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3,953.76
(72.69
1.81%)
코스닥
876.81
(21.36
2.38%)
버튼
가상화폐 시세 관련기사 보기
정보제공 : 빗썸 닫기

혁신 기술 막는 의료기기 규제 대못…환자도 병원도 불편 가중

입력 2025-10-09 15:41   수정 2025-10-09 15:42


인공지능(AI)·디지털 기반 의료기술과 수술로봇 등 혁신의료기기가 기존 규제 체계와 충돌하면서 시장 진입과 환자 치료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병원에 도입돼도 환자치료에 사용할 수 없는 수술로봇
보건복지부는 2023년 개정된 ‘혁신의료기술 평가 및 실시 규정’을 통해 안전성과 잠재성을 평가하고 시장 선진입을 허용하고 있으나, 기업들은 여전히 실질적인 시장 진입까지의 장벽이 높다고 호소하고 있다.

특히 큐렉소, 로엔서지컬, LN로보틱스 등 침습(절개나 기구 삽입 등 외과적 처치) 혁신의료기술로 지정된 기업들이 침습기술의 연구 선행 의무 규제에 묶이면서 시장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통해 안전성을 입증했고 실질적인 위해도가 낮은 기술도 일괄적으로 침습 기술로 분류돼 임상 진료에 즉시 적용할 수 없고, 임상연구를 통해서만 제한적으로 사용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규제는 실사용 데이터(RWD) 확보를 어렵게 만들며, 기술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입증하려는 기업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은 윤리적 승인 절차, 병원 협력 확보, 임상시험 비용 등으로 기업운영의 어려움이 배가 된다.

이들 수술로봇 장비를 도입한 병원들도 난처한 상황이다. 로엔서지컬의 신장결석 수술로봇 자메닉스는 신장 깊숙히 위치하거나 크기와 경도가 커서 기존 수술로 제거가 어려운 난치성 결석을 제거에 유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이 로봇을 도입한 병원들은 연구 선행의 의무화 기술로 분류돼 진료에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수술로봇을 원하는 환자들의 문의가 많지만 정작 진료에 활용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도 저위험도 침습기술에 대한 규제가 의료기술 생태계의 혁신 속도를 늦추고 있어, 수행현황 보고 등의 안전성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안전대책을 마련해 실제 진료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태범식 고대안산병원 교수는 “혁신기술 임상과 실사용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보완한다면 실제 진료 현장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반영할 수 있어 데이터의 왜곡을 줄이고 기술에 대한 더 정확한 평가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기기 검사 했는데 또 검사...정부 심사만 490일, 세계 유일의 이중 규제
국내에서 사용한 적이 없거나 세계 최초로 개발된 의료기기는 식약처의 인허가 과정 외에도 ‘신의료기술평가’를 거쳐야 한다. 신의료기술평가란 새로운 의료기술이 국민에게 사용되기 전 안전하고 유효한지를 세밀하게 평가하는 제도로 2007년 도입됐다. 도입과 동시에 이중 규제 논란이 불거졌다. 신의료기술평가 기간에는 시장 진입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임상을 거쳐 유효성과 안전성을 인정받은 의료기기를 또 한 차례 평가해 시장 진입만 늦춰진다는 불만이 제기돼 왔다. 신의료기술평가까지 받게 되면 개발 기간을 제외한 인허가 기간만 최장 490일이 걸린다. 루트로닉은 레이저로 ‘황반변성’을 치료할 수 있는 의료기기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그런데도 임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하지 못했다. 반면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에서는 판매 허가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호주 업체에 세계 최초 타이틀을 뺏겼다.

업계 관계자는 “혁신의료기기가 식약처의 안전성을 인정받고도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의 신의료기술 유예제도에서 다시 ‘의료행위로서의 임상적 안전성’을 입증해야 하는 규제가 기업들의 시장 진입과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식약처는 의료기기 자체의 물리적·기계적 안전성과 성능을 기준으로 허가를 내준다. 반면 NECA는 해당 기기를 실제 진료 현장에서 사용할 때 환자에게 해가 없는지를 평가하는 ‘임상적 유효성, 안전성’을 별도로 요구한다. 신의료기술 유예제도 기간 동안에도 복지부는 부작용 발생 여부를 모니터링하며 안전성 검증을 이어간다.

기업들은 이 같은 구조가 사실상 ‘이중 규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AI 진단기기나 디지털 치료기기처럼 기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기술은 비교 가능한 임상문헌 확보가 어려워 유예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평가가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 중소기업의 경우 임상 설계와 규제 대응 역량이 부족해 평가 준비 자체도 어려운 실정이다. 병원은 안전성과 급여 여부가 불확실한 기술에 대해 도입을 꺼리는 경향이 있어, 이런 혁신 기업의 초기 매출 확보도 쉽지 않다.

업계는 식약처의 안전성 검증을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유예제도에서는 유효성 중심의 평가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처방 과정에서의 사용 데이터를 기반으로 안전성 문제 발생 시 급여 적용을 조정하는 방식이 더 합리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우울증 전자약을 개발해 신의료유예제도로 비급여 처방을 진행 중인 와이브레인은 최근 두번째 유예제도에 선정이 됐다. 유예제도를 통해 현재까지 우울증 전자약 마인드스팀은 전국 156개 병원에서 16만7000건의 처방을 기록하고 있다. 마인드스팀은 임산부, 산후 우울증 및 청소년 등 약물복용이 제한적인 환자들에게는 먹지 않는 유일한 치료제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비교 가능한 기존 기술이 없어 안전성 평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해로 한시적으로 시장에 진입해 비급여 처방을 받은 지 4년째이지만 이 제도 이후에도 환자처방이 지속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통합심사제도와 유예제도 개선을 통해 절차 간소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하지만 현장에선 전혀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며 “여전히 혁신의 발목을 잡는 규제 중 하나”라고 전했다.

정부의 의료기기 연구개발(R&D) 예산 집행을 총괄하는 범부처전주기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의 김법민 단장도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식약처, 한국보건의료연구원 등 두 번의 인허가를 거쳐야 의료기기 출시가 가능하다”며 “우리도 다른 선진국처럼 ‘선(先) 진입, 후(後) 평가’ 전면 확대 시행을 통해 첨단 의료기기의 빠른 상업화를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100만건 쌓아도 못 쓰는 의료데이터...中과 경쟁서 이기려면 시급히 규제 풀어야"
국내 의료데이터가 병원 안에 갇혀 산업적·연구적 활용이 어려운 현실도 의료기술 혁신의 발목을 잡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의료데이터 활용도 제고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는 병원과 기업, 정부 관계자들이 모여 의료데이터의 외부 반출을 막는 규제 장벽에 대해 한목소리로 개선을 촉구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의 의료데이터 중 약 97%가 병원 내부에 고립된 ‘사일로(Silo)’ 상태라고 지적한다. 유전체 정보, 의료영상(DICOM), 심전도(ECG) 등 고부가가치 데이터가 병원별로 분절돼 있어, AI 진단기술이나 신약 개발에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구축사업단도 희귀질환·중증질환·일반인을 포괄하는 100만명 규모의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을 진행 중이지만 실제 활용까지는 첩첩산중이다. 병원과 기업 간 데이터 공유를 위한 법적·기술적 기반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들은 병원과의 협업이 어려운 이유로 개인정보보호법, 생명윤리법, 의료법 등 중첩된 규제 구조를 꼽는다. 특히 임상데이터의 외부 전송은 법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며, 다기관 연구나 해외 협업에서도 동의서 해석과 활용 범위가 상충돼 법적 리스크가 크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은 건강검진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축적해온 몇 안 되는 나라이지만, 고품질 데이터를 확보하고도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점에 안타까워하고 있다. 중국과의 신약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선 규제 재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한 의료 전문가는 “병원 쌓여 있는 AI 학습에 적합한 고품질 데이터를 병원 내에 둔 채 모델 파라미터만 주고받는 방식으로, 다기관 연구에서 성과를 낸 사례도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2026년부터 국가 바이오 빅데이터 플랫폼을 통해 데이터 개방을 추진할 계획이지만, 업계는 단순한 기술 인프라보다 법적·제도적 유연성 확보가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또 데이터 생성자에 대한 권리 보장과 보상 구조 마련, 정부의 적극적인 규제 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한 바이오기업 대표는 “의료데이터는 디지털 헬스케어, AI 진단, 신약 개발 등 미래 의료산업의 핵심 자산”이라며 “그러나 병원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규제 환경은 기술 혁신을 지연시키고, 환자 치료의 질 향상에도 장애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