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8년 8월 31일, 서울 돈의문 밖 봉원사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주시경 선생이 운영하는 국어 강습소 졸업생을 비롯해 우리말 연구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기울어가는 국운을 한탄하며 겨레의 말과 글을 지키고 살려야 할 필요성에 공감했다. 이 자리에서 ‘국어연구학회’가 탄생했다.
선생은 1911년 최남선이 주도한 조선광문회에서 우리말 사전 편찬에 착수했다. ‘말모이’(말을 모은 것)라는 순우리말 이름의 사전을 만들기 시작했다.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장의 강연록 ‘낱말 하나하나에 담은 겨레의 얼’에 따르면, 이는 민족 스스로 자기 말의 사전을 만들려 한 역사상 최초의 시도였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또한 훗날 한글학회가 펴낸 <조선말 큰사전>의 밑거름이 됐다.
일제강점기 국어의 수난사는 곧 우리 민족이 겪어낸 질곡의 역사였다. 그중에서도 1942년 터진 ‘조선어학회 사건’은 우리말을 절체절명의 위기로 몰아갔다. 이때 이윤재,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 장지영, 안재홍, 이은상 선생 등 당대 우국지사가 대거 투옥됐다. 특히 이 사건으로 당시 16만여 어휘를 모아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던 <조선말 큰사전> 편찬 작업이 중단된 것도 큰 시련이었다. 그 와중에 사전 원고마저 잃어버려 거의 포기 직전까지 갔다. 조선어학회 사건의 증거물로 일본 경찰에 압수되었다가 행방불명이 된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 8일 서울역 화물 창고에서 원고 뭉치를 찾아 1947년 제1권에 이어 1957년까지 순차적으로 제6권을 펴냈다.
하지만 100여 년에 이르는 국내 종이사전의 역사는 곧이어 조종을 울릴 수밖에 없었다. “국립국어원에서 1999년에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의 개정판을 인터넷 사전(웹 사전)으로만 편찬할 예정입니다.” 2006년 10월 9일 한글날을 기해 국립국어원은 향후 나올 표준국어대사전 개정판을 온라인으로만 발간하겠다고 밝혔다. 제작 기술의 발달에 따라 인터넷 사전이나 전자사전이 전통의 종이사전을 상당 부분 대체했기 때문이다.
컴퓨터와 휴대폰이 일상의 필수품이 된 디지털 시대에는 ‘내 손안의 사전’이 가능해졌다. 언제 어디서든 가깝고 편리하게 사전을 찾아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종이사전에 담겨 있는 언어와 문화의 변천, 역사성을 찾아볼 기회는 사라져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과거에는 책장을 넘기고 밑줄 그어가며 단어를 찾아보던, 그리고 때론 외우려고 씹어 먹기까지 하던 종이사전이었다. ‘마음의 양식’을 기르는 지식과 문화의 보고였다. 이제 그런 ‘사고(思考)의 터전’은 검색어를 넣으면 바로 알려주는 웹 사전으로 역할이 넘어갔다. 그래도 국어사전은 여전히 우리말뿐 아니라 사회 변천상까지 담고 있는 우리 곁의 보물 창고다.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