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혜택을 포기한 것은 미국과의 속도감 있는 무역협상이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으로 분석된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이자 상당수 제조업은 물론 첨단산업에서 미국과 맞먹는 기술강국이 된 상황이어서 개도국 혜택의 필요성이 줄어든 영향도 있다. 하지만 개도국 지위 자체는 유지할 것이라고 선을 그은 만큼 미국이 주장하는 WTO 개혁에 얼마나 속도가 붙을지는 미지수다.

중국이 이번에 개도국 혜택을 포기하기로 한 것은 미국과의 무역협상을 앞두고 미국에 보내는 유화책으로 해석된다. 미국과 중국은 상대방에 매긴 고율관세를 115%포인트씩 인하하며 ‘관세 휴전’을 이어가고 있는데, 이 같은 상태는 오는 11월 10일 만료된다. 관세전쟁으로 미국과의 교역이 급감해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는 실익이 적다는 점도 요인으로 꼽힌다. 게다가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세계의 공장’과 ‘세계의 시장’ 시기를 지나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글로벌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전기자동차·인공지능(AI)·로봇 부문에선 이미 선진국을 제칠 정도다. 굳이 개도국 지위를 남용해 부당한 무역 혜택을 받는다는 미국의 비판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지적해 온 개도국 혜택 포기를 통해 무역협상에 속도를 내는 게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리 차관은 “국제사회는 다자간 무역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강해지고, WTO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며 “이 같은 배경에서 중국은 WTO 협상에서 새로운 특혜와 차별적 대우를 추구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이라고 했다. 개도국 특혜는 요구하지 않되 개도국 지위를 지속하면서 WTO를 유지하려는 계산으로 볼 수 있다.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 부회장은 블룸버그통신에 “중국의 조치는 WTO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고 있지 않은 미국과 극명한 대조를 이룰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중국의 개도국 혜택 포기에도 미국의 WTO 무력화 시도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지난달 뉴욕타임스(NYT) 기고에서 “WTO가 경제 효율성을 추구하고 166개 회원국의 무역정책을 규제하기 위해 출범했다고 하지만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도, 감당할 수도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며 “미국은 이 체제의 대가로 제조업 일자리와 경제적 안정을 잃었고 다른 국가들은 필요한 개혁을 단행하지 못했으며, 가장 큰 수혜자는 국영기업과 5개년 계획을 내세운 중국이었다”고 비판했다.
미국은 트럼프 집권 1기 때 WTO 분쟁 해결 기구인 패널이 갈등 해소에 도움이 안 된다며 상소위원 선임을 거부했고, 현재 패널 기능은 사실상 정지된 상태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 SDT
special and differential treatment.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개발도상국에 제공하는 특별차등대우 조치를 말한다. 선진국이 개도국에 대해 더 우대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이다. 의무 이행 유예, 시장 접근 우대, 규정·의무 완화, 기술 지원 등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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