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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피자집 칼부림, 탐욕의 '필수 품목'이 낳은 참사일까 [이인석의 공정세상]

입력 2025-09-09 07:00   수정 2025-09-21 09:37

한경 로앤비즈의 'Law Street' 칼럼은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


한때 누군가의 희망이자 가족의 생계였던 평범한 동네 피자 가게가 끔찍한 비극의 현장이 됐다. 한계 상황에 내몰린 가맹점주가 휘두른 흉기에 여러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자영업자의 꿈이 악몽으로 변해버린 이 참혹한 사건을 그저 개인의 일탈로 치부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의 모세혈관인 수많은 자영업자가 처한 현실과, 그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가맹사업 구조적 모순이 빚어낸 예고된 참사에 가깝다.
'필수품목'이라는 보이지 않는 족쇄
사건의 발단은 본사의 과도한 인테리어 리뉴얼 요구와 비용 압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가맹사업 시스템의 가장 어두운 단면인 '필수품목' 제도와 직결된다. 가맹본부는 브랜드의 통일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가맹점주에게 특정 품목을 자신들로부터만 구매하도록 강제한다.

필수품목 범위는 품질과 무관한 영역까지 무한히 확장된다. 시중에서 더 싸게 구할 수 있는 냅킨, 포크, 주방 세제, 전용 카드결제단말기(POS), 인테리어 시공업체까지 필수로 지정해 고가에 판매한다. 더 큰 문제는 품목의 종류와 가격까지 본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한다는 점이다. 이는 가맹점주를 '사장'이 아니라 본사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부속품으로 전락시키는 족쇄나 다름없다.

이런 구조적 문제는 최근 가맹사업에 뛰어든 사모펀드(PEF)의 등장으로 더욱 악화됐다. BHC 등 유명 브랜드를 인수한 PEF의 우선 목표는 장기 성장이나 가맹점 상생이 아니다. 3~5년 안에 기업가치를 부풀려 되파는 방식의 수익 극대화를 노린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필수품목을 늘리고 가격을 공격적으로 인상해 본사의 매출과 이익을 부풀리는 것이다. 화려한 투자 회수(엑시트) 전략의 비용은 고스란히 가맹점주들의 피눈물로 전가된다.
수익 극대화에 내몰린 가맹점주들
오늘날 수많은 소상공인의 벼랑 끝에 내몰린 이유는 여기에 있다. 경기는 어렵고 경쟁은 치열한데, 원가 절감마저 본사가 정한 필수품목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있다. 매출이 늘어도 본사가 일방적으로 공급가를 올려버리면 남는 게 없다. 천장이 막힌 방에서 바닥만 계속 차오르는 형국이니, 숨 막히는 고통 속에서 버텨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비극은 통계가 말해 준다. 공정거래위원회 실태조사에 따르면 외식업 가맹점주 10명 중 4명(38.2%)이 지난 1년간 본사로부터 불공정거래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가장 흔한 유형은 단연 ‘구입 강제’(55.4%)였다.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 접수된 분쟁조정 신청 건수 역시 작년 1025건으로 전년 대비 15.2%나 급증하며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울 추세다.

최근에는 본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등 문제 제기에 나선 가맹점주들을 상대로 위생 검사를 핑계 삼아 계약 갱신을 거절하는 보복 행태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는 본사가 가진 가맹계약 해지·갱신이라는 막강한 무기를 이용해 점주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부당한 관행에 대한 문제 제기 자체를 원천 봉쇄하려는 '갑질'이다.

비극의 사슬을 끊으려면
해법은 명확하다. 첫째, 필수품목을 합리적으로 통제해야 한다. 공정위가 심사지침 등을 통해 브랜드의 정체성과 무관한 품목은 필수품목에서 제외하도록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위반하는 본사에 엄정한 법 집행에 나서야 한다.

둘째, 본사의 일방적인 가격 결정권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공정위는 표준약관을 개정해 본사가 일방적으로 가격을 정할 수 없도록 하고, 공급 가격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나아가 사법부는 이러한 일방적 가격 결정 조항을 '불공정한 약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무효화하여 시장에 명확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

셋째, 가맹점주들의 협상력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가맹점주들이 본사를 거치지 않고 공동구매를 통해 원가를 절감하는 길을 열어주는 것을 넘어, 가맹점주협의회에 노동조합에 준하는 단체교섭권을 부여하는 방안까지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이는 가맹사업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으로, 입법부인 국회의 결단이 필요한 몫이다.


넷째, 소송 과정에서 ‘증거의 구조적 편재’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 가격 인상의 필요성과 합리성에 대한 모든 정보는 본사가 독점하고 있는 만큼, 가격 결정이 합리적이었다는 점은 가맹본부가 직접 입증하도록 증명책임을 전환하여 기울어진 사법적 구제 절차를 바로 세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본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하게 계약을 해지하거나 갱신을 거절하는 등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명시적으로 금지해야 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보복조치 금지' 조항을 가맹사업법에 신설해야 한다.
대법원 판단에 쏠린 눈
현재 법원에는 가맹본부가 필수품목을 공급하며 얻는 유통마진, 즉 ‘차액가맹금’의 법적 성격을 둘러싼 사건이 계류 중이다. 핵심은 본사가 제3자에게서 물품을 사들여 점주에게 공급할 때 붙이는 마진이 사실상 가맹금의 일부인지, 따라서 사전 정보 제공과 별도의 합의가 필요했는지 여부다.

만약 법원이 이 마진을 가맹금으로 인정한다면, 그동안 ‘공급가격’이라는 이름에 숨어 있던 불투명한 마진 관행에 제동이 걸리게 된다. 법원이 신속하고 현명한 결정을 내려 본사와 점주 간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이정표를 세우길 촉구한다. 더 이상 탐욕의 ‘필수품목’이 또 다른 비극을 낳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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