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재건축 시장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오랫동안 재건축의 주 무대였던 ‘1세대 주공아파트’가 사업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이제는 상대적으로 용적률이 높은 ‘2세대 아파트’가 새 시험대에 올랐다. 이 같은 변화는 주택 공급 정책과 제도 개편, 시장 환경 등이 맞물려 만들어낸 구조적 전환이다.1980년대 저층 아파트는 재건축 사업성 측면에서 교과서적인 답안과 같았다. 용적률 여유가 넉넉했기 때문에 신축 때 추가 가구 수를 확보하기 유리했다. 강남, 여의도, 잠실 등 핵심 입지에 들어선 경우가 많아 주변 아파트 가격도 상당히 높았다. 자연히 조합 결성도 순조로웠고, 사업 추진 동력이 강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에 지어진 아파트는 큰 차이를 보인다. 과거 노태우 정부의 ‘200만 가구 건설 계획’은 공급량 확대를 최우선 목표로 삼았고, 이들 단지는 ‘고층·고용적률’로 설계됐다. 이 과정에서 마포 삼성, 상계 주공 같은 대단지가 준공됐다. 통상적으로 이들 아파트를 2세대 아파트로 구분한다.
문제는 이들 단지의 용적률이 평균 200%를 넘는다는 점이다. 과거 같으면 사실상 재건축이 불가능한 조건이었다. 업계에서는 “용적률 180% 선을 넘으면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통설이 자리 잡았다. 200% 이상의 단지는 재건축 대신 리모델링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달라졌다. 공공기여 확대나 임대주택 공급 등으로 용적률 상향이 가능해졌다. 서울시는 재건축 허용 용적률 인센티브를 최대 40%까지 부여한다. 준주거지역으로 종상향이 이뤄지면 법적 최대 용적률은 500%까지 열려 있다. 은마(강남구 대치동), 도화 우성(마포구 도화동), 삼풍(서초구 서초동) 같은 굵직한 단지가 다시 재건축 시장의 화두로 떠오르는 이유다.
그럼에도 2세대 아파트는 구조적 제약을 안고 있다. 이미 고밀도로 지어진 탓에 동 간 거리가 좁아 햇빛·통풍 등의 문제가 있다. 재건축 때 높이를 올릴 수밖에 없어 스카이라인이나 주거 쾌적성 논란이 뒤따른다. 결국 인센티브로 사업성을 확보한다고 해도 그것이 곧바로 주거 질의 개선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단순히 “계산이 맞다”는 이유만으로는 사업 추진이 쉽지 않은 배경이다.
오늘날 재건축의 핵심 기준은 용적률이라는 단일 지표를 넘어서고 있다. 낮은 용적률 단지라도 주변 시세가 지지하지 않으면 사업은 진척되지 않는다. 반대로 높은 용적률이라도 입지 가치가 확고하고, 정책 인센티브와 수요가 결합하면 사업은 충분히 진행될 수 있다. 재건축의 성패는 절대 수치가 아니라 ‘시장성과 사회성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느냐에 달린 것이다.
서울 재건축 시장은 전환기에 있다. 저층 단지가 줄어든 자리를 이제 중층·고용적률 단지가 채우면서 새로운 계산법이 만들어지고 있다. 투자자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명확하다. 단순히 용적률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정책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지역 수요가 얼마나 지속 가능한지, 입지라는 토대가 어느 정도 견고한지를 종합적으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재건축의 ‘다음 주인공’을 가려낼 수 있는 안목은 결국 숫자만이 아니라 제도 변화 속에서 조건을 얼마나 유리하게 끌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윤수민 농협은행 All100자문센터 부동산전문위원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