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점이 너무 많은 법입니다.”최근 사석에서 만난 한 사모펀드(PEF) 대표는 새 정부 출범 후 더불어민주당이 두 차례에 걸쳐 강행 처리한 상법 개정안을 이렇게 평가했다. 회사 직원과 국내 대형 로펌을 찾아가 개정 상법 해설을 듣고 내린 결론이다. 그는 “로펌조차 결국 법원 판결에 달렸다며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 부분이 상당했다”고 했다.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집중투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등 ‘독한 내용’에 관심이 집중돼 거의 부각되지 않았지만 최근 개정 상법은 ‘부실한 법 형식과 체계’도 큰 문제다. 과거 모든 주요 상법 개정은 개정 때마다 법무부가 주도해 전문가 특별위원회를 꾸리고 심도 있는 토론과 기초연구를 거쳐 초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번 개정은 탄핵과 조기 대선 국면에서 다수의 민주당 국회의원이 만든 의원 안만으로 이뤄졌고, 1500만 동학개미 표심을 겨냥한 ‘코스피지수 5000’ 공약 이행을 위해 이마저 속도전으로 처리됐다. 그러다 보니 “용어가 부정확하고 다른 조문·법령과의 관계, 실무적 역효과 등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법안”(천경훈 서울대 교수)이 됐고, 법 개정 이후에도 법 해석이 충돌하며 기업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조항(382조의 3)부터 그렇다. 1항에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회사 외에 ‘주주’를 추가하고 2항을 신설해 이사는 ‘총주주’ 이익을 보호하고 ‘전체 주주’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도록 규정했지만 용어 정의를 하지 않았다. 주주, 총주주, 전체 주주는 도대체 뭐가 다른가. 법조계는 문맥 등을 살펴 주주와 총주주는 ‘전체 주주 집단’, 전체 주주는 ‘각각의 주주’를 뜻한다고 짐작할 뿐이다. 법률 명확성 원칙부터 어긴 것이다.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라는 원칙 규정만 바꾸고 관련 절차와 연관 규정을 방치해 놓은 건 더 큰 문제다. ‘공평한 대우’를 준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역사회 이익, 환경 등 ESG 고려는 주주 충실의무에 위배되지 않는가. 이사는 회사 외에도 주주의 사무처리자가 되면서 배임죄가 확대되는가. 법은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주주가 이사에게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된 건지, 가능해졌다면 이사회의 어떤 의결사항이 대상이 되는 건지도 오리무중이다. 소수 주주가 손해를 보는 합병, 분할, 포괄적 주식교환, 공개매수, 감자 등은 물론이고 일반 신사업 투자와 인수합병(M&A), 계열사와의 거래 등도 주주 손실 때 이사 대상 손해배상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로펌들은 해석한다. ‘1호 소송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한 이사회의 의사결정 지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규모 상장회사에 의무화되는 전자주주총회 병행 개최는 ‘주총 대란’ 우려를 낳고 있다. 시행 시기(2027년)부터 못 박고 세부 운영 방안은 시행령으로 위임해 놨지만 실무적으로 구현될지 기업들의 걱정이 매우 크다. 최대 500만 명에 달하는 소액주주(삼성전자)가 동시 접속해 실시간 투표와 토론까지 가능한 주총 시스템 구축이 현 기술 수준으로 가능한가. 접속 중단 등 시스템 문제 발생 때 회사와 통신사업자, 망사업자 중 누가 책임을 지는가. 관련 안건과 주총은 무효가 되는가. 역시 개정 상법이 누락하고 있는 항목들이다.
이런 문제점을 알고 있는지 정부는 지난달 말 ‘새 정부 경제성장전략’에서 개정 상법 안착을 위한 가이드라인(지침)을 하반기에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법적 효력이 없는 지침만으로 혼란을 잠재울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과거 통상임금과 정년 연장 관련 법 개정 때도 기업들은 고용노동부 지침을 따랐다가 근로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줄패소’한 경험이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이상 법무부는 다시 주도권을 갖고 상법 보완 입법에 나서야 한다. 전문가 심의를 거쳐 충실의무 조항부터 명확히 정리하고 이사의 손해배상 대상과 경영판단 원칙을 법에 명문화하는 등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게 시급하다. 여당 의원 입법으로 추진되고 있는 3차 상법 개정(자사주 소각 의무화) 작업도 넘겨받아야 한다. 법 개정 시 소각 물량, 기업 경영권 및 재무에 미칠 부정적 영향 등을 정밀히 따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입법이 필요하다. ‘기업의 헌법’으로 불리는 상법을 졸속으로 만들고 사후 보완하는 일은 더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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