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을 대표하는 200년 역사의 미술관 내셔널 갤러리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 미술관 정문을 마주하고 가장 왼쪽에 있는 '세인즈버리 윙'은 이들의 소장품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회화 작품들이 모여있다. 중세부터 르네상스 초기까지의 유럽 회화 명작들이 살아 숨쉰다.


프리즈 런던의 개막일인 지난 15일(현지시간) 저녁 7시 30분, 이 건물 2층의 문이 열리자 60명을 위해 차려진 테이블이 나타났다. 틴토레토 등 1500년대 화가들의 명작 사이에 놓인 TV화면이 밝아질 즈음. 산정 서세옥 화백(1929~2020)의 생전 모습이 등장했다. 커다란 붓으로 수묵의 획을 긋는 모습, 한 겨울 자신이 손수 지어 그토록 아끼던 성북동 한옥집의 모습까지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옆에 놓인 다른 스크린엔 그의 아들 서도호 작가(63)가 아버지의 작품을 오마주해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영상과 서세옥 화백의 수묵 추상 작품이 잔잔하게 흘러갔다.
'LG OLED 아트 이브닝'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이 행사는 내셔널 갤러리와 LG전자가 최근 3년간 공식 기업 파트너 협약을 체결하며 성사됐다. 공식 기업 파트너는 내셔널 갤러리의 파트너십 가운데 최고 권위를 가진 파트너십으로 LG전자와 블룸버그 자선재단,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단 세 곳뿐이다. 로고만 사용하는 일반 스폰서십과 달리, 전시 기획과 아티스트 후원 프로그램 등을 함께 모색한다. LG전자는 내셔널 갤러리가 최근 확장 계획을 발표한 모던& 컨템퍼러리 미술 분야의 파트너 역할을 맡게 됐다.

런던 최대의 아트위크가 시작된 이날, LG전자는 지난해 프리즈서울에서 선보였던 '서도호가 그리고 서을호가 짓다' 전시를 프리즈 런던으로 옮겨갔다. 산정 서세옥의 작품을 'LG OLED T'를 세계 최초로 활용해 디지털 콘텐츠와 설치 작품으로 선보인 것. 이를 계기로 서도호 작가, 서을호 건축가 형제를 중심으로 첫 아트 이브닝 행사를 기획했다. 대영박물관, 빅토리아앤앨버트 미술관, 내셔널 갤러리 등 영국의 주요 미술관 관계자와 큐레이터, 사이먼 폭스 프리즈 최고경영자(CEO)는 물론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아티스트와 미술계 관계자가 대거 참석했다. 양혜규, 김지아나, 추수 작가와 티나 킴 티나킴갤러리 대표,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 이장욱 스페이스K 수석 큐레이터, 정도련 홍콩 M+ 총괄 큐레이터, 이숙경 영국 휘트워스 미술관장, 선승혜 주한영국문화원장 등이 자리를 빛냈다.

서도호 작가는 서세옥 화백의 철학과 작업 방식, 어린 시절의 추억을 설명하며 '수묵 추상'의 개념을 설명했다. 그는 "아버지는 수묵화를 하시며 항상 무한한 우주와 공간을 자주 언급했는데, 마치 빅뱅이론을 떠올리게 한다"면서 "작품 뒤에 숨은 이야기와 작업의 과정을 세상에 더 널리 알리기 위해 동생(서을호 건축가)과 함께 이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내셔널갤러리 브랜드 협업을 총괄하는 에리카 보이어는 "그림을 둘러싸고 있는 수 많은 공간, 화가의 몸이 그림과 상호 작용하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작업"이라고 했다.

200주년의 맞은 내셔널갤러리는 파트너십 확장을 넘어 대대적인 변화와 혁신에 나서고 있다. 최근 4억 파운드(약 7620억원)를 민간에서 모금해 1900년 이후 현대·동시대 미술을 담당할 건물을 짓기로 하고, 건축 설계 공모에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 폴 그레이 내셔널갤러리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역사와 전통을 가진 내셔널 갤러리가 첨단 기술을 가진 회사와 손잡고 예술 분야의 더 큰 혁신을 이루는 첫발을 뗐다"며 "전통적인 방식의 후원을 넘어 예술가와 미술관, 기업이 모두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함께 만들어나가고 싶다"고 했다.
런던=김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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