한 몸 동작 그 이상의 예술적 경험을 할 수 있다. 빈틈없이 움직임이 이어지는 무대 위에서 초심자의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이미 권 감독은 주변 동료들로부터 "비기너들이라고는 믿기 어렵다. 대체 어떻게 한 것이냐"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권 감독은 "이 작품을 사랑하지 않으면 소화할 수 없을 정도의 체력을 필요로 한다"면서 "이번 시즌에 앙상블 인원수가 늘어난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에너지가 다르다. 인원수가 늘어도 합이 안 맞으면 의미가 없는 건데, 배우들이 열심히 해준 덕에 합도 잘 맞았다"며 웃었다.

권 감독에게 '브로드웨이 42번가'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2004년 앙상블 배우로 합류하며 시작된 인연은 2016년 협력안무 참여로 이어졌다. 이후 안무를 총괄하는 안무감독으로 수많은 배우를 이끌며 관객들의 눈과 귀를 황홀하게 만들고 있다.

권 감독은 "'브로드웨이 42번가'는 항상 가슴이 벅차지는 작품"이라고 했다. 그는 "개막할 때 막이 오르고 배우들의 발이 보이는 순간부터 오열했다. 땀, 노력, 열정 등 배우들의 정직함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공연이다. 정직하게 연습해서 정직하게 무대에서 보여드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1996년 국내 초연돼 30년 가까이 장수하고 있는 뮤지컬인데다, 클래식한 색채가 강한 탭댄스까지 더해진 이 작품이 현대의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매번 따른다. 하지만 권 감독은 "1980년에 작품을 처음 만든 사람의 의도까지 깨면서 변화를 주고 싶진 않았다. 어쿠스틱적인 게 녹아있는 작품인데,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바꾸고 싶진 않아서 최대한 오리지널리티를 유지하는 선에서 세부 요소들을 컨트롤했다"고 밝혔다.



권 감독은 대학에서 수업 중 접한 탭댄스에 첫눈에 반해 20년이 넘도록 사랑을 이어오고 있다. 과거 탭댄스를 배울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은 환경에서 그는 "딱 10년만 해보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깊어진 사랑을 되돌리긴 어려웠다. 결국 본고장인 미국으로 2년간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는 유학 시절을 떠올리며 "탭에 미쳐 살았던 때"라고 말했다. 이어 "어학원에서 탭 아카데미까지 가는 길에 타임스스퀘어를 지나야 했는데 그건 보이지 않고 오로지 탭 아카데미만 보일 정도였다. 그때가 서른 살이었다"며 미소 지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탭댄스의 수명을 늘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스탭스 탭댄스 컴퍼니의 대표인 그는 대한민국 탭댄스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각종 강연·강의는 물론이고 해외 여러 무대에 오르며 플레이어로서의 역할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최근에도 다른 댄서들과 2시간 동안 자유롭게 탭을 추며 소통하는 '잼'을 진행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탭의 매력에 관해 묻자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권 감독은 "연습하는 만큼 (실력이) 는다. 딱 연구한 만큼만 발전한다. 그게 좋다. 주류 문화가 아니라서 속상했던 적도 있었지만, 탭은 재미있고 또 재미있다"며 웃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는 스튜디오가 문을 닫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탭을 전수하며 얻는 보람은 그의 마음을 풍성하게 하는 요인이었다. '브로드웨이 42번가' 배우들을 떠올리며 "사랑으로 꽉 차 있다"고 했고, 과거 자신과 함께 탭댄스를 추며 눈물을 흘렸던 외국인 소년과 진동·울림으로 탭을 배워나갔던 청각장애인 수강생 등을 떠올리면서는 얼굴에 흐뭇한 미소를 띠었다. 현재는 오는 27일 개막을 앞둔 '미세스 다웃파이어' 속 탭댄스 신을 준비 중이다. 권 감독은 "탭 분량이 길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휘뚜루마뚜루 할 순 없다. 관객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배우들과 최선을 다해서 연습하고 있다"고 전했다.

'인간 권오환'의 최종 목표는 "좋은 탭 댄서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제가 가진 지식을 무의식적으로, 즉흥적으로 표출하는 '무의식적 지식'이 저의 가치관이거든요. 자기 이야기를 발로, 리듬으로 표현하는 거죠. 탭을 많이 이해하고 아는 만큼, 표현할 줄 아는 그런 탭 댄서가 되고 싶습니다."


K컬처의 화려함 뒤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땀방울이 있습니다. 작은 글씨로 알알이 박힌 크레딧 속 이름들.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스포트라이트 밖의 이야기들. '크레딧&'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을 하는 크레딧 너머의 세상을 연결(&)해 봅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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