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 당국이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을 급습하면서 발생한 ‘한국인 무더기 구금’사태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민세관단속국(ICE)이 수많은 해외 투자기업 가운데 한국 기업을 노린 이유를 한미 통상문제로 풀이하는 분석이 나오는가 하면, 미국 국내 정치 역학 때문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워싱턴포스트(WP)는 6일(현지시간) 미국의 이번 대규모 단속과 관련해 ‘이민 단속으로 한미관계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제목의 기사로 보도했다. WP는 “지난 4일에 있었던 근로자 475명의 체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에서 이뤄진 가장 큰 규모의 현장 단속 작전”이라며 한미가 관세 및 투자를 놓고 몇 달씩 껄끄러운 협상을 한 이후 이번 단속이 이뤄졌다는 점을 주목했다.
WP는 특히 현대와 LG와 같은 기업이 이 투자 추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한국이 미국의 주요 교역국이자 긴밀한 안보 동맹국임에도 불구하고, 관세 협상은 여전히 민감한 국면에 놓여 있다고 덧붙였다.
조지아주 하원의원인 맷 리브스 또한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번 단속은 전적으로 연방정부 차원에서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정부의 이번 단속이 한미 관세 협상을 더욱 복잡한 상황을 끌고 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 국내 정치 이슈인 ‘불법 체류자’ 문제와 경제 이슈인 해외 기업 투자 이슈가 겹치면서다. 트럼프 행정부로선 불법 체류자 단속에서 물러서는 이미지를 보이는 순간 공화당 지지층으로부터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동시에 한국 정부의 ‘국민 최우선 보호’라는 이슈를 건드림으로써 관세 협상에서 오히려 한국 정부가 물러설 자리를 만들지 못했다는 분석에도 힘이 실린다.
김동석 한인유권자연대 대표는 “이미 미국 의회는 내년 11월 중간선거를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다”며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으로선 불법 이민자 단속이 지지 세력을 결집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이슈이기 때문에 더욱 이 사안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해석했다.
미국 대통령 임기 중간 시점인 임기 시작 2년 후 열리는 선거다. 연방 하원의원 전체(435석)와 연방 상원의원 100석 중 3분의 1, 주지사·주 의회·지방 정부 선거 등이 치러진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이민자 보호에 적극적인 소위 피난처 도시들에 주 방위군을 배치하는 등 강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와 워싱턴DC 등 민주당 텃밭 지역에서 실시한 불법체류자 단속을 보스턴에서도 이어 나간다는 계획이다. 민주당이 장악한 도시와 주를 상대로 군인과 요원을 투입해 ‘혼란을 일으키는 이민 사회를 정리한다’는 이미지를 만들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것이다.
김 대표는“ICE의 이번 급습은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의 조지아주 지역에 대한 정치적인 공격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조지아주는 내년 중간선거의 최대 접전지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공화당 텃밭이었던 조지아주는 인구 구조에 변화가 생기며 애틀랜타를 중심으로 민주당 성향의 유권자가 확대되고 있다.
김 대표는 “조지아의 존 오소프 상원 의원(민주당) 역시 젊은 세대와 소수인종 지지층 덕분에 당선됐지만, 차기 선거에서는 공화당의 주요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리얼리티 프로그램 ‘어프렌티스’에서 보여준 경쟁과 충성 경쟁 중심의 분위기를 행정부 운영에도 투영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인사와 정책 결정 과정이 일종의 ‘탈락 게임’처럼 전개되며, 각 부처 장관과 참모들이 대통령의 눈치를 보며 충성을 겨루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로이터는 ICE 내부에서 실적 압박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와의 인터뷰에 응한 ICE 전·현직 요원 9명은 트럼프 행정부의 과도한 실적 압박 탓에 현장 요원들이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단속 목표치를 채우기 위해 범죄 기록이 없는 단순 불법 체류자는 물론 영주권자, 합법 비자 소지자까지 체포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요원들이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을 주도하는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지난 5월 ICE 회의에 참석해 하루에 3000명을 체포하라고 지시했다. 트럼프 2기 첫 100일 동안 하루 평균 체포자 수(665명)와 비교하면 4배가 넘는 규모다.
뉴욕=박신영 특파원/조지아=이상은 특파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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