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국에서 가장 뜨거운 인공지능(AI) 반도체 회사는 캠브리콘이다. 이 회사의 이름은 5억4200만 년 전 고생대가 시작된 시기인 ‘캠브리아기’와 반도체의 주재료인 ‘실리콘’에서 따왔다. 캠브리아기는 지구 생명체가 폭발적으로 다양해진 ‘캠브리아기 대폭발’이 일어난 시기다. AI산업에서 캠브리아기 같은 폭발적 발전을 이끌겠다는 중국 AI 굴기의 상징을 회사명에 담은 것이다.
‘중국판 엔비디아’로 불리는 이 회사의 지난달 주가는 전달 대비 120% 폭등하며 이름값을 톡톡히 증명했다. 중국 전통주 마오타이를 제치고 황제주(최고가주)에 등극했다. 최근 2년 동안만 놓고 보면 주가는 10배 이상 뛰었다. 주가뿐만이 아니다. 올 상반기 매출은 28억8100만위안으로 전년 동기 대비 4348% 증가했다. 지난해만 해도 적자였지만 상반기 영업이익은 10억3800만위안으로 흑자 전환했다. 캠브리콘의 폭발적인 성장세는 엔비디아 칩을 대체하려는 중국 당국의 정책과 지원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현지에선 캠브리콘의 혹독한 ‘밤샘 연구개발(R&D)’ 문화가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중국인은 게으르고 느리다’는 의미의 ‘만만디’를 캠브리콘이 바꿔놨다는 말까지 나온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치열하게 연구하는 캠브리콘 엔지니어를 일컬어 ‘아오예 궁청스’(밤샘 엔지니어)라고 부른다. 캠브리콘은 철저하게 엔비디아의 ‘하드 워크(hard work)’ 문화를 벤치마킹했다.
엔비디아의 하드 워크 문화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안착시켰다. 그는 엄청난 일 중독자다. 젠슨 황 CEO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나는 1주일 내내 일하고, 일하지 않을 때도 일 생각을 한다”며 “새벽 5시부터 일하기 시작해 밤 12시 자기 전까지 일하는 것은 물론 침대에서는 내일 할 일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엔비디아 직원들은 주 7일, 새벽 2시까지도 사무실에 앉아 있어야 하는 고강도 근무를 견딘다. 이를 가능하게 한 건 높은 급여와 세상을 바꾼다는 이상(理想)이다. 젠슨 황 CEO는 여전히 “엔비디아는 매일 위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2010년 3월 경영 복귀 직후에는 “지금이 진짜 위기”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10년 내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고 분위기를 잡았다. 2013년 10월 신경영 20주년 만찬에선 “위기의식으로 재무장해야 한다”며 “실패가 두렵지 않은 도전과 혁신, 자율과 창의가 살아 숨 쉬는 창조경영을 완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젠슨 황 CEO가 공개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지만 그가 이 선대회장이 일군 삼성의 하드 워크를 벤치마킹했을 것이라는 추정은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젠슨 황 CEO가 게임용 그래픽 칩을 팔기 위해 용산을 드나들 무렵 삼성은 세계 반도체 시장의 떠오르는 신흥 강자였다. 안타깝지만 대한민국에 이 선대회장의 치열함은 고사하고 캠브리콘 같은 열정도 사라진 지 오래다.
미·중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고 대만이 한국을 턱밑까지 쫓아오는 상황에서 더 전력투구해도 모자랄 판에 설익은 주 4.5일 근로제와 성과급 잔치가 판을 친다. 위기라고 말은 하지만 혁신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내년이 AI 선도국과 후진국을 나누는 해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AI의 캠브리아기를 눈앞에 둔 지금 한국에 필요한 건 복지와 워라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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