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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생명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개와 나'

입력 2025-11-02 08:45   수정 2025-11-02 08:46

추석 연휴 다들 평안하셨는지

유난히 길었던 연휴였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근황을 얘기하면서 서로를 응원하고 위로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취향이 비슷해서 가족인지, 가족이라서 취향이 비슷한지는 모르겠지만, 책과 여행을 좋아하는 모두라서 밤늦도록 그 두 가지 주제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 옆에는 내가 작년 5월, 용인시 동물보호센터에서 입양한 반려견 ‘알마(Alma)’도 함께였다. 유기견이었던 어린 강아지를 데리고 와서 사랑과 정성으로 키웠고, 덕분인지 사람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발랄한 아이가 되었다. 하루에 세 번 산책하는 우리는 이미 아파트의 경비원 아저씨들과 이웃분들의 스타가 되어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있었다.

그러다가 사고가 났다. 온몸으로 뛰어노는 5살 남자아이인 조카가 강아지의 간식 통을 엎었고, 그걸 덮치는 알마를 제지하고 훈육하기 위해서 혼내다가 손을 물려서 피를 철철 흘리고 추석 당일에 병원을 전전해야 했던 것이다. 응급실을 다녀왔지만, 점점 더 붓고 엉망이 되는 손에,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눈물을 흘렸다. 믿었던 존재에게 배신당했다는 마음과 절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 몸보다 마음을 많이 다쳤다.



내가 너와 함께하기로 결심한 이유

나는 개를 키우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모든 처음이 그렇겠지만,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열심히 공부를 해야만 했다.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온갖 영상을 보면서 기본 지식을 익혔고, 어릴 때 제대로 하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해서 비싼 돈을 내고 퍼피 트레이닝도 받았다.

이렇게 미지의 세계에 뛰어들기로 결심을 한 것은 미국 작가 캐롤라인 냅의 책 <개와 나> 덕분이었다. 우연히 만나게 된 그녀의 전작 <드링킹>을 읽으면서 지적이고 우아한 문장으로 한 가지 주제에 깊이 있게 파고드는 이야기에 엄청난 힘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의 책이라면 주제가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다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개와 나>를 읽으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근 40년을 살아오면서 한 번도 알지 못했던 세계의 이야기였지만, 빠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반려인의 삶'을 알기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직감적으로 알았다. 특히 아래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나 역시도 나만의 작은 닻을 원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인간관계는 예측 불가능하고 때로 격해지며 뒤얽히거나 변할 가능성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개는 늘 한결같다. 나에 대한 루실의 반응은 변함이 없다. 밀려갔다 밀려오는 감정과 상황의 바다에서 루실은 나를 버텨주는 조그만 닻이다. 꾸준히 그곳을 지키고 서서 내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을 모두 목격하는 존재,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 주는 존재.

하지만 이것은 퇴행이 아닐까?

하지만 나는 나의 반려견을 만나고 나서 이 삶이 퇴행은 아닐까 고민했다. 캐롤라인이 고민했던 ‘그레이스와 나는 세상 사람들이 흔히 개를 대리자로 삼는다고, 복잡하고 힘든 인간관계를 피해서 동물의 세계로 퇴행한다고 말한다. 나는 사람들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안다. 그레이스와 나는 혼자 살고, 집에서 일하며, 막대한 시간과 에너지를 개에게 쏟는다.’라는 문장이 머릿속에서 자주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도 그녀들과 비슷한 삶을 살고 있기에 이 고민이 진지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바로 이어지는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오히려 나의 최전성기라고 믿었지만, 꽤 고통스러웠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미국 글로벌 여행 회사의 호텔 세일즈 매니저를 하면서 일했던 시간들이다. 돈은 잘 벌었지만 일도 많았고 출장도 잦았다. 정말 심할 때는 6개월 동안 18번의 비행기를 탄 적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에서 동물에 대한 사랑을 공유하며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두 여자이기도 하다. ... 지난 2년 동안 우리는 여러 숲에서 수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그레이스와 함께하는 산책은 내 가장 편안한 시간 가운데 하나였다. 이것은 일주일 단위로 내 영혼에 유대감과 웃음 주사를 맞는 것 같았다. 우리는 같은 길 위에 서서 똑같이 이 세상을 혼자 헤쳐 나가면서, 의미 있고 진실한 길을 찾아가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이런 노력에 우리의 개와 우정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레이스가 물었듯이, 이것이 퇴행이란 말인가?

캐롤라인은 미국 보스턴 출신이지만 그녀와 그녀의 친구인 그레이스가 미국 어떤 지역의 숲에서 수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 문장을 읽으면서 지금은 어디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미국 텍사스주로 보내졌던 한 출장을 생각했다. 사막에 있는 선인장이 유명한 텍사스답게 회사 행사의 마지막은 사막에 있는 한 리조트에서 진행되었다.

이 세상을 혼자 헤쳐 나가면서
의미 있고 진실한 길을 찾는 날들


행사장을 빠져나와서 사막 산책을 했던 어느 한 밤. 모래 위에 끊임없이 서 있는 선인장과 선선히 부는 바람, 그리고 쏟아질 듯 하늘 위에 촘촘히 박혀있던 밝은 별이 마치 스냅샷처럼 머릿속에 남아있다. 어느 외계 행성에 불시착한 느낌이었다. 이런 경험을 하게 해준 회사가 감사했지만, 나는 그때 많은 일로 지쳐있었고 나의 능력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에 심한 우울증과 불면증을 앓고 있었다. 결국 번아웃과 코로나가 겹치면서 얼마 안 되어서 퇴사를 결정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지금의 나는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그때보다 훨씬 적은 돈을 벌면서 반려견과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 이 삶을 예전과 비교해서 퇴행이라고 한다면 강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때보다 행복하고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고, 이 세상을 혼자 헤쳐 나가면서 의미 있고 진실한 길을 찾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우리의 삶에 정답은 없는 것처럼 이렇게 묵묵히 가다 보면 텍사스의 사막을 다시 걸어보는 날도 돌아오지 않을까.



신보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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