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는 미국 뉴욕,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와 함께 ‘세계 4대 패션 수도로 불린다. 매년 2월과 9월 패션위크를 열며 세계 트렌드를 선도하기 때문이다. 4개 도시 중 밀라노는 ‘패션의 도시’란 표현이 가장 걸맞은 곳이다. 프라다, 아르마니, 베르사체, 돌체&가바나 등 밀라노에서 태동한 럭셔리 패션 하우스와 수백 년 역사의 가죽·원단 공방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밀라노패션위크(MFW) 때는 두오모 광장부터 왕궁, 오페라 극장 등 도심 전체가 패션으로 물든다.

밀라노 패션의 역사는 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이탈리아 패션의 중심지는 피렌체였다. 피렌체 출신 사업가 지오바니 바티스타 지오르지니가 ‘더 이상 샤넬, 구찌 등 프랑스 브랜드의 하청업체가 아니라 이탈리아만의 명품을 만들자’며 시작한 패션쇼가 계기가 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탈리아 패션은 프랑스의 오트쿠튀르(맞춤복)와 비슷했다. 장인들이 몇몇 상류층을 위해 만드는 옷이 흐름을 좌우했다.
1950년대 후반, 세계 패션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프레타포르테(기성복)다. 세계 경제와 산업이 발전하면서 패션은 더 이상 상류층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실용적이면서도 세련된 기성복에 대한 대중의 수요가 점차 높아졌다. 밀라노는 그 전환기의 시대적 요구를 충족시키기에 완벽한 도시였다. 지리적으로 유럽의 교차로에 있어 해외 바이어들이 쉽게 오갈 수 있고, 제조·섬유업 기반도 탄탄했다. 마랑고니 같은 세계적인 디자인 학교가 인재를 키워냈고, 패션 매거진들이 그 흐름을 끊임없이 기록했다. 세계 인재, 돈, 언론을 하나로 잇는 ‘패션 허브’가 된 것이다.
밀라노는 이탈리아 전역의 가죽 장인과 공방을 세계와 연결하는 무대가 됐다. 1958년 시작한 밀라노패션위크는 그 시작이었다. 유럽을 넘어 미국 바이어들도 밀라노의 명성을 듣고 찾아왔다. 그 속에서 브랜드들이 움트기 시작했다. 1900년대 초 ‘갤러리아 비토리아 에마누엘레 2세’ 쇼핑몰의 작은 가죽 매장에서 시작한 프라다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됐다. 에르메네질도 제냐, 로로피아나 등 인근 도시에 있던 오랜 고급 원단 공방들도 밀라노를 거쳐 세계로 뻗어나갔다.

‘메이드 인 이탈리아’는 밀라노라는 문을 통해 1980~1990년대 전성기를 맞이했다. 영화 ‘007시리즈’의 제임스 본드 슈트를 만든 브리오니가 대표적이다. 영국 슈트보다 더 가볍고 부드러우면서도 세련된 실루엣을 지닌 ‘이탈리아 럭셔리 슈트’의 정석을 선보이며 할리우드를 휩쓸었다. 당시 배우들뿐 아니라 정·재계 인사들까지 모두 브리오니를 입었다. 아르마니의 ‘미니멀리즘 슈트’는 당시 황금기이던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다시피 했다. ‘이탈리아만의 브랜드를 만들자’는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꿈이 밀라노에서 이뤄졌다.
최근 밀라노패션위크는 럭셔리 혁신을 더해 새로운 도약을 노리고 있다. ‘MFW 뉴 제너레이션’과 같은 프로그램은 더 많은 신진 브랜드와 디자이너에게 무대를 열어주고 있다. 누가 ‘제2의 프라다’ ‘제2의 아르마니’로 밀라노 패션의 명성을 이어갈까. 지금 이 순간에도 패션의 심장은 여전히 밀라노에서 가장 뜨겁게 뛰고 있다.
밀라노=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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