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자리는 100년 전 있었던 한국문학의 경사를 되새기는 자리입니다.”
지난 17일 서울 동숭동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사진)에 선 김선영 핀드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무대 뒤로는 ‘김명순의 첫 번째 100주년’이라는 행사 제목이 떠 있었다. 한국 최초 여성 작가 김명순의 작품집 <생명의 과실> 출간 100주년을 맞아 김 대표와 박소란 시인, 이유나 번역가, 김신록 배우 등 문화계 후배들이 꾸린 뒤늦은 출간 파티였다.
김 대표와 박 시인은 김명순을 ‘명순 언니’라 부르며 각별한 애정을 내비쳤다. 김 대표는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 편집자 출신으로, 1인 출판사 핀드를 운영 중이다. 핀드는 올 들어서만 <생명과 과실> 복원본을 비롯해 김명순의 책 4권을 냈다.
박 시인은 옛말로 쓰인 김명순의 작품을 추리고 쉬운 말로 다듬는 데 참여했다. “김명순 작가에게 폐가 되지만 않기를 바랄 뿐”이라는 그의 겸손한 말과 달리 탁월한 현대어 해석은 100년 전 글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문학적 정취를 낳는다. 이런 작업은 보존과 전달 사이를 오가는 고민의 연속이다. 박 시인은 이날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이 번역가와 ‘추억’ 속 “까치밤”의 뜻을 두고 토론을 벌였다고 했다. ‘박명(해돋이 전이나 해넘이 후의 희미한 태양빛)’의 북한말인지 까치밥인지를 놓고. “가끔 ‘내가 연구자도 아닌데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도 해요. 하지만 김명순의 오랜 팬이자 까마득한 후배 문학인으로서 숙제 같은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하버드대 영문과 대학원에 재학 중인 이 번역가는 김명순을 해외 독자에게 소개할 예정이다. 김명순의 시를 영어로 옮기고 직접 투고한 끝에 내년 미국 출판사에서 김명순 시집이 출간된다. 1997년생으로 1896년생 김명순의 ‘한 세기 후배’인 그는 “한국 여성 번역가 선배들을 살펴보던 중에 김명순의 강렬한 시어와 이미지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나는 왜 김명순을 국어 시간에 접하지 못했지’ 하는 의문 끝에 번역 작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1인극처럼 김명순의 에세이를 낭독한 김 배우는 “몇 년 전 김명순의 삶을 다룬 연극의 출연 제안을 받았는데 여러 일정상 참여하지 못했다”며 “낭독을 계기로 작품을 깊이 읽게 돼 반가웠다”고 말했다.
이날 객석 질문 시간에 한 관객은 “김명순은 우리가 100년을 기다려서야 만난 작가”라고 표현했다. 100년 전 “어째서 말동무라도 되어줄 몸이 없느냐”(‘네 자신의 위에’) 하고 울부짖었던 김명순에게 지금의 독자들이 보내는 답장이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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