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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이프이스트-이성득의 아세안 돋보기] '포퓰리즘의 유혹'…인도네시아의 무상급식

입력 2025-09-16 16:37   수정 2025-09-16 16:38

지난 9월 8일 인도네시아 프라보워(Prabowo Subianto) 대통령은 스리 물리야니(Sri Mulyani) 재무장관을 해임했다. 최저임금의 10배에 달하는 국회의원 주택 수당에 대한 분노로 촉발된 시위가 배달 오토바이 기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전국으로 번지자, 대통령은 국회의원 특혜 축소와 개혁을 약속했고 이어 재무장관을 교체했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이 아니라는 시장의 불안을 키웠고, 지난 한 주 내내 자카르타 증시와 루피아화 환율은 약세를 보였다.

어느 나라에서나 여러 정권을 거쳐 중책을 맡는 인물들은 그 전문 지식과 능력을 이미 공인받은 사람들이다. 이번에 교체된 스리 물리야니 장관이 그러했다. 그녀는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수실로 밤방 유드요노(Susilo Bambang Yudhoyono) 대통령 아래에서 재무장관을 지냈고, 세계은행(World Bank) 최고 관리직(Managing Director)을 거쳐 2016년 조코 위도도(Joko Widodo) 대통령 아래에서 다시 재무장관으로 복귀해 인도네시아 재정을 총괄했다. 이 시기 그녀는 재정 적자 억제, 코로나19 대응, 국가 재정 안정화와 투자 환경 개선에 집중했다.

물리야니 장관의 정책은 국가 재정 건전성을 통한 신용등급 유지, 효율적 지출 우선이라는 원칙에 기반을 두었다. 그녀는 인도네시아 재정 안정과 국제적 신뢰의 상징이었다. 프라보워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대한 외국 투자자들의 긍정적 평가도 전임 정부 재무장관이던 물리야니의 유임 덕분이었다. 그러나 대내외적으로 확고했던 그녀의 지위는 프라보워 대통령의 무상급식 공약이 본격 실행되면서 흔들렸다.

프라보워 대통령은 2024년 대선에서 58.6%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전체 38개 주 중 36개 주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의 압승이었고, 그 승리의 일등 공신은 학생과 임산부를 대상으로 한 무상급식 공약이었다.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의 2,300만 명 이상이 식량 불안정 상태에 놓여 있으며, 5세 미만 아동의 성장장애율은 21.5%에 달한다. 프라보워 대통령의 공약대로 이행된다면 수혜 인원만 8,290만 명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무상급식 프로그램이다. 그는 이 공약을 단순한 음식 제공을 넘어 미래를 책임질 인적 자본의 영양과 건강에 투자하는 거대한 프로젝트라 규정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2025년 1월 영유아와 학생, 임산부 등 약 2천만 명을 대상으로 시작된 무상급식 예산은 71조 루피아에서 171조 루피아로 치솟으며 교육·사회안전망 등 다른 부처 예산을 잠식했다. 프라보워 정부는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2025년 국가 예산에서 306조 루피아(한화 약 26조 원) 규모의 긴축을 단행했고, 공공사업 예산도 81조 루피아를 삭감해 도로 건설과 유지보수 사업이 중단되는 등 인프라 투자가 크게 줄었다. 각 부처 예산과 지방정부 지원금, 공식 행사·출장비·공무원 활동비까지 절감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긴축은 서민 생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고등교육 예산 축소로 장학금과 연구 지원, 교육 시설 개선이 위축되며 학생들의 불만이 커졌다. 다른 부처와 기관도 행사와 출장, 운영비를 줄이며 공공 서비스의 질이 떨어졌다. 여기에 물가 상승이 겹쳤다. 세금 부담은 늘고 생활비는 오르는데 실질임금은 정체됐고, 청년 실업률은 16%를 넘어섰다. 지방정부 지원 축소는 세금 인상으로 이어져 일부 지역에서는 토지·건물세 250% 인상안이 나오자 주민 반발이 거세졌다.

무상급식 사업의 성과도 기대에 못 미쳤다. 첫해 예산 집행률은 2.6%에 불과했고, 실제 수혜자는 목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식품 안전 문제, 예산 횡령, 공급망 미비로 사업이 중단되기도 했다. 군 장성 출신인 프라보워 대통령은 군을 식량 조달과 배식에 투입했는데, 이 역시 ‘복지의 군사화’라는 비판을 불러왔다.

결국 허리띠를 졸라맨 긴축 재정과 무상급식의 미흡한 성과는 국민에게 실망을 안겼다. 물가 상승과 생활고, 교육·보건 서비스 악화 속에 국민들은 불만을 표출했고, 국회의원 고액 수당까지 드러나며 시위는 확산했다. 긴축정책의 집행 책임자인 물리야니 장관은 비판의 표적이 되었고, 자택은 시위대에게 공격당하기도 했다. 물리야니 해임은 국민 분노를 달래기 위한 정치 이벤트로 보였고, 시장 반응은 즉각 나타났다. 자카르타 종합지수(JCI)는 해임 당일 1.28% 하락했고, 루피아화도 약세를 이어갔다.

후임 푸르바야 유디 사데와(Purbaya Yudhi Sadewa) 장관은 공학 배경의 경제학자로 예금보험공사(LPS) 감사위원장을 지냈다. 민간과 공공 부문을 오가며 금융 시스템과 리스크 관리 경험을 쌓았고, 재정 건전성을 지키겠다고 밝혔지만, 국내외 투자자 사이에는 포퓰리즘적 공약과 재정 건전성 사이의 균형 능력에 대한 의문이 존재한다.

앞으로의 무상급식 공약 실현도 만만치 않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내년 1월부터 8,290만 명을 대상으로 매일 1조 2,000억 루피아(한화 약 1천억 원)를 투입해 무상급식을 본격 시행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는 국가 인프라 개발과 교육·기술 투자를 위한 필수 예산이 ‘공짜 식사’로 소모된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대학생과 시민단체는 예산 우선순위를 비판하며 시위를 이어가고, 국제 신용평가사와 투자자들은 재정 건전성에 경고음을 보낸다.

결과적으로 물리야니 장관은 국가 재정 균형과 국제 신뢰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무상급식 공약으로 인한 긴축을 더욱 강화할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한 국민 불만의 책임을 지는 형태로 해임됐다. 이는 공약과 재정 현실 사이의 갈등과 모순이 드러난 사건이었다.

앞으로 푸르바야 장관이 얼마나 재정 건전성을 지키며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가, 인도네시아가 ‘포퓰리즘의 유혹’과 ‘경제적 균형’ 사이에서 어떤 길을 택할지를 보여줄 것이다. 우리 역시 선거 때마다 쏟아지는 포퓰리즘 공약이 국민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포퓰리즘이 남긴 청구서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이성득 인도네시아 UNAS경영대학원 초빙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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