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국내 배터리업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ESS 시장에서 밀려 들어오기 시작한 주문이 전기자동차(EV) 판매 부진으로 ‘보릿고개’에 처한 업계의 숨통을 터줄 것이란 게 시장조사업체들의 진단이다.
실적 개선을 낙관하는 주요 배경 중 하나는 전방 산업인 ESS 고객사의 주문 증가다. 국내 최대 2차전지 셀 제조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7월 43억900만달러(약 6조원) 규모 ESS용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삼성SDI도 3월 넥스트에라에너지와 4347억원 규모 ESS용 배터리 공급 계약을 맺었다. 국내 셀 제조업체의 수주 실적은 포스코퓨처엠, 에코프로비엠, 엘앤에프 등 소재 생산업체 실적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미국 번스타인리서치에 따르면 미국의 ESS 시장 규모는 올 들어 지난달까지 23.7GWh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57% 성장했다. 글로벌 전체 시장은 올해 348GWh로 작년보다 68% 커질 전망이다. 인공지능(AI) 관련 전력 수요 급증과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안정적인 전력망 운용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미국의 탈(脫)중국 움직임도 국내 배터리산업의 반사이익 기대를 높이는 요인이다. 미국은 중국산 제품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내년부터 중국산 ESS용 LFP 배터리 관세율을 58%로 18%포인트 인상할 계획이다. 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중국산 ESS용 LFP 배터리 셀에 대한 관세 부과로 중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 저하가 불가피해졌다”며 “ESS 시장 성장에 필요한 현지 배터리 공급은 대부분 한국 기업이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본격적인 기업가치 회복을 기대하기엔 이르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 골드만삭스는 최근 한국 배터리산업 분석 보고서에서 “미국이 전기차 구매 보조금 종료에 이어 배기가스 배출 규제까지 완화하면 전기차 수요에 추가 역풍이 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ESS 시장이 고성장 중이지만 전기차 공급 과잉 상황을 뒤집기에는 규모가 작다”고 지적했다.
시장조사업체 EV탱크에 따르면 작년 글로벌 2차전지 출하량은 모두 1545GWh다. 이 중 EV용 배터리가 68.0%, ESS용 제품은 23.9%를 차지했다.
유럽 전기차 시장 내 중국의 변함없는 독주도 주가를 낙관하기 어려운 배경으로 꼽힌다. 폭스바겐, 스텔란티스, 르노 등 유럽 완성차업체들은 보급형 전기차 배터리를 저렴한 LFP 기반 제품으로 속속 전환하고 있다. 중국 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LFP 기반 배터리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국내 산업이 집중해 온 고밀도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 시장을 잠식해 왔다. 정진수 흥국증권 연구원은 “최근 유럽에서 보급형 전기차 선호 현상이 나타나며 중국 배터리업체의 지배력이 강해지고 있다”고 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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