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4,586.32
(33.95
0.75%)
코스닥
947.92
(3.86
0.41%)
버튼
가상화폐 시세 관련기사 보기
정보제공 : 빗썸 닫기

"물은 200도서 더 늦게 끓는다"…법조인들이 되새겨야 할 이유[하태헌의 법정 밖 이야기]

입력 2025-09-15 07:00   수정 2025-09-28 22:59

한경 로앤비즈의 'Law Street' 칼럼은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

물이 섭씨 100도에서 끓는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불의 온도를 높이면 물이 더 빨리 끓는다는 사실 역시 기본 상식으로 여겨지고 있을 것이다.

물이 담긴 그릇에 열을 가하면 처음엔 표면에서 수증기만 피어오른다. 그러다 온도가 서서히 오르면 물속에서 기포가 하나둘 생기기 시작한다. 마침내 섭씨 100도에 도달하면 그 기포가 사방에서 솟구치며 물이 본격적으로 끓기 시작한다. 만약 물을 더 빨리 끓이고 싶다면 불의 온도를 200도 이상으로 올려야 할까? 놀랍게도 이 경우 물은 오히려 더욱 천천히 끓는다.
'라이덴프로스트' 현상을 아시나요
온도를 높였는데 끓는 속도가 되려 느려진다니, 직관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과학적으로는 사실이다. 물은 금속 그릇을 통해 열을 전달받는데 그릇의 온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면 물이 그릇에 닿는 순간 즉시 기화하며, 그 과정에서 물과 그릇 사이에 얇은 공기층이 형성된다. 공기는 금속 그릇보다 열전도율이 낮기 때문에 그릇의 열이 물에 효율적으로 전달되지 못하고, 그 결과 물이 늦게 끓어오르게 되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를 '라이덴프로스트(Leidenfrost) 현상'이라 부른다.

비슷한 예는 의외로 많다. 치아 교정이 그렇다. 치아에 적절한 힘을 가하면 치아 주변에서 뼈를 흡수하는 세포와 재생하는 세포가 활성화 돼 주변 뼈를 재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치아가 천천히 움직이는 게 교정의 원리다. 치아를 빨리 움직이려 지나치게 강한 힘을 가하면 치아 주변 미세혈관에 압박이 가해져 손상된다. 그 결과 뼈를 녹이는 세포가 제 기능을 못 하게 되고, 치아의 이동은 오히려 늦어지는 현상으로 이어진다.

과거 지문 인식 보안 시스템이 처음 도입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맞는 지문인데도 센서의 민감도를 너무 높게 설정한 탓에 손가락에 약간의 먼지나 흠집만 있어도 지문을 인식하지 못하는 오류가 잦았다. 지문 오인식을 막으려는 '지나친' 우려에서 나온 결정이 오히려 시스템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게 된 셈이다. 이 문제는 여러 시행착오 끝에 센서 민감도를 적정 수준으로 조정된 뒤에야 해결됐다.

과학의 영역이 아닌 일상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쉽게 경험할 수 있다. 시험을 앞두고 소위 벼락치기를 할 때가 그렇다. 밤을 새워 공부하면 더 좋은 성적을 거둘 것 같지만, 피로가 누적되면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기억력도 함께 나빠지기 마련이다. 적당한 휴식과 균형 잡힌 학습 계획이 더 나은 성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법정서 되새기는 '과유불급'의 교훈
'더 많이, 더 강하게, 더 빨리'가 항상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않는다. 때로는 지나친 열정이 성과를 방해하거나 부작용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다.

재판 실무에서도 이런 과유불급(過猶不及)의 교훈을 종종 마주하곤 한다. 한때 성범죄 재판에선 피해자가 즉시 신고하지 않았다거나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재판부가 피해자의 진술을 신뢰하지 않거나 2차 가해하는 경향이 있었다. 피해자에게 이른바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잘못된 관행이었다.

다행스럽게도 2018년부터 성 인지 감수성을 강조하는 판결이 나오기 시작했다. 법원이 성평등에 반하는 편견을 경계하고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 건 매우 긍정적인 변화였다. 그러나 성 인지 감수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이젠 피해자가 일관된 주장만 하면 명확한 증거 없이도 억울한 피고인이 범죄자로 낙인찍히는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형사 재판의 대원칙은 명확하다. 검사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공소 사실을 증명해야 하지만, 피고인에겐 스스로 무죄를 증명할 의무가 없다. 성범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지나친' 선의로 대원칙이 흔들린다면, 법의 이름으로 또 다른 부조리를 낳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검찰 개혁을 비롯해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제도 개혁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교왕과직(矯枉過直)'이란 말이 있다. 한쪽으로 굽은 것을 곧게 펴려다 힘이 과해 오히려 반대로 굽게 만드는 과오를 이르는 말이다. 충분히 공감되는 변화라도 그 의지가 지나쳐 균형을 잃어버리면 기존 문제를 해결하긴커녕 없던 문제를 새로 만들어낼 수 있다.

법조 경력이 쌓이면 쌓일수록 송무 현장에선 과유불급이란 말을 수없이 되새기게 된다. 재판은 본질적으로 형평을 찾아가는 과정이고, 한쪽으로 치우치면 정의도, 균형도 흔들리게 되기 때문이다. 적절한 온도, 적절한 압력, 적절한 민감도를 찾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충분한 경험과 성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느새 교왕과직(矯枉過直)의 함정에 빠지는 게 법조인의 숙명이다. 균형을 향해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자신의 열정이 과하진 않은지, 신념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진 않았는지 끊임없이 자문하는 것이야말로 법과 정의를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 아닐까.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