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신도시 상권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임대인은 공실을 채우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그나마 들어온 임차인은 수익을 내지 못해 폐업을 고민합니다. 한때 기대를 모았던 신도시 상가 곳곳이 이같은 '유령상가'로 전락하면서 지역경제도 타격을 입었습니다. 한경닷컴은 3부작 기획을 통해 신도시 상가 공실의 실태를 진단하고, 구조적 문제점을 짚어봅니다. [편집자주]

“오늘 점심 장사는 세 팀밖에 안 왔습니다. 평일엔 오가는 사람이 없어서 인건비도 안 나와요.”
이국적인 수로와 산책로로 주목받았던 김포의 대표 수변 상업시설인 라베니체가 '공실의 명소'로 전락하고 있다. 이곳 한 음식점 관계자는 "시간이 갈수록 여건이 나빠져 계속 장사하긴 힘들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탈리아 베니스를 모티브로 한 수변 스트리트형 상가 '라베니체 마치에비뉴'는 왕복 1.7km의 수로를 따라 조성된 3만3000㎡ 면적의 상업시설이다. 2014년 첫 분양 시기만 하더라도 빠른 속도로 분양되는 등 한강신도시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모았다.
하지만 준공 초기 50~60%에 달하는 공실률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내더니 분양으로부터 10년이 지난 현재는 수도권에서 손꼽히는 공실 지역으로 전락했다. 지난달 찾은 라베니체는 고객이 붐벼야 할 1층 건물부터 공실투성이였다. 이가 빠진 듯 곳곳이 임대 안내문이 붙은 채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고, 1층 전체가 공실인 건물도 있었다.

그나마 자리를 채운 가게들도 상당수는 영업시간인데도 문을 닫은 채 있었고, 영업 중인 곳도 태반은 사람이 없는 무인 매장이었다. 인건비조차 건지기 힘든 상황이 되자 사람을 없애 비용을 최대한 절감한 점포들만 살아남은 셈이다. 한국의 베니스를 꿈꾸며 야심 차게 들어섰던 상가는 찾는 사람도, 자리를 지키는 사람도 하나둘 떠나고 있었다.
사람들이 떠난 거리는 이제 '러닝족'의 차지가 됐다. 이날 라베니체에 오가는 사람 10명 중 8명은 땀을 흘리며 달리는 러닝족이었다. 잠시 운동을 나왔다는 지역 주민 곽모씨는 라베니체를 찾은 이유에 대해 "길이 반듯하고 사람도 없어 뛰기에 좋다"며 다소 씁쓸한 답변을 내놨다. 나머지 방문객도 애견이나 어린 자녀를 동반해 한 바퀴 산책을 즐기다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장사가 되질 않으니 임대료도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장기동 A 공인중개 관계자는 "라베니체 1층 13평짜리 상가는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100만원 수준"이라며 "2019년만 하더라도 월세가 300만원을 훌쩍 넘었는데, 3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어도 문의는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라베니체 뒤쪽 상가에서는 문을 닫은 부동산 중개업소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곳곳에서 집기를 내놓고 폐업한 가게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한 지역 주민들은 "그래도 지금은 문을 연 가게도 있고, 오가는 사람도 있어 나은 편"이라는 평가도 했다. 그는 "겨울이 되면 모든 가게가 문을 닫고 인적도 끊긴다"며 "을씨년스러워서 다니기 꺼려진다"고 털어놨다. 실제 이 지역에서는 겨울철 임대료를 내지 않는 조건으로 임차인을 모집하고 있었다. 상권이 붕괴하면서 겨울에는 사실상 방치되는 지역이 됐다는 의미다.
김포 한강신도시를 한강 너머로 마주하고 있는 수도권 대표 1기 신도시 일산도 몸살을 앓고 있다.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에는 서울 강남의 가로수길을 꿈꾸며 조성된 일산 가로수길이 있다. 2017년 270m 길이 유럽풍 스트리트 상가로 준공됐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1층 상가는 대부분 빈 점포로 남아 있다.
그나마 거리 안쪽은 문을 연 가게들도 있었지만, 거리 바깥쪽은 '전멸'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한 동 외곽 라인 1층은 전부 공실이거나 폐업한 상태였다. 2층도 네일아트 가게와 아동발달센터 등 일부 공간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지은 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건물이지만, 워낙 방치된 가게들이 많은 탓에 버려진 폐건물 느낌마저 물씬 풍겼다.
그렇다 보니 새 임차인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일부 점포는 일정 기간 임대료를 받지 않는 '렌트 프리'를 내걸고 있지만, 그만한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인근 주민은 "가로수길 맞은편 롯데 빅마트도 몇 년 전 문을 닫은 채 계속 방치되고 있다"며 "두 곳 모두 밤이 되면 오가는 사람도 없이 조용하다. 아파트 단지 바로 앞에 거대한 폐허가 있는 셈"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무너진 지역 상권은 일대 집값까지 끌어내리고 있다. 라베니체 바로 옆에 자리한 '이편한세상캐널시티'는 지난달 전용면적 84㎡가 5억8000만원(8층)에 손바뀜됐다. 4년 전인 2021년 9월 기록한 8억4700만원(9층)에 비하면 약 32% 하락한 금액이다.
'수정마을쌍용예가' 전용 84㎡는 4년 전 6억3000만원(14층)에서 최근 4억2000만원(4층)으로 2억원 넘게 떨어졌고, 같은 기간 '초당마을래미안한강' 전용 101㎡ 역시 7억7000만원(7층)에서 6억7500만원(17층)으로 내렸다.
일산 가로수길도 바로 앞 '문촌17단지신안' 전용 117㎡ 가격이 2021년 10억8500만원(6층)에서 지난 9월 8억4500만원(14층)으로 하락했다. 강선19단지우성 전용 101㎡도 2022년 8억7000만원(8층)에서 최근 실거래가는 7억7500만원(6층)으로 내려앉았다.
주엽동 B 공인중개 관계자는 "도보권에 지하철역과 공원, 백화점까지 갖추고 있어 입지가 빠지지 않는다"면서도 "단지 바로 앞에 생긴 폐건물과 공실은 어쩔 수 없는 마이너스 요소"라고 토로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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