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에서 피의 혁명을 부르짖던 '전두광' 역의 배우 황정민이 푸근한 60대 보모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지난달 27일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 무대에서다.

지난 1일 '미세스 다웃파이어' 무대에 오른 황정민에게선 살기 가득한 악역의 그림자를 한순간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케피' 이후 10년 만의 뮤지컬 복귀였지만, 그는 진정성 어린 노래와 혼신의 1인 2역 연기로 객석을 단숨에 휘어잡았다.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누구보다 아이들을 아끼지만 정작 아이들보다 철없는 아버지 '다니엘'이 이혼 뒤 보모 '다웃파이어'로 변장하며 벌어지는 좌충우돌을 그린다. 원작은 영국 작가 앤 파인의 소설 <마담 다웃파이어>. 1993년 영화감독 크리스 콜럼버스가 이를 바탕으로 제작한 로빈 윌리엄스 주연 영화로 잘 알려져 있다. 세계적인 인기에 힘입어 2021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로 처음 옮겨졌고 이듬해 한국에서 초연했다. 전 세계 최초로 선보인 라이선스 버전이다. 2022년 국내 초연 당시 7회 한국뮤지컬어워즈 프로듀서상과 분장디자이너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번 공연에서 다니엘 역은 황정민과 정성화, 정상훈이 맡았다. 영화 '신세계', '베테랑', '서울의 봄' 등에서 주로 조폭이나 형사 역을 연기해온 황정민은 핏빛이 아닌 분홍색 스웨터가 잘 어울리는 60대 여성으로 변신했다. 다니엘의 어색한 여장과 다웃파이어의 섬세한 손동작까지 동시에 연기하는 그의 모습은 과연 '국민 배우'라는 수식어에 걸맞았다. 스크린에서 걸어 나온 그가 노래를 부르고 탭 댄스를 추는 모습도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여기에 황정민이 출연한 각종 영화의 명대사가 적재적소에 배치돼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정성화, 정상훈 배우 역시 각자의 개성에 맞춘 대사로 무대를 채운다. 황석희 번역가가 한국적 정서와 말맛을 살려 대사를 썼다.

극의 몰입을 가능하게 하는 건 무엇보다 정교한 분장이다. 배우의 눈가 주름까지 본뜬 뒤 중년 여성의 볼 패임 등을 세밀하게 표현해 현실감을 높였다. 영화에서 다웃파이어가 화장을 진하게 하는 설정에 맞춰 피부색을 하얗게 바꾸고 음영 등을 통해 골격도 배우마다 다르게 표현했다. 배우들은 이처럼 특수 제작된 실리콘 마스크와 가발, 소품 등을 이용해 다니엘에서 다웃파이어로 10초도 안 돼 변신한다.
가족의 형태는 하나가 아니다. 이혼 후 부모가 따로 살기도, 엄마가 둘이기도 하다. 작품은 가족의 형태가 어떠하든 "사랑이 있는 한 가족은 하나로 묶여 있다"는 메시지로 관객의 눈가를 적신다.
추석을 맞아 가족과 함께 볼만한 공연이다. 실제로 추석 연휴를 앞둔 이날 공연장에는 몸집보다 큰 가방을 멘 아이들부터 손을 꼭 잡은 부부까지 다양한 가족 단위 관객이 찾았다.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오는 12월 7일까지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한다.
허세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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