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반도체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를 창업하는 게 꿈입니다.”
한국 팹리스인 어보브반도체의 베트남법인 설계팀을 이끄는 트린티프엉 테크니컬리더(37)는 “반도체 설계는 매력적인 직업”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베트남 명문대인 하노이과학기술대(HUST)를 졸업한 뒤 미국 시스템반도체 업체 코보와 베트남 최대 정보기술(IT) 기업 FPT를 거쳐 2022년 어보브반도체 베트남법인 창업 멤버로 합류했다.
14년 차인 그의 연봉은 비슷한 연차의 한국 중소·중견기업 엔지니어와 거의 같다. 대졸 신입 사원 초봉이 50만원 수준인 베트남에서 초고소득자다. 트린티프엉 리더는 “반도체 엔지니어가 되는 건 개인 경력뿐 아니라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며 “수학자 출신으로 창업해 30여 년 만에 ‘베트남의 삼성’으로 불리는 FPT그룹을 키운 쯔엉자빙 회장처럼 되고 싶다”고 했다.

베트남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새로운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9일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마켓인사이츠에 따르면 올해 244억달러(약 35조원) 수준인 베트남 반도체산업 규모는 2030년 465억달러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연평균 성장률이 13.7%로 베트남 경제성장률(7%)의 두 배에 달하는 속도다.
베트남이 세계 반도체의 신흥 거점으로 자리 잡는 데는 20년이 걸렸다. 베트남에 첫발을 들여놓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은 일본의 차량용 반도체 기업 르네사스다. 2004년 호찌민시에 일본을 제외한 연구개발(R&D) 시설로는 최대 규모인 디자인센터를 세웠다. 2006년엔 미국 인텔이 호찌민에 조립 공장을 설립하며 베트남 후공정 산업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 마벨과 시놉시스, 마이크로칩 등 글로벌 팹리스와 앰코를 비롯한 대형 후공정 업체들이 베트남에 진출했다.
한국 기업들도 베트남 성장세에 올라타고 있다. 자동차용 인공지능(AI) 반도체를 설계하는 보스반도체는 2022년 창업 단계부터 R&D 조직을 한국과 베트남에 함께 설립했다. 삼성전자 부사장 출신인 박재홍 대표가 창업한 보스반도체는 창업 초기부터 베트남 엔지니어 100명 이상을 확보해 퀄컴이 장악한 차량용 AI 반도체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이에 비해 베트남에선 명문대 출신 반도체 엔지니어를 한국의 반값도 안 되는 월급 100만원 정도에 쉽게 채용할 수 있다. 업계에서 “SKY(서울·고려·연세)대나 성균관대, 한양대 공대 졸업생보다 베트남 공대 출신을 채용하는 게 훨씬 이익”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최원 어보브반도체 대표는 “베트남 학생은 중국처럼 수학과 공학에 강하고 이들이 우수 글로벌 기업에서 경력을 쌓으면서 강력한 인재 풀이 형성되고 있다”며 “팀장급이 된 1세대 반도체 인재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V반도체’라고 불러도 될 만큼 베트남 반도체 생태계가 확장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베트남 정부는 V반도체 인재 육성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지난해 ‘2030년 반도체 산업 발전 전략 및 2050년 비전’을 통해 현재 6000명인 반도체 엔지니어를 2030년 5만 명, 2040년 10만 명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2050년엔 모든 수요를 충족시킬 수준으로 양성하겠다고 했다.
박 대표는 “한국에선 어떻게 해도 원하는 수준의 반도체 인재를 구할 수 없어 팹리스 등은 창업할 때부터 한국이 아니라 베트남에 반도체 R&D센터를 세우는 게 대세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노이=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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