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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비 2억 영화로 본 K콘텐츠 시장의 돌파구[김희경의 컬처 인사이트]

입력 2025-09-29 08:15   수정 2025-09-29 14:04





9월 11일 개봉한 상업영화 ‘얼굴’의 제작비는 2억원이다. 독립영화의 평균 제작비 3억원보다 적다. 그런데 작품엔 유명 감독과 배우들이 참여했다. 연출은 ‘부산행’, ‘지옥’ 등을 만든 연상호 감독이 맡았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를 통해 많은 작품을 공개하기도 했으며 제작비 200억원 이상의 작품들을 연출한 감독이 불과 10% 수준의 제작비로 영화를 만든 것이다. 박정민, 권해효, 신현빈 등 인기 배우들도 참여해 힘을 보탰다. 배우들은 무보수 또는 적은 출연료를 받고 흔쾌히 출연했다. 촬영은 3주 동안 총 13회 차로 진행됐고 20여 명의 소수 정예 스태프들로만 구성됐다. 작은 규모의 작품임에도 반응은 좋았다. 개봉 3일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었으며 누적 관객 수는 9월 24일 기준 77만 명을 돌파했다.

경고음이 울려 퍼졌던 국내 콘텐츠 시장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한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K콘텐츠는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으며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과가 곧 내수 시장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선 나날이 제작비가 치솟아 작품을 만드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다. 외형적으로는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 기반이 되는 산업 시스템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돌파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시도와 제도적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아직 분위기를 완전히 바꿀 만한 큰 흐름까진 아니지만 개선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의가 있다.

제작비의 덫에서 벗어날까

K콘텐츠 시장의 영광과 위기는 모순되게도 함께 찾아왔다. 2016년 넷플릭스가 국내 시장에 진출하며 K콘텐츠는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확산됐다. 국가별로 따로 작품을 판매하지 않아도 미국과 유럽은 물론 여러 지역에 한번에 공개할 수 있어 유통에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넷플릭스 진출 10년 만에 국내 시장 구조는 크게 바뀌었다. 넷플릭스가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주요 창작자와 배우들을 영입하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특히 배우들에게 고액의 출연료를 지급하면서 전체적인 제작비가 치솟았다.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된 작품들 사이에서 적은 예산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렇다고 가까스로 투자를 유치하고 제작비를 쏟아붓는다고 해서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많은 제작비를 투입한 만큼 위험 부담은 더욱 커졌다. 영화는 극장을 찾는 관객이 줄면서 손익분기점을 넘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300억원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진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2025)의 관객 수는 106만 명에 그쳤다.

그러다보니 개봉작 자체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올해 극장에서 개봉하는 한국 상업영화는 20여 편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 이전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이창동 감독의 7년 만의 신작 ‘가능한 사랑’은 투자처를 찾지 못해 극장 개봉을 하지 못하고 넷플릭스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의 작품조차 극장 개봉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 영화에 미래가 있긴 한 건지 시장의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

드라마 시장도 사정이 좋지 않다. 제작비 부담 때문에 편성을 꺼리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방송이나 OTT에서 공개되지 못한 채 창고에 쌓인 작품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자 전체 제작 편수도 줄었다. 국내 방송 및 토종 OTT의 드라마의 제작 편수는 2022년 140여 편에서 올해는 80여 편으로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법을 도무지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 그러나 최근 잇달아 들려온 소식들은 새로운 길이 생길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연 감독은 ‘얼굴’을 만든 계기에 대해 “초등학생 딸이 보는 유튜브 영상이나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걸 보면서 예산이 적어도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시장을 옭아맨 제작비의 덫에서 벗어나 더 가볍게, 더 자유롭게 콘텐츠를 만들어 보겠다는 사고의 전환이다. 물론 이 또한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의기투합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2억원 영화가 의미 있는 시도라는 점에서 관객들이 더욱 큰 관심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명감독으로부터 시작된 작은 날갯짓이 일종의 나비효과처럼 언젠가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때마침 넷플릭스가 내놓은 ‘결자해지’의 방침도 숨통을 트여주고 있다. 최근 업계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국내 배우들의 출연료에 상한선을 마련했다. 회당 출연료 기준으로 최대 3억원이다. 기존엔 회당 4억~5억원을 받는 배우들이 종종 있었으며 많게는 회당 8억원을 받은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곳에선 엄두도 내기 어려운 고액 출연료이다. 그러다 보니 캐스팅 비용은 시장 전체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넷플릭스 측은 “출연료는 단순한 회차 수가 아닌, 창작자와 출연진의 실제 투입 시간과 기여도를 반영하는 방식이 더 합리적”이라며 “넷플릭스는 출연료에 일률적인 상한선을 두지 않으며 작품의 특성과 역할, 제작 기간 등을 고려해 파트너들과 유연하게 합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넷플릭스가 K콘텐츠 열풍으로 벌어들이는 엄청난 규모의 수익과 비교했을 땐 넷플릭스가 지급하는 국내 배우들의 출연료가 많다고 할 순 없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한국 시장 전체가 흔들리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출연료 경감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넷플릭스는 K콘텐츠의 수혜를 출연료 대신 다른 방식으로 국내 창작자와 제작사 등에 나누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과열됐던 출연료 경쟁이 조금씩 가라앉으면 시장은 차츰 안정을 되찾을 수 있다.

그림자는 짧게, 영광은 길게


최근엔 다양한 제도적 논의도 오가고 있다. 영화에 대해선 홀드백 법제화가 추진되고 있다. 극장 개봉작은 극장 상영이 끝나고 6개월이 흘러야 2차 플랫폼인 OTT에서 방영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극장 상영 종료 후 얼마 지나지 않거나 심지어 상영 중인데도 OTT에서 공개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이다. 프랑스 등 해외에선 홀드백 법제화를 통해 영화산업 붕괴를 막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 같은 보호조치가 필요하다는 경각심에서 논의가 시작됐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높다. 극장보다 OTT로 편히 작품을 즐기는 관객들을 외면한다는 점, 극장 티켓가 조정에 대한 논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점, 제작사가 수익을 내기 더욱 어렵게 될 수 있다는 점, 극장 개봉을 아예 포기하고 OTT로 직행하는 영화가 늘어날 것이라는 점 등이 반대 이유로 꼽힌다. 결국 이 난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한국 현실에 맞는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홀드백 법제화의 목적과 취지를 고려하면서도 한국 영화와 관객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게 정교하고 체계적으로 법 조항을 만들고 다듬어야 한다. 지원책 검토가 시작된 것을 계기로 더욱 심도 있는 고민과 활발한 토론이 이뤄진다면 새로운 전환점이 마련될 수 있다.

“정부는 영화산업이 K컬처의 세계적 확산을 주도하며 국가 전략 산업으로서 굳건히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튼튼한 기반을 조성하겠다.” 9월 21일 이재명 대통령은 SNS를 통해 이같이 말했다. 그러자 다음 날 국내 대표 멀티플렉스 CGV의 주가는 장중 10% 넘게 뛰었다. 그만큼 영화산업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제대로 된 지원과 변화가 절실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 등 다른 콘텐츠 영역도 마찬가지다.

K콘텐츠 산업의 그림자가 길어질수록 영광은 퇴색될 수 있다. 그리고 영광에 따른 수혜는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모조리 가져갈 수도 있다. 해외 제작사가 만든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대대적인 흥행을 씁쓸하게 바라보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은가. 하지만 영화 ‘얼굴’처럼 과감한 시도, 출연료 절감 같은 변화의 움직임, 현장과 산업 발전을 위한 제도 마련이 골고루 이뤄진다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K콘텐츠가 온전한 영광을 오래도록 누릴 수 있길 바란다.

김희경 인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kimhk@inj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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